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캔버스 어디서 샀니? 이런 거 판 놈들이 진짜 나쁜 놈들이네!"
"캔버스 틀을 바꿀 수 있긴 하지만, 지금 하는 작품들은 그냥 연습했다고 생각해도 된다!"
어제저녁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을 봐주시던 사부님이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가 좀 이상하다며 이리저리 살펴보신 후 하신 말씀이었다.
순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9월부터 시작해 이미 완성한 작품 2점과 현재 진행 중인 작품 2점의 캔버스가 너무 안 좋은 거라 작품으로 내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하신 이야기였다. 하지만 언젠가 하게 될 나의 첫 개인전 작품을 준비핟다는 생각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그린 그림들이었기에 너무 당황스럽고 속이 상했다.
초보지만, 마음은 프로작가처럼 붓칠 한 번도 대충 하지 않으려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작품들이었다.
물론 화실에도 연계된 화방이 있지만, 그 화방에서 캔버스를 주문하지 않고 업체를 알아봐 집으로 캔버스를 배송받았던 이유는 그림 그리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유화는 그림을 그리기 전 젯소(캔버스에 하얀 밑 칠을 하는 것) 작업을 3-4회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화실에서 하면 그날 하루는 그림을 그릴 수 없기에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 업체를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캔버스가 문제가 있다니...
스노우볼을 작품 주제로 정하고 거기에 이런저런 브랜드 로고들을 배치한 내 그림들은 화실 선생님들과 회원들에게 독특한 주제라 눈길이 간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에 나름 자부심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정작 캔버스 하나 제대로 못 고르다니. 속도 많이 상했지만 너무나도 창피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무 부끄러웠다.
어수선한 마음에 작업을 중단하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지난 몇 달 동안 퇴근 후 매달린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특히, 이번주는 진행 중인 그림도 잘 그려지고 있고 다음 작품 시안도 잘 준비되고 있던 터라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정말 그림에 진심이구나. 정말 많은 애를 쓰고 있구나..."
언제 이렇게 내 삶에서 그림이 중요해졌는지 모르겠다.
퇴근 후의 시간을 투자해 다른 무언가를 하는 일.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시간이 오히려 직장에서의 시간을 버티게 해 주고, 일상 속에서도 나의 에너지원천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만의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 여기저기 알아보니, 사부님이 겁을 주신 것과는 달리(?) 캔버스 틀을 바꾸는 건 화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물론 비용은 발생하지만) 부족한 작품이지만, 그래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
누구나 처음인 순간들이 있다. 피카소도 고흐도 다 초보작가인 때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어제의 일은 교훈으로 삼고 계속 내 그림을 그려야지. 그러다 보면 실력도 더 늘고 좋은 작품들도 그려 언젠가는 첫 개인전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초보지만, 마음만은 프로처럼. 그렇게 묵묵하게 계속 그려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