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두 번으로 나뉜다.
퇴근 전의 삶과 퇴근 후의 삶.
보통의 경우 퇴근 후의 시간은 휴식에 가깝겠지만,
나의 퇴근 후 시간은 또 다른 전환의 시간이다.
이미 사무실에서 다 써버린 것 같은 에너지를 다시 끌어모아
혼자만의 작업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러다 단명하겠다"라는 말이다.
농담 섞인 푸념처럼 들리지만
에너지를 이렇게 밀도 있게 몰아 쓰다 가는
머지않아 내가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존 본능의 경고 같기도 하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요즘 나는 예전과는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본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생긴 변화일까,
아니면 이전부터 누적되어 온 방식의 결과일까.
의외의 부분에서 아예 기억을 못 하거나
신경이 꺼져 있는 상태가 되는 일이 잦아졌다.
본래 나는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공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특화된 사람.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나의 감각들은 늘 곤두서 있었고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미세한 기류까지 포착해 내곤 했다.
그것은 타고난 기질이자, 나를 갉아먹는 피로의 근원이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유난히 민감했다.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신호를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어떻게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나를 소모하며 배려하고 챙겼다.
그 결과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했고 주변을 세심하게 보살폈지만
정작 나는 자주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다르다.
의식적으로 차단하려 애쓰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 중요하지 않다 판단한 정보들은 다 패스한다.
그로 인해 사소한 실수가 생기기도 하지만
나는 나에게 낯선 이 무심함이라는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로 하여금 최소한의 것들에만 마음을 쓰도록 강제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혼자 식사를 할 때 매번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매일 똑같은 걸 먹느냐고 묻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의 나에게는 '취향의 즐거움'보다
'에너지를 보존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간투자는 물론 그 시간 동안 집중력, 감정소모, 신체 감각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림을 그리며 몰입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대인 관계에 대한 반응성은 낮아지고 있다.
예전처럼 모든 말과 표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굳이 의미를 붙이지 않게 되었다.
이 지점은 분명 위안이 된다.
적당한 거리감 덕분에 나는 덜 소모되고 외부 자극에 덜 휘둘리게 되었다.
다만 문제라면, 이 무뎌짐이 곧바로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외부에 대한 반응은 줄었지만,
내부의 불안도와 각성도는 여전히 높은 상태로 유지된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내부의 불안도와 각성도는 여전히 높은 채로 유지된다.
이 모순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변화를 좋고 나쁨으로 서둘러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감정은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주의력과 체력을 끊임없이 끌어다 써야 한다.
사용 방식이 조정되지 않으면 반드시 고갈된다.
지금의 나는 예민함과 섬세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범위를 재설정하는 중이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부담감 이외에는
조금 덜 반응하고, 조금 덜 기억하고, 조금 덜 애쓰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고
그림을 통해 내가 나를 좀 더 잘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지키고 싶은 단 하나가 분명하다면
나머지 것들은 조금 희미해져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 같다.
★ 스마일미러볼 윤지선 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thing_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