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재 없는 시장(zero-waste market)을 위한 작은 실험
이 글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마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6월부터 성내시장에서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말에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지만, 내년 그리고 후년까지 ‘내일을 꿈꾸는 시장’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시장 상인들과 시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정확히는 시장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일회용 포장재를 줄이자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장에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사실 시장에 대해 고민하면서 전통시장이 계속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 스스로 묻게 되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중적인 소비의 장소는 대형마트로 또 이제는 인터넷 쇼핑몰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나이가 들고 새로운 세대가 더 이상 시장을 찾지 않는다면, 이대로 전통시장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건 아닐까.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시장의 외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시장만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화는 사회가 함께 지향하는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설을 시작으로, 시장이 담을 수 있는 가치 중에 하나로 환경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 할 일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성내시장 상인회장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인회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이란 것이 호응이 좋고, 적극적으로, 당장 같이 해보자라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상인회장은 꽤나 까칠하고 곁은 두지 않는 분이므로. 그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공감의 고개 끄덕임을 해주었고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전 상인회장을 만나고, 상인회 임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긍정에 꽤나 놀랐다. 상인들은 다른 주민들에 비해 시류를 읽고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시장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포장재를 조사했다.
성내시장에는 78개의 점포가 있다. 그 중 반은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 신선식품과 떡, 참기름 등 가공식품 판매점이고, 반은 공산품을 취급하는 소매점과 음식점, 미장원 등 서비스업 점포다. 우리가 대상으로 삼은 건 전통시장을 대표하는 농수축산물 판매점과 가공・즉석식품 판매점이다. 총 24개의 점포에서, 취급하는 일회용 포장재를 조사하고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판매하는 품목, 점포 업종에 따라 쓰이는 포장재는 다양하다. 과채류 점포에서는 바나나는 비닐랩으로, 상추와 고추는 투명한 비닐봉투로, 포도는 psp트레이 위에 랩을 씌운 형태로 포장을 한다. 포장을 하는 이유는 묶음 판매가 쉽고,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다. 또 깨끗하고 보기 좋게 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정육점에서는 psp트레이 위에 흡수패드를 깔고 랩을 씌우는 형태로 고기 포장을 한다. 젊은 손님일수록 부위별로, 양에 따라 주문하기 보다 포장한 고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생선은 매장에 진열을 하기 위해 랩을 사용한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그 위에 생선을 진열하고 랩을 씌운다. 온도를 유지하고 파리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곡류와 건어물은 롤백이나 투명한 비닐봉투로 포장한다. 단위 판매의 용이성 때문이다. 특히 건어물은 냉장・냉동 보관하기 때문에 소량의 물건만 포장해서 전시대에 내어놓는다. 떡과 반찬은 psp트레이 위 랩, 빵은 opp 비닐봉투, 만두와 같은 즉석식품은 psp도시락용기를 사용한다.
이렇게 점포에서 직접 포장한 경우 외에, 이미 산지에서 소량으로 단위 포장을 한 물건도 있다. 배송 과정에는 스티로폼박스, 대형비닐봉지, 마대, 비닐망사가 쓰인다. 이렇게 산지, 배송, 진열의 단계를 거쳐 포장이 이루어지고, 물건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 또 한 번 포장의 과정을 거친다. 검정비닐봉투가 그 것이다.
시장에서 검정비닐봉투 쓰지 않기, 가능한 일일까?
시장에 있는 야채가게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매대 위에 야채가 진열되어 있다. 상인은 그 뒤에 앉아 있다. 혹은 진열된 야채 사이를 이동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검정비닐봉투가 있다. 검정비닐봉투는 크기별로 묶여서 상인의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매달려 있다. 벽에 걸려 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다. 가끔 녹색비닐, 파란색비닐도 섞여 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 산 물건의 개수만큼 검정비닐봉투가 생긴다. 장바구니를 들고 간 경우에 간혹 비닐봉투를 거절할 수 있지만, 흙이 묻어있는 채소나 물기가 있는 생선은 비닐 사용을 피할 수 없다. 여러 채소가 장바구니 안에서 섞이지 않도록 하려면 비닐 포장이 편리하다. 그리고 비닐봉투는 그대로 냉장고 야채칸에 들어간다.
서울시새마을부녀회는 올해 전통시장 내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한다. 서울시상인연합회와 협약을 맺고 10개 전통시장에서 장바구니 만들기와 기부받기, 비닐봉투 없이 장을 본 경우 장바구니 증정하기, 속비닐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문지 모아서 전달하기 등 이벤트를 한다.
알맹@망원시장은 지난해 9월부터 망원시장에서 '비닐봉투 줄이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쓰지 않는 에코백을 기부 받아 장바구니로 쓸 수 있도록 대여한다. 쓰고 난 장바구니를 돌려주면 200모아(마포 지역화폐)를 준다. 직접 장바구니나 다회용기를 가져와 사용하는 경우 100모아를 지급한다. 매월 '장바구니 캠페인'을 하고 비닐봉투 없이 장을 본 사람에게 "덤(시장에서 파는 야채)"을 준다.
올해 4월부터 대형마트, 백화점, 165㎡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와 재활용을 할 수 없는 소재의 쇼핑백을 사용할 수 없다. 작년까지 일회용 비닐봉투를 유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올해부터는 완전히 사용할 수 없다. 현재 소규모 점포, 전통시장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시민단체의 요구가 높아 곧 규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수막 속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전통시장에서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려면 시장 이용자가 각자 장바구니를 챙겨가는 것이 최선이다. 좀 더 부지런하다면 여러 품목을 나누어 담을 수 있는 속주머니나 물기가 있는 식재료를 담을 용기를 챙겨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장보기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항시 갖출 수 만은 없는 것.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장을 볼 수 없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검정비닐봉투 대용으로 우리가 생각한 건 현수막으로 만든 속주머니다. 속주머니를 생각한 건, 장바구니가 있어도 검정비닐봉투가 장바구니 안에 쌓이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수막을 생각한 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있고, 동네에서 직접 만들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수막 속주머니를 우리는 ‘내일주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일주머니를 점포에 비치하고 상인들은 검정비닐봉투 대신 내일주머니를 사용한다. 소비자는 내일주머니를 사용하고 난 후, 수거함에 돌려놓는다. 수거함에 모인 내일주머니를 수거하여 상인들에게 다시 배포한다. 이것이 우리의 시나리오다.
추석 전 주, 9월 6일 내일주머니 배포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 날 시장에서 '비닐봉지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함께 하려고 한다. ‘비닐봉지 사용 줄이기’에 동참하는 시장 이용자에게 '내일리본'을 나누어 줄 것이다. 내일리본을 가지고 장을 보면 상인들은 묻지 않고 내일주머니에 물건을 담아줄 수 있다. 내일주머니를 이용해서 함께 장을 보는 행사도 할 예정이다.
그 결과는? 기대가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내일주머니 제작 과정에서 이미 우리는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내일주머니를 동네에서 제작하려 했지만 최근 동네 봉제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수막이 마모되면 인쇄 잉크가 부스러져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내일주머니를 상시 수거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인 수거함을 고려하고 있는데, 회수가 잘 이루어질 지 알 수 없다.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좀 더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해결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그래도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
비닐봉투 사용하지 않기, 그 다음에 남아있는 건 소분(小分) 포장하지 않기다. 최근 그린피스에서 "플라스틱없을지도"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매장 내 절반 이상의 물건을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가게와 시장 스물 한 곳이 "플라스틱없을지도"에 소개되어 있다. “플라스틱없을지도"에 소개된 점포와 시장의 이미지를 찬찬히 들여다 보다, 여기에 소개된 시장의 모습이 성내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해외 주요 도시에 생겨나고 있다. 서울에도 "더 피커"를 시작으로 "지구"와 같은 매장이 생기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식재료를 소분 포장하지 않고 벌크로 진열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도록 한다. 식재료를 담아갈 용기는 소비자가 직접 챙겨오거나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큰 마대에 말린 고추가 잔뜩 쌓여있고 그것을 되로 퍼주는 모습. 곡식이 종류별로 가마니에 담겨 있는 모습. 정리되지 않은 산나물이 매대에 쌓여있는 모습. 전통시장의 고유한 모습은 원래 이런 풍경 아니었나. 제로웨이스트가 달리 제로웨이스트가 아닌데.
성내시장에는 포장한 물건이 많은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가 있다.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가게라도 가게마다, 판매방식에 따라, 포장재 사용 정도가 다르다. 마트와 같이 냉장시설을 갖추고 깨끗하게 포장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채소와 과일을 박스 채 내어놓고 파는 가게가 있다.
직접 재배한 채소는 포장을 하지 않는다는 야채가게 "허우리", 모든 채소와 과일을 포장하지 않은 채 빨간 바구니에 담아서 파는 "짱구네", 곡식을 종류별로 마대에 담아 파는 "의성상회", 다양한 김치를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파는 "엄마손맛".
포장을 하는 가게가 포장을 하는 이유가 아닌, 포장을 하지 않는 가게가 포장 없이 장사를 할 수 있는 비밀을 이들 가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성내시장의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 이 글에서 "우리"는 내일만사의 멤버를 뜻합니다.
내일만사는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사업을 지원받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도전 : 포장재 없는 시장(zero-waste market), 성내전통시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작은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