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 대부가 선보이는 대중성의 극한

야마시타 타츠로(山下 達郎) < Melodies >

by 황선업


한 쪽에선 일본어 포크록이, 한 쪽에서는 하드록이 일본 대중음악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었을 때, 구석에서 조용히 대중가요의 부흥을 모색하던 뮤지션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타운 스타일의 R&B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 아메리칸 팝에 귀를 파묻은 채 커온 야마시타 타츠로. 그는 직접 자신의 나라에서 그것을 구현해보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고, 11년이 지나서야 일본이란 나라에 대중적인 '팝' 음악의 완성을 공언한 명반 < Melodies >(1983)가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어쨌든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며 메이지 대학을 자퇴했고, 약관의 나이에 슈가 베이브(Sugar Babe)를 결성해 의욕적으로 첫걸음을 내딛었지만, 당시 팝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달렸다. 밴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앨범 < Songs >(1973)는 지금에야 감춰졌던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그때만 해도 매스컴에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져야만 했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이때의 경험이 무조건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에겐 더욱 위대한 뮤지션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을 통해 바로 일본어 록을 확립한 핫피엔도(はっぴいえんど)의 보컬이자 일본 음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인 오타키 에이치(大滝 詠一)를 만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음악에 역시 심취해 있었던 그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가 되며 새로운 스타일의 정립에 크나큰 공헌을 했다.

신인이 해외에서 작업하는 일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뉴욕과 LA를 넘나들며 모든 레코딩을 마쳤던 데뷔작 < Circus Town >(1976)을 거쳐, 광고에 삽입되어 처음으로 히트하게 된 싱글과 동명 앨범인 < Ride on Time >(1980)까지는 준비단계였을 뿐. 두 번의 해를 넘겨 빛을 본 < For You >(1982)와 < Melodies >로 자신의 이름을 제이팝 사에 아로새기고야 만다. 미국의 작법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킨 탄탄한 편곡과 빼어난 멜로디 감각은 어디에서도 없었던 말 그대로 새로움이 가득한 소리의 향연이었다.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란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굳이 < Melodies >를 꼽은 것은 아무래도 싱글 'クリスマス イブ(크리스마스 이브)'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과 홀랜드-도지어-홀랜드(Holland-Dozier-Holland)의 영향을 받은 비트가 부각된 그루브한 편곡, 리듬 앤 블루스에서 파생된 50~60년대의 두왑 사운드에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를 도입, 수용하며 완성도와 대중성을 겸비한 완벽한 팝튠을 만들어냈다. 이 곡에 대한 향수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2000년대 들어서도 두 번이나 재발매 되었고, 명실상부한 시그니쳐 송으로 자리를 굳혔다. 중간에 삽입된 1인 아카펠라가 압권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프로모션 트랙이었던 '高気圧ガール(고기압 소녀)'는 퍼커션 소리와 혼 섹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좀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 코러스 워크를 통해 장인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터. 상승 곡조의 시원시원한 선율이 매력적인 '悲しみのJody(슬픔의 Jody)',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이 프로듀스하고 글랜 켐벨(Glen Campbell)이 부른 노래를 특유의 가성으로 다시 부른 'Guess I'm dumb' 등도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16비트의 기타 커팅과 중량감 있게 다가오는 베이스가 인상적인 펑크(Funk)곡 'メリー・ゴー・ラウンド(Merry-go-round)'는 다양한 양분을 통해 아티스트의 뿌리가 다져졌음을 널리 알리는 트랙이다.

재패니스 팝의 지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회자될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후에도 그는 그만이 가진 능력을 묵혀두지 않고 여러 가수들에게도 좋은 곡들을 제공하며 제이 팝 신의 성장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도왔다. 또한 올해 신작 < Ray of Hope >(2011)을 선보이며 솔로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것까지 증명했다.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과 철학이 분명한 진짜 뮤지션이자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 야마시타 타츠로, 그의 이름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평생 지워지지 않으리라 단언한다. 왜? 바로 이 < Melodies >가 있기 때문에!

- 수록곡 -
1. 悲しみのJody(슬픔에 찬 Jody) 추천
2. 高気圧ガール(고기압 소녀) 추천
3. Nightfly
4. Guess I'm dumb 추천
5. ひととき(잠시)
6. メリー・ゴー・ラウンド(Merry-go-round) 추천
7. BLUE MIDNIGHT
8. あしおと(발자국)
9. 黙想(묵상)
10. クリスマス・イブ(크리스마스 이브) 추천


후일담 : 이 리뷰를 쓴지도 벌써 7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티팝 붐이 일어날 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은 최고다.. 누구든 들려주면 좋아할텐데.. 라는 생각뿐이었죠. 지금은 뭐 나름 한일 양국 힙스터들 사이의 스타로 군림하고 계신 걸보면 참 시대가 바뀌긴 바뀌었구나 싶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직접 야마시타 타츠로(&타케우치 마리야)의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네요. 이게 다 돈을 버니까 가능한 일. 기승전자본주의로 후일담을 끝맺습니다. 히로세 스즈가 출연한 크리스마스 이브 30주년 에디션 뮤비 감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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