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플라스틱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_비누전 : 2주간의 여정
지속가능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선택지는 우리가 소개하는 것이 단지 ‘정보'가 아니라 실제의 ‘쓰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온라인 상에 텍스트로 말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온라인의 정보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내 손에 닿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은 그러니까 몸으로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사람은 다른 의미를 지니니까.
지속가능 제품도 단지 들어본 것,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써본 것, 내가 경험해본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했다. 선택지에서 진행하는 지속가능 제품 소개 오프라인 버전을 우리는 '기획전'이라 부르고 있다. 이 기획전의 첫 번째 주제가 바로 ‘비누'였다.
비누를 첫 번째 주제로 선택하게 된 건, 비누가 지속가능 제품 중 가장 보편적인 물건이라 생각해서다. 비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새삼스레 비누에 주목하는 건, 비누의 역할이 대부분 액상세정제로 대체되었고 그렇다 보니 플라스틱 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다. 액상세정제는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대부분 펌핑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어 재활용조차 할 수 없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다행히도 액상세정제를 비누로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많이 생겨났다. 코스메틱 브랜드도 바디케어 브랜드로 이제는 비누를 하나씩 만드는 게 마치 트렌드가 된 듯. 여러 브랜드의 여러 제품이 있고 모두 온라인에서 검색 가능하고 구입도 가능하지만 이것을 모두 한자리에서 보고 써볼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게 되었다.
비누전 준비 : 이웃이라는 존재
선택지샵(선택지 멤버들이 머물고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는 장소를 우리는 선택지샵이라고 부른다)은 성내동의 현대아파트 상가에 위치한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가 머무는 건물이 현대아파트 상가라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 중 하나를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존재하는 담벼락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담은 아파트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생겨났다. 아파트에 살면 담을 치는 습성이 생기나 보다.
담이 생기고 아파트 상가 앞에는 차 없이 사람만 다니는 작은 골목이 생겨난다. 우리는 이 건물 중앙에 위치한다. 내가 머무는 건물 앞에 반은 퍼블릭 반은 프라이빗한 공간을 가진다는 건 행운이다. 우선 조용하고 볕이 잘 들고 그리고 공간 활용의 여지가 생긴다. 우리는 이곳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주자에게는 행운인 이 조건이 방문자들에게 불편한 요소가 된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찾아오기 힘들었어요.”, “근처를 몇 바퀴 돌았어요.”는 방문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 위치를 인지하게 하기 위해 나름 신경을 썼지만 부족했나 보다.
선택지샵 앞 공간을 좀 더 눈에 띄게 그리고 내부 공간부터 외부 공간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확장성을 위해 몇 가지 일을 벌였다. 그중 하나가 벽화다. 이전부터 담벼락을 활용하여 뭔 짓을 하고 싶었었다. 제로웨이스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선택지를 알리고 싶었고, 밤에 이동하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조명을 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녹지 면적을 늘리고자 화단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고,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 공간을 만들고도 싶었다. 여기까지 나열하고 보니 욕심이 과하다. 내가 좀 그렇다. 벽화는 그 첫 시작이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인간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현대아파트 부지에 속해있지만 기생하는 입장에 처해있다. 현대아파트 단지 내 상가 주차장이 있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상가 사람들의 주차장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어쨌든. 아파트와 상가 사이의 벽을 사유화하는 일이 주변의 어떤 반발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선 크지 않게 벽화 하나를 그렸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벽화를 더 그려도 된다는 판단이 든다. 이렇게 하나씩 늘려가는 것으로.
난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상가 지하에 위치한 슈퍼 주인아저씨가 우리 공간 앞에 놓은 오토바이. 슈퍼 주인아저씨는 물건 적재를 즐긴다. 우리 옆집 도자기 공방 앞에도 한 무더기 쌓여있다. 미관상 좋지 않고 보행을 방해하지만 이곳이 사유지란 이유로 묵인, 방치되고 있다. 슈퍼 주인아저씨와 공방 입주자의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또 다른 등등의 이야기(슈퍼 주인아저씨의 면을 고려할 때 차마 전하기 힘든 이야기다)를 전해 듣고 슈퍼 주인아저씨와 마찰이 생길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입주하는 날부터 슈퍼 주인아저씨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
비누전을 시작하며 드디어 오토바이를 치워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동구밭 설거지 비누를 가지고 슈퍼에 찾아갔다. “행사는 딱 2주입니다. 그동안만 잠시 오토바이를 다른 곳에 놓아주세요.” 다행히 승낙이 떨어졌고 비누전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 공간 앞에 오토바이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골목 입구 각각 놓아두었던 작은 입간판 중 슈퍼 쪽 입간판은 사라졌다.
비누전 준비 : 쓰레기 만들지 않기
행사의 기본은 쓰레기. 행사를 해본 사람은 행사 이후에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생긴다는 걸 알고 있다. 기본 1000부 이상 인쇄할 수밖에 없는 포스터는 몇 장 쓰기도 않고 당연히 버려지기 마련이고, 현수막은 말할 것도 없다. 행사를 알리고 행사장의 위치를 알리고 행사장 내부 안내 역할을 하고 행사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는 소품은 모두 일회성 행사를 위해 준비되고 이후 버려진다.
행사 운영을 위해 갖추어진 인프라는 모두 플라스틱 양산에 기여한다. 좀 다른 걸 하려고 하면 시간이 들고 돈이 든다. 행사 정보를 전하고 행사장 위치를 알려주는데 주로 사용하는 배너, 현수막은 모두 플라스틱이다. 배너는 페트, 현수막은 폴리에스터. 실내에서 쓸 수 있는 종이 배너가 최근 나오고 있지만 비바람을 견뎌야 하는 외부 설치물을 위한 대체물은 아직 없다. 배너와 현수막을 쓸 수 없어서 벽화를 그렸고 시트지만 떼었다 붙였다 하며 반복하여 쓸 수 있는 입간판을 쓰게 됐다. 이 입간판은 대부분 우리가 쓰는 다른 물건과 같이 우리의 반려 물건이다. 우리와 함께 한 장소에 살고 이사를 하고 또 다른 장소를 산다.
선택지샵 입구에 붙인 행사 안내 포스터는 딱 3장만 소량 인쇄가 가능한 곳에서 인쇄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내부 프린터기로 인쇄했다. 우리의 작은 사무실 규모에 맞게 작은 우리의 프린터기는 A4 크기 종이까지 인쇄가 가능하다. 이 프린터기를 써야 하니 모든 인쇄물은 A4를 규격으로 한다. 브로셔는 A4 사이즈로 인쇄하여 반접했다. 비누전 기프트박스 제품 설명 내지는 A4를 4 등분한 크기다. A4 크기를 기준 삼아 접거나 등분하는 방식으로 인쇄 여백을 없애 인쇄 후 잘라내는 종이 쓰레기를 줄였다.
플라스틱 대신 사용하기 가장 좋은 건 종이다. 우리가 비누전에 사용한 종이는 총 세 가지. 행사 안내 브로셔는 슈가랩 사탕수수 종이를 사용했다. 기프트박스 내지와 브랜드 소개 보드, 비누 제품별 네임택에는 켄도(재생종이 + 비목재 펄프)를 썼고, 그 외 인쇄물에는 재생 복사용지 65g를 사용했다. 브로셔 받침대, 비누 종류 표시 스탠드 등 세우고 붙이고 하느라 두께감이 필요한 소품은 택배박스를 재활용해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외부에서 인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샴푸통 도장 찍기를 위해 벽에 길게 늘어뜨려 붙인 종이가 그것. 비누를 쓰면 플라스틱 통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였다. 우리가 다 같이 플라스틱을 줄여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의 참여로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래서 줄인 플라스틱 양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 기획은 실제 플라스틱 통 크기의 종이를 붙이는 것이었는데, 종이가 아까워 플라스틱 통 크기를 1/7 가량 줄였다. 이 인쇄에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9000 디자인 창작소 플로터를 사용했다.
이름이 비누展이니까 전시회답게 비누를 하나하나 작품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대 위에 트레이싱지를 깔고 비누를 나열할까, 종이 트레이를 만들어 비누 하나하나를 받칠까 등을 고민하다, 유레카! PP성내(프레셔스 플라스틱 성내 : 작은 플라스틱 조각 구하기) 벽부 선반을 만들 때 사용하고 남은 나무 조각을 비누받침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백길창작소 목수님이 멀바우 자투리 목재를 사용하여 손수 잘라 만들어준 것. 가구 목재인 멀바우를 선반 적재용으로 주시다니 이런 멋스러움이.
비누전 후 : 비누는 써봐야 제맛
비누전에 방문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향이 너무 좋아요!”. 우리도 느끼고 있었다. 비누를 들여놓은 후 공간의 쾌적함이 달라졌다는 것을. 각종 비누가 뿜어내는 향기가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신선함. 문을 열어놓으면 향기 때문에 샵 내부를 한번 더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은 향을 맡으면서 살게 되어 있었던 것 아닐까, 자연이 갖가지 향을 사람에게 선사하였었을 테니. 아무튼 향기는 사람을 여유 있게 하고 기분 좋게 하고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비누를 선택하는 기준도 당연 향이다. 온라인으로 비누를 볼 때에는 비누의 기능, 사용 기간 등 객관적 정보에 의존하게 되는데, 실제 비누를 접한 사람들은 보다 감성적이다. 기능보다는 촉감, 색깔, 향기로 선택의 기준이 옮겨간다. 감성에 의존하여 무언가를 고르는 일은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 된다. 어디에 쓸 것인지, 아이가 써도 좋은 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는 취향의 후순위 기준이 된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비누는 파란색이 선명한 비누. 예외 없이 모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비누를 좋아한다. 여자아이들은 분홍색을 좋아한다. 요즘은 남녀 아기들에게 색 구분하여 입히거나 놀잇감을 찾아주거나 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선호가 있었다. 20대들은 환경 이슈에 좀 더 민감하고, 아이가 있는 분들은 아이가 쓰기 안전한 비누를 찾고, 남성들은 쿨링 효과나 모발관리에 관심이 있고, 50대 이상 여성은 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한다.
두 번째 반응은 “이렇게 비누가 많은지 몰랐어요!”. 그렇다. 우리도 모아놓고 보니 비누가 가짓수가 이렇게나 많을지 몰랐다. 이 비누 각각의 정보(가격, 용도, 기능, 성분, 포장재 종류 등등)를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종류가 많아지면 선택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선택지 멤버들의 큐레이터 역할이 중요했다. 찾고 있는 종류의 비누, 가격대, 기능, 취향을 고려해서 추천을 한다. 추천받은 비누는 ‘특별히' 준비한 싱크에서 사용해볼 수 있다. 써보고 사야지. 그림만 보고 살 순 없잖아.
비누전 관람은 샴푸통 도장 찍기로 마무리된다. 이 이벤트는 남녀노소 불문 누구나 좋아했다. 도장 찍는 모습을 보면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벽면에 늘어뜨린 종이 위로 샴푸통 이미지가 하나하나 쌓여갔다. 그렇게 2주 동안 우리 함께 줄인 플라스틱 통 수는 약 600여 개. 이 종이는 마치 상장처럼 곱게 말아 소중하게 보관해두었다.
비누전을 여는 동안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가요? 가보고 싶은데요...” 아!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공간이 작은 탓도 있지만 우리 전시공간은 휠체어 회전각이 나오지 않는다. 1층이라 계단이 없어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입구까지 들어올 수 있지만, 그다음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어렵다. 나는 상황을 설명한 끝에 “죄송합니다. 배려를 못했습니다.”로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비누전 이후 선택지샵에서는 비누 규모를 줄여 판매를 지속하고 있다. 배송 없이 비누를 직접 사고 싶다면 들러보시길.
비누展 created by
전시기획 임피디
공간디자인 다니엘김
시각디자인 감작자
홍보 & 운영 잔느로
자료수집 지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