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거의 처음으로) 붓을 정리하고 화구박스를 정비했다.
유화를 시작한 지난 1년 동안 붓이나 물감을 새로 산적만 있었지 망가진 붓을 정리하거나 엉망진창이 된 화구박스를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늘 퇴근 후 뛰다시피 화실로 가 저녁식사도 거르고 화장실도 안 가면서 10분이라도 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종종거리기만 했었다. 그렇다 보니 그림을 그릴 때 망가진 붓이 먼저 손에 잡혀 그림의 선이 삐뚤어지거나 뭉개지는 경우도 많았고, 중간에 다시 붓을 바꾸는 수고를 해야 하는 적도 많았다.
어제 모처럼 마음을 잡고 망가진 붓을 골라내고 새 붓을 세팅하고 나니 뭔가 다시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실은 최근에 마음이 너무 급했던 터였다. 가족들의 응원과 두 분 선생님의 지도, 선배 작가들의 도움으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즐거워야 하는데 어떻게든 빨리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실수도 잦아지고 오히려 작업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오래 못하고 중간에 지쳐 나가떨어지겠다는 생각에 깊은 호흡을 몇 번 한 후, 정리를 시작했는데, 별거 아닌 이 행동으로 마음을 새롭게 다잡게 되었다.
내가 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림을 그리는 게 왜 좋은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빨리 화실에 가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왠지 오늘부터는 좀 더 완성도가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한 템포 쉬어가는 이 시간이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