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3부. 혁명과 전쟁, 건축이 무너진 날 (31~5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도시가 불타는 동안에도, 벽은 기억하고 있었다.”
2024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한 여인이 오래된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름은 마야 루보미르, 42세. 유엔 건축재건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사라예보 태생의 생존자였다.
그녀의 손엔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사진 속, 어린 마야는 붉은 벽돌집 앞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집은 이제 폐허가 되었다.
창문은 깨지고, 외벽엔 수십 개의 총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아침을 먹었고, 여기서 피신했고… 여기서 누군가 죽었다."
그녀는 벽에 손을 얹었다.
모래처럼 부서지는 시멘트 조각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전쟁은 도시를 갈기갈기 찢어놓았지만, 도시의 기억은 아직 거기 있었다.
보스니아 내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사라예보를 포위했다.
군인도 아닌, 일반 시민이 있는 도시에—
44개월간, 총 1,425일간의 포위가 시작되었다.
“엄마, 왜 학교 안 가요?”
마야가 그때 여덟 살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창문 커튼을 젖히지 못한 채로 깨어났다.
어디선가 터지는 저격총 소리, 그리고 먼 곳의 포탄 소리.
"햇빛을 보면 저격수한테 들키니까, 오늘도 창문은 닫아두자."
그 말이, 그날의 아침 인사였다.
포위가 길어지자, 식수도, 전기도 끊겼다.
도시의 아파트는 무너지고, 시장은 불탔으며, 병원은 과포화 상태였다.
마야의 가족은 지하 주차장을 개조한 피난처에서 살았다.
어둡고, 습하고, 무너질 듯한 공간.
그러나 그곳엔 작은 전구 하나와, 어머니가 가져온 책 한 권이 있었다.
《우리는 도시였다》— 사라예보 건축에 관한 책.
"건축은 사람을 살게 해. 폭격에도, 전쟁에도… 사람은 결국 공간 안에서 살아."
엄마는 책을 펼치며 속삭였다.
건축은 무너졌지만, 사람은 그것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사라예보 공항 근처, 이구만 터널.
1993년, 시민들은 몰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지하 800미터, 폭 1.5미터의 좁은 통로.
그 통로를 통해 음식, 약품, 그리고 생명이 드나들었다.
마야는 그 터널을 건넜던 기억이 있다.
"엄마, 무서워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조금만 더 가면 돼. 저기, 터널 끝엔 빛이 있어."
그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진짜, 살아 있는 도시로 나가는 유일한 문이었다.
1996년.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마야의 고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거리엔 포탄 자국이 찍힌 도로,
벽엔 총알 구멍,
도서관은 불타버렸고, 문화회관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무너진 도시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2024년 현재.
마야는 사라예보 시청 복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다.
그곳은 한때 불탔던 국립 도서관이었다.
이젠 유리와 돌, 목재가 어우러진 현대적 재건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우린 흔적을 지우지 않습니다.
복원은 단순히 예쁘게 바꾸는 게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겁니다."
그녀는 도서관 한쪽 벽에 작은 글귀를 남겼다.
“이곳은 한때 불탔다. 그러나 다시 읽히기를 바란다.”
사라예보는 다시 살아났다.
카페는 문을 열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웃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 곳곳엔 아직도 무너진 벽과 불탄 흔적이 남아 있다.
"왜 다 복구하지 않죠?"
학생이 묻자, 마야는 대답했다.
"완벽하게 복구된 도시는, 잊혀진 도시가 될 수 있어요."
건축은 인간의 역사이자, 인간의 상처다.
도시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때론 상처를 간직해야 한다.
마야는 마지막으로, 붉은 벽돌집 앞에 다시 섰다.
그 집은 여전히 폐허였지만,
그녀는 벽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작은 유리관에 넣었다.
"이건, 사라예보의 심장이에요."
그녀는 유엔 본부로 돌아가 그 벽돌을 기증했다.
그 아래, 이렇게 적었다.
“이 도시엔 생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존은 건축 안에 있었다.”
전쟁은 도시를 불태웠지만, 건축은 기억을 지켰다.
마야는 살아 있었고, 사라예보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