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순에게

by 퇴근후작가
KakaoTalk_20251211_140024265.jpg 초대전 D-100 저녁의 작업실 풍경. 나의 분신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나의 모순과 마주하는 일이다.


나는 늘 단정하고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정작 내 마음속은 언제나 폭풍전야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내면의 나는 사실 아슬아슬 버티고 있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

홍보 일을 오래 해오면서 나는 늘 정돈되고 정확한 사람인척 연기했고

매일 내가 가진 에너지의 110% 이상을 써가며 살아왔다.


겉으로는 단단한 모습이었지만

예민함, 불안함, 두려움, 책임감 같은 감정들은 복잡했고

나는 그 서로 다른 마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겉과 속이 따로 노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여러 병증으로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물감을 짜서 붓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남의 평가에 민감해하며, 빨리, 잘 그려야지 욕심만 냈다.


하지만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만 알고, 나만 느끼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시간.


외부 소음이 사라지니

그동안 들리지 않던 내 목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온전히 나와 마주한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림은 내가 어떤 리듬으로 사는 사람인지를 그대로 알게 해 줬다.

왜일까. 왜 나는 그림을 통해서야 비로소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림은 내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급함과 여유, 완벽함과 실수, 강함과 불안함

서로 모순되는 감정들이 그림 속에서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순들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그림은 어느새 거울이 되었고, 나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랜 시간 외면해 온 나 자신을 처음으로 천천히 이해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외부의 시선만을 보며 살지 않는다.
그림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생각보다 여렸으며,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그림은 내가 되어 버렸다.


나의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그 모순 속에서 나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힘든 순간도 많지만 분명한 건.

나는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

나의 모순이, 결국 나를 나에게 되돌려 준 셈이다.

인생, 참 재밌지 않은지.


★ 스마일미러볼 윤지선 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thing_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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