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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토끼 Aug 24. 2021

우는 일

당신, 울어도 돼요



우는 일이 잦았다. 명치 쪽부터 치솟는 그것을 꾸역꾸역 삼켜내느라 목구멍의 아릿한 통증을 견뎌도 보고 부러 입가에 호선을 그리기도 했지만, 울음은 나에게서 떼놓을 수 없는 거였다.   



그런 사람이 있다. 화가 나면 울음부터 튀어나와 안에 놓인 말을 미처 꺼내지 못하는 사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울음에 감춰져 못 전한 말을 홀로 곱씹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서, 난 그 우스운 행태에 마냥 웃지 못한다.      



이토록 난 울음과 가깝지만,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내보이기는 싫었다. 사위가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도 홀로 울음과의 전쟁을 치르곤 했다. 툭툭 불거져 나오는 감정의 덩어리를 달래도 보고 내치기도 해보며 무진 애를 썼다. 옆 사람은 코를 훌쩍여도 난 울음의 ‘울’ 자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울음을 억지로 참은 날엔 온종일 체기가 일은 듯 어딘가가 꽉 막혀 갑갑했다.     



반면에 고립된 방 한 칸에 있을 땐 감성팔이로 얼룩진 영상 하나만 봐도 숨죽여 한참을 울고는 했다. 책을 읽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향하지 못하고 한 문장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두 눈이 퉁퉁 불어 터져도 눈썹 부근이 불그스레하게 번져도 먹먹한 마음만은 호릿하게 비워졌다.     



외할아버지의 생에 암이 침투했을 당시. 그 사실을 전해 듣던 날.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안에서 바닥을 구르며 꺼이꺼이 울었다. 감정을 애써 삼키지 않고 실컷 소리 내어 울어보기란 간만이었다. 찬기가 있는 바닥에 따뜻한 물 자국이 생겨났다. 어깨엔 여전히 무거운 책가방이 매달려 있었지만,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후에 오빠에게 말했을 때 오빠는 내가 엉뚱하단 듯이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아버지는‘좋은 사람’이라 부르기엔 먼 사람이었다. 생전 외할아버지로부터 애정을 받아본 기억도 없을뿐더러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그리 끈끈하지 않으셨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서야 알았던 사실은 되려 과거에 가족들을 많이 괴롭혔다는 것. 그 과거를 나를 빼놓은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는 것. 외할아버지와 변변찮은 대화를 나눈 적 없던 나와는 다르게, 그래서 딱히 미움의 감정까지는 실재하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모두 하나씩 꿍한 기억이 있었다는 것도.      



그러니 문득 깨닫는 것은 그때 그 큰 울음은 나를 위한 울음이었을지도. 여러 번 배출되지 못한 울음을 한꺼번에 토해냈던 걸지도. 그날, 크게 울고 난 직후의 그 정체 모를 훌훌함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사람은 이따금 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꼭 필요한 존재인 이유는 슬픔을 통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울지 마”가 아닌 “울어도 돼”가 활보하기 시작한 것도.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에 쓴웃음을 짓게 된 것도. 우리는 조금씩 슬픈 감정을 내비치는 것에 대하여 성장하고 있다.     



추한 울음은 없다. 추한 사람이 있을 뿐. 우는 일은 추하지 않다. 감정에 대한 솔직함의 표현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우는 일을 다그치기보단 안아주어야 한다. 당신 울어도 된다고. 마음이 아물기 위해선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나에게 기대어 실컷 토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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