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증명하는 삶을 살아왔다.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
어디에 놓아도 제 몫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래 애써왔다.
겉으로 보면 K-모범생, K-장녀 같은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늘 긴장과 맞닿아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해야 했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산다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조금 달라졌다.
적어도 처음의 그림은 증명과는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도 아니었고,
어떤 성과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조금씩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에 눈길이 가는지,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림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그래서 그림은 내게 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그저 좋아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림이 하나둘 쌓이고 전시를 준비하고
사람들이 내 그림을 바라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하나의 마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기대였다.
이번에는 더 좋아야 할 것 같고,
이전보다 더 나아져야 할 것 같고,
이왕 시작한 거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 안에서도
자꾸 나를 확인하고,
증명하고 싶어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증명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서 시작한 그림인데
그 안에서도 또다시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더 잘 그리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들이
의미 있었다는 확신을 어딘가에서 얻고 싶어진다.
그림은 분명 나를 내 안으로 데려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욕심과 결핍,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불안을
아주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평생 홍보 일을 하며
조직을 빛내기 위해 애써왔던 내가
이제는 나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만나
더 큰 욕심을 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 사람인지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잘하고 싶다.
비교하지 않고 싶으면서도 어느새 비교한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싶지만
결과 앞에서는 쉽게 흔들린다.
증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모순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잘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함께 생기니까.
오래 붙들고 견뎠던 시간들이
아무 의미 없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기대가 생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그 기대가 다시 나를 옥죄기 시작할 때
내가 왜 그림을 시작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계속해서 나를 증명해 내는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다.
대신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오래 들여다보고
천천히 알아가는 일이
지금의 내 삶에서는 더 중요해졌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힘든 병행의 삶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일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삶이
겉으로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지금의 내게 더 중요한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점점 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무엇을 할 때 내가 살아나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고,
무엇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림이
또 다른 증명이 되어버릴 때조차도
나는 그것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 안에는 여전히
나를 더 깊이 만나게 하는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은 내게
자유이면서도 부담이고,
위로이면서도 긴장이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이면서
또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그리게 될 것 같다.
그 모순 속에
지금의 내가
가장 솔직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