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검열에서 벗어난 순간

by 퇴근후작가

지금은 초대전 기간이다.


원래 같으면 전시장에 가장 많이 머물러야 할 시간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무실 일이 너무 많아서

어제도 오늘도 갤러리에 가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도 베이글을 먹으며 일을 쳐냈다.


끝없이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 있었고

초대전 중인 작가이면서도

정작 전시장에 있지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낮에는 정말 정신없이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다시 그림을 그리는 내가 갑자기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낮에 과각성된 머리 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원래도 안좋은 수면이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내 그림의 방향이 정말 맞는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초대전까지 하고 있으면서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작업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혹시 혼자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이 없어졌다.


거기에 아주 현실적인 걱정도 따라왔다.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들이 팔리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하면 어떡할까.

나는 이 마음을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을까.

그런 앞선 걱정들이 며칠 동안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그런데 부서 회의 중 놀라운 문자를 하나 받았다.


내가 5월 아트페어에 제출한 대표작이

아트페어 사전 홍보 작품으로 선정되었단 내용이었다.


순간 그 문자를 보고 또 봤다.

너무 뜻밖이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가슴만 쿵쾅거렸다.


선정된 작품은 이번 초대전의 대표작이기도 한

<아몬드 꽃이 피는 날에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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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Almond Blossom을 배경으로 차용해

나의 페르소나인 스마일미러볼을 화면 위에 겹쳐놓은 작품이다.


배경색이 유난히 독특하게 발현되어

나 역시 개인적으로 많이 아끼는 그림이다.

그래서 더 놀랐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던 이 그림을

남들도 좋게 보아주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내 그림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의심하고, 검열해 왔다.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좋음을 끝까지 믿지 못했고

자꾸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아주 작게나마

바깥의 답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다고 믿었던 것이 나만의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계속 자기 검열 쪽으로 기울어 있던 마음이,

이 순간을 지나며 아주 조금은 확신 쪽으로 움직였다.


물론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초대전 기간에도 전시장에 가지 못한 채 사무실에 앉아 있었지만,

그 사이에도 내 그림은 누군가의 눈에 닿아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이 문자는 단순한 소식 이상으로 남는다.

아트페어 사전 홍보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도 물론 기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한 그림을, 남들도 좋아해주었다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내 안의 자기 검열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아주 작은 확신 하나를 남겨주었다.


지금의 나는 그 확신 하나만으로도

조금 더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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