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티파니 반지는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하얀 실크 리본으로 묶인 하늘색 케이스에 담긴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린 내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 꼭 티파니 반지로 청혼을 받아야지라는 결심(?)을 한 적도 있었다. 오드리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도 나의 이런 설렘에 한몫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우리 부부를 꼭 닮은 딸아이와 함께 오붓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한 결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티파니반지가 아니다는 것이다. ^^;
백설공주, 오로라공주, 인어공주 등의 디즈니 동화도 그 내용을 보면 역경을 거친 왕자와 공주가 결국 결혼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happily ever after)라고 이야기를 끝낸다. 이런 디즈니만화의 부작용일까, 나도 어린 시절에는 내가 어떤 결혼을 하게 될지 형식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생각했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형식을 다 갖춰서 결혼을 해야
나의 결혼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마치 부적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상상 속에서 나의 행복한 결혼은 이랬다. 청혼은 티파니 다이아몬드 반지로 받고, 웨딩드레스는 베라왕을 입고, 결혼식은 흐드러진 꽃으로 장식된 호텔에서 하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의 멋진 피로연 파티를 열고 그리고 떠나는 행복한 신혼여행...
그런데 살아보니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평생 다르게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꾸린다는 게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것 말이다.
티파니 반지를 선물해 주는 남편보다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조용히 채워줄 수 있는 남편이 백만 배 더 좋은 남편이라는 것. 철마다 명품 가방을 선물해 주는 남편보다 주말 저녁 맛집을 찾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나의 말도 안 되는 농담에도 면박을 주지 않고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좋은 남편이라는 것.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잔잔한 순간들로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런 깨달음과 상관없이....
여전히 난 티파니 반지의 티파니블루 색만 봐도 설렌다.
그래서 이번 스노우볼 작품엔 커다란 티파니 다이아몬드 반지를 넣어보았다. 정방 30호 캔버스에 담긴 엄청나게 큰 티파니반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큰 티파니반지일수도 있겠다 ^^
유화로 다이아몬드 반지의 컷팅을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반지의 영롱함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여기에 피콕그린과 민트색 컬러의 꽃을 은은하게 채워 넣었고 조그마한 나비 두 마리를 넣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도에 잔 재미를 주려고 했다.
배경처리에는 좀 더 유화적인 느낌을 넣고 싶어 많은 물감을 사용해 임파스토 기법을 써보았다. 나이프와 거친 돈모 부채붓을 활용해 물감이 꾸덕하게 울라가 질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표현했다.
이렇게 또 한 작품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