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3부. 혁명과 전쟁, 건축이 무너진 날 (31~5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
토호쿠 지방은 평화로운 오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제어실은 적막에 가까운 고요였다.
"다음 주 정기점검, 일정 조정해뒀어?"
"응, 3호기는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어. 열 흐름은 정상."
사토 나오미, 36세. 원전의 안전 시스템 엔지니어. 그녀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커피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웅—!!
모든 것이 흔들렸다. 커피잔이 넘어지고, 서류가 흩날렸다.
"긴급 지진 경보! 진앙은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앞바다! 규모… 9.0!"
누군가 외쳤다. 나오미의 눈동자는 커다랗게 흔들렸고, 발밑에서는 바닥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괴물처럼 요동쳤다.
"냉각 시스템 확인해! 제어봉 위치 이상 없어?!"
경보음이 울리는 가운데, 제어실의 모든 스크린이 붉은 불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은 단순한 자연재해의 시작이 아니었다.
세상의 균열이 터지는 서곡이었다.
지진 발생 50분 후, 오후 3시 37분.
거대한 파도가 해안을 덮쳤다. 높이 14미터. 후쿠시마 원전의 방벽은 단 10미터였다.
바닷물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방벽을 넘고, 발전소의 지하 전력 공급 설비를 쓸어버렸다.
"디젤 발전기 작동 불능! 전원 상실!"
"냉각 시스템이 정지했어요!"
"이건… 핵심 장비가 다 물에 잠겼다고?!"
사토 나오미는 손이 떨려왔다. 이건 단순한 정전이 아니었다.
이건 냉각 시스템의 영구 정지, 곧 노심 용해를 의미했다.
“이건 설계의 실패야… 누가 해안에 이걸 세우라고 했지…?”
누군가가 중얼였다. 그러나 나오미는 알고 있었다.
‘누가’가 아니라, ‘무엇’이 그렇게 하게 만들었는지를.
지진 발생 25시간 후.
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콘크리트 외벽이 날아갔고, 희뿌연 방사능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이건...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사태야."
도쿄에서 급파된 전문가 다니구치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2호기와 3호기에서도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했고, 가장 끔찍한 건 4호기였다.
거기엔 사용 후 핵연료가 저장되어 있었고, 그 위에 위치한 수영장형 냉각조가 손상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그 순간, 사토 나오미는 결심했다.
"내가 올라가서 직접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미쳤어요?! 지금 거긴…"
"우린 이미 실패했어요. 적어도 진실은 확인해야죠."
나오미는 무너진 철문을 밀치고 4호기의 상부 구조로 올랐다. 수증기와 가스, 그리고 기괴한 정적이 그녀를 감쌌다.
방사능 수치는 기준치의 800배를 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설계도와 달리 훨씬 허약하게 보이는 지지구조, 그리고 해수에 녹슬어 손상된 이음새였다.
“이건 원래 이렇게 설계된 게 아니야…”
나오미는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더듬었다.
초기 설계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社.
냉각 펌프는 지상에 있어야 했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지하로 이전되었고, 그 결정은 한 문서로 남겨졌다.
‘위험은 낮음. 침수 가능성 없음.’이라는 단서와 함께.
그 단서는 결국, 죽음의 문서가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는 일본 정부의 보고서를 받아들였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예외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조 엔지니어, 미겔 카스트로는 고개를 저었다.
“방벽이 10미터라니… 40년 동안 해일 예측 데이터를 무시했다는 뜻이에요. 이건 명백한 ‘건축적 방기’입니다.”
더불어, 또 하나의 문건이 외부 고발자에 의해 공개되었다.
‘만약 해수 유입이 발생할 경우, 지하 설비는 30분 이내 전원 상실 위험이 있다.’
그 문건은 사고 발생 6년 전 작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실행된 조치는 없었다.
그날, 나오미는 다시 제어실로 돌아왔다.
"상황은… 완전히 통제 불능입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방사능 수치는 이미 위험한 수치를 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록을 남겼다.
"설계는 우리를 지켜야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설계를 믿지 않았고, 설계를 해석하는 인간의 욕심에 무너졌어요. 나는 단지, 기억하길 원해요.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그로부터 3개월 후, 사토 나오미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녀의 기록은 후쿠시마 건축 윤리 위원회에 제출되어, 후에 국제 설계 기준 개정을 이끌어내는 시초가 되었다.
사고 10년 후, 그 자리에 **"사일런트 플랫폼"**이라는 이름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벽에는 어떤 장식도 없었다.
다만, 내부에 들어서면 빛 한 줄기가 천장을 뚫고 내려온다.
그곳에는 나오미의 유언처럼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건축은 인간을 지키는 약속이다.
우리가 그 약속을 어기지 않기를 바란다."
후쿠시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전 폐로는 30년 이상이 걸릴 예정이며, 방사능 오염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날, 바다와 마주하던 콘크리트 벽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위엔 한 여인의 이름이 작게 새겨져 있다.
사토 나오미.
그녀는 평범한 기술자였고, 동시에 역사의 경고를 기록한 증인이었다.
“높이는 기술이 만들고, 안전은 양심이 만든다.
우리는 어느 쪽을 먼저 세워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