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은 반반이 아니다

일과 그림 사이에서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것

by 퇴근후작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면서

나는 일과 그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고민했다.


내가 유지하고자 하는 두 개의 세계를

어떻게 함께 살아낼 것인가, 그 질문에 더 가까웠다.


낮에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때때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보통은 끝도없는 불안으로 빠지게 했다.


처음의 나는 균형이라는 말을 아주 단순하게 이해했다.

균형이란 곧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일 50%, 그림 50%.

일도 놓치지 않고 그림도 놓치지 않으려면,

마치 저울의 양쪽처럼 언제나 비슷한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가 두 가지를 모두 제대로 해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한쪽으로 조금만 기우는 느낌이 들어도 불안했다.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 그림을 그릴 때 불안했고,

그림에 더 몰입하면 일에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스스로를 검열했고,

그 검열은 자주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균형은 꼭 반반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진짜 균형은 똑같이 나누는 데 있지 않았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시기에 따라 더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렇게 기울어지더라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정하는 힘에 더 가까웠다.


균형은 멈춰 있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감각이었다.

늘 같은 비율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고 그에 맞게 무게를 옮길 줄 아는 것.

그 조정을 내가 판단하고 내가 주도권을 잡는 것,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삶은 애초에 늘 반반일 수가 없다.


어떤 시기에는 일이 나를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홍보팀을 이끌면서 일에 집중해야 하는 날도 많다.

그럴 때 억지로 그림의 시간을 맞추겠다고 애쓰는 것은

오히려 삶을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든다.


반대로 어떤 시기에는 그림에 몰입하게 된다.

초대전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처럼

이 시기는 작가로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의 어떤 부분을 조금 미루더라도 그림 쪽에 더 집중해야만 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기울어짐 자체를 불안해했다.

한쪽에 더 몰입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본다.

한쪽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두 가지 모두를 오래 지켜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방향으로 힘을 보내는 일이다.

어느 한쪽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소중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다른 비중을 허락하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훨씬 현실적이고 성숙한 균형이라고 느낀다.


아마 이런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간의 힘도 있을 것이다.

오랜 방황과 성찰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많이 다치기도 했다.


나는 일을 20년 넘게 해 왔다.

오랜 시간 같은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력이 쌓인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 시간은 몸에 감각을 남긴다.


언제 힘을 줘야 하고 언제 완급조절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중요한 순간에 결과를 낼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 조금씩 새겨졌다.

내게도 그런 리듬이 생겼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처음부터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아도

어느 부분은 효율적으로 해내고, 어느 부분은 미리 예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이 나를 만들어준 것이다.


KakaoTalk_20260322_105943734.jpg 윤지선 초대전 '나의 스마일미러볼 - 유용한 세상 속, 무용한 반짝임'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일과 그림 사이를 오갈 수 있다.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일에 깊이 들어가고,

그림에 집중해야 할 때는 작업의 세계로 한없이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지금 이 시기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묻고,

대답에 따라 나를 움직인다.

그게 요즘 내가 이해하게 된 균형이다.


이건 어쩌면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

언제 지치고 언제 회복되는지

무엇은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무엇은 잠시 미뤄도 되는지를 알아가는 일.


그런 자기 이해가 쌓일수록 삶의 균형은

겉으로 보기에 예쁜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느 시기엔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어느 시기엔 그림에만 빠져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안다.

그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중심을 계속 옮겨가며

내 삶의 주도권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 걸.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균형이라는 말 안에

나의 완벽주의를 숨겨두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두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하고,

어느 쪽에서도 빈틈이 없어야 하며,

늘 반듯하게 해내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반듯하게만 움직이지 않는다.


삶은 계획표처럼 정교하게만 흘러가지 않고,

사람도 언제나 일정한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균형은 똑같이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내 중심을 잃지 않는 데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초대전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불안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붙들기 위해

다른 것들의 무게를 잠시 조정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예전의 나는 균형을 멈춰 있는 상태로 생각했다.

항상 반듯하고, 항상 일정하고, 항상 보기 좋게 유지되는 상태.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균형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것.

기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야 할 때는 기울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

그 유연함이 오히려 더 강한 힘이라는 걸 이제는 믿고 싶다.


지금의 나는 오랫동안 한 세계를 살아낸 사람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세계를 새롭게 확장해 가는 사람이다.


그 두 삶이 서로를 갉아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느낀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둘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살아 있게 두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뒤늦게 도착한 결론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균형은 반반이 아니다.


균형은 조율이다.


그리고 그 조율은 두 가지를 모두 사랑하는 사람만이 끝내 배워가는 삶의 기술이다.


그러니 불안은 잠시 두고,

지금의 초대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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