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중학교 배정 문제로 바삐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학군지 이사를 목표로 매매와 전세 중에 고민하다 지금 집을 매매하고 학군지 아파트를 매도하는 쪽으로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주변에서는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매매는 어렵지 않겠느냐 의견을 주었지만 우리 집은 내놓은 지 불과 열흘 동안 두 부부에게 매매의사를 전달받았다.
첫 번 째는 계약 전에 그쪽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꾸면서 불발되었고 두 번 째는 우리 아파트 옆 동에 거주하는 중년부부가 하루 사이로 우리 집을 두 번이나 둘러보고 그 자리에서 매매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우리 부부도 이제 우리가 갈 집만 알아보면 되겠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틈나는 대로 학군지 아파트 매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부동산을 통해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계약을 한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현재 전세인데, 집주인 쪽에 채무가 많아 당장 전세금을 뺴는게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전세금을 뺄 수가 없으니 우리 집을 매매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계약금을 우리에게 입금했지만 계약이 불발될 상황이 되었다.
우리 부부 역시 기운이 빠져버렸다. 시간도 촉박한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러다 아이 중학교 배정 전에 이사를 못 가는 게 아닐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가 받았던 가계약금도 고민이 되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가계약금을 입금하게 되면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되어 계약 파기 시 우리가 계약금을 돌려줄 의무는 없다고 했다. 우리 부부도 가계약금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하루에 1만 보 이상 걸으며 집을 알아보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에 우리도 마치 피해를 입은 듯이 느껴져 너무 속이 상했다.
나는 아직 우리가 갈 집을 정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계약금을 입금한 것도 아닌 상황이었지만 우리도 피해를 입었으니 가계약금의 10% 정도는 남기고 반환해 드리는게 어떻겠나며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남편은 우리도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이사 준비하느라 고민스럽고 힘든데 전세금까지 묶여버린 그 집은 얼마나 속상하겠냐며 이왕 돌려주는거 가계약금 100% 전액을 반환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체 심성이 곱고 속이 깊은 남편인지라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기도 했고 우리 부부 성향상 그 계약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다 한들 우리 맘도 편치 않을게 뻔해 우리는 가계약금 전부를 바로 입금해 드렸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인연이 나타날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고 조금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도 실망이 무척 컸던지 며칠 잠도 잘 못 자고 심란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어제 퇴근 후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남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우리 집을 매매하려고 했던 부부의 편지와 참외 한 박스가 보이는 사진이었다.
안녕하세요
가계약을 했던 이웃주민입니다.
찾아뵙고 감사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괜히 불편하실 듯 하여
작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지만 저희의 마음이니 맛있게 드셔주시고,
1401호 가정에 늘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한눈에 딱 봐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글씨였다.
행간 사이사이에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참외도 정말 실하고 맛있어 보였다. 가장 좋은걸 고르고 골라 보내셨겠구나 싶어 우리가 더 감사했다.
남편도 마음이 좀 풀렸는지 역시 잘한 결정이었다 라며 며칠 만에 편안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딸아이에게도 아빠가 참 좋은 사람이라 이렇게 선물도 받았다며 우리 집에 곧 좋은 일이 생길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딸아이도 우리 아빠 최고라며 환하게 웃었다.
천만 원은 사라졌지만, 그 돈이 우리 통장에 있어다 한들 우리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게 분명하다.
대신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빌어주는 분들이 계시니 분명히 조만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서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마음이 불안한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번 주말만큼은 한 템포 쉬며 우리 가족끼리 맛있는 것도 먹고 좀 쉬어보려 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면 곧 좋은 소식이 올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집을 매매하려고 하셨던 그분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