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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후작가 Apr 12. 2024

부러움은 나의 힘


우리 화실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고수 중의 고수가 한 명 있는데, 나랑 동갑에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회원이다.     


유화 재료의 맛을 잘 살리면서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데, 완성된 작품은 영국 박물관 어딘가에 가져다 놓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그림을 그린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전공자라고 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기에 재능도 있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는 그녀를 난 늘 부러워한다.    

  

보통 혼자 조용히 그림만 그리는 보통의 회원들과는 다르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주고, 내게 없는 물감이나 재료가 있을 때면 옆에서 얼른 본인의 것을 써보라고 가져다주기도 하는 고마운 회원이다.   

  

서로 화실에 오는 시간이 달라 꽤 오랜 시간 못 만났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그림을 봤는데 정말 너무나 멋져 보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잠깐만 자세히 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한참을 그림 앞에 서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유화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지, 다양한 색을 어떻게 이렇게 잘 조합할 수 있는지, 이 깊이감은 어떻게 표현한 건지 살펴보았다. 물론 서로 그리는 그림의 주제와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역시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감동을 준다라는 사실을 그녀의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 그림에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조언을 구했다.


그녀가 나에게 준 조언은

 “색을 좀 더 다양하게 섞으면 그림의 분위기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포스터칼라 물감 사용에 익숙했기에 유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고민이었다. 물론 그림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 그 방식도 괜찮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풍성한 색과 깊이감이 보완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던 차였다.   

  

그녀의 조언을 듣고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색을 좀 더 다양하게 섞어보라 “는 그녀의 조언을 지금 그리고 있는 나의 그림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진행 과정을 찍어둔 사진을 보며 연구를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계속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정리한 생각으로 어제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시도해 보았다. 화이트로 보이는 부분이라도 빛의 영향으로 핑크색, 노란색, 파란색들이 살짝 섞여 보일 수도 있고 어두운 블랙으로 보이는 공간도 사실은 번트엄버나 인디고 같은 색이 섞인 어두움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평소보다는 조금 더 과감하게 색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그림의 색이 많이 풍성해진 느낌이 들었다. 색의 조합을 다양하게 했을 뿐인데 그림의 완성도가 올라가고 밀도가 단단해져 보였다.     


역시 그녀는 고수였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내게 해 준 조언은 결코 쉽게 해 준 것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평소에 내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아쉬운지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봐주었기에 가능했겠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자주 화실에서 그녀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시기하지 않고, 부러워하는 것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배워나가며 나도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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