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 관람기
올해 국내 페스티벌 신은 큰 홍역을 치루고 있다.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의 주관사 선정을 둘러싼 잡음과 < 지산 록 페스티벌 >의 취소, 그리고 여기에 정점을 찍은 <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의 운영논란까지. 그런 상황에서 바라본 <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은 많은 록 팬들 그리고 페스티벌 팬들의 대안이었다. 물론 이들 역시 순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20년 동안 축적되어 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단행하는 첫 유료화 행사.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라는 빅네임은 이들의 의욕과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라인업이었다.
필자가 현장을 찾은 것은 일요일 오후. 번화가인 서면에서 택시로 약 10분 정도 이동하니 넓게 탁 트여 있는 삼락생태공원이 드러났다. 마치 서울의 난지공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만큼 이미 지역의 프랜차이즈 행사로 자리잡은 부산록페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더불어 지나치게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 인프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게이트를 통과하자 바로 사진스팟이 꾸며져 있었고, 양쪽으로는 스폰서 프로모션과 MD 부스가 나란히 도열. 티셔츠는 나름 실용적인 디자인이었으나 뒷면에 라인업이 새겨져 있지 않았으며, 종류 또한 많지 않아 돈 쓸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그 일말의 구매욕을 이끌어내기는 살짝 역부족이었다. 조금 지나자 지역의 관광기념품을 취급하는 부스가 보였는데, 그곳에서 코트니 바넷이나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식 MD(!)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정품이 맞는지 몇차례 확인했을 정도.
무대는 메인인 삼락 스테이지와 서브인 그린 스테이지, 신예들의 등용문 역할을 할 프린지 스테이지와 디제이들을 위해 마련된 히든 포레스트 이렇게 4개로 구분. 그 중에서도 무대 뒤로 보이는 풍광이 이제껏 본 적 없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 그린 스테이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침 부산의 로컬 밴드인 엘에이브릿지(LAbridge)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재지(Jazzy)한 반주와 음색이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오버랩되며 한껏 기분을 들뜨게 해주었다. 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다수 출연. 단순히 헤드라이너나 인지도 있는 아티스트만이 아닌, 기회가 필요한 이들 역시 포용하는 주최측의 큰 그림이 엿보였다.
이 날의 첫번째 하이라이트는 바로 부산 출신의 베테랑 밴드인 피아. 올해 해산을 앞두고 엑셀만을 밟고 있는 그들의 열정에 팬들은 어마무시한 결집력으로 화답했다. ‘자오선,’. ‘소용돌이’, ‘Yes you are’, ‘백색의 샤’ 등 가만히 서서 볼 수 없는 레퍼토리의 향연으로 이미 관중석은 무아지경. 큰 원이 만들어지고 서로가 몸을 부대끼며 월 오브 데스가 수시로 만들어지는 이 난장. 관객으로부터 이만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팀이 또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더욱 아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코트니 바넷은 그 이상을 보여주며 그 기다림을 헛되지 않게 했다. 단출한 쓰리피스 셋으로 등장했던 그는 첫 곡 ‘Avant Gardener’부터 디스토션으로 맹공을 퍼붓더니 ‘City looks pretty’, ‘Small talk’ 등으로 이어지며 장내를 거대한 단독 콘서트장으로 변모시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연주와 보컬, 야성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터프한 제스처 등 그야말로 ‘날것의 록스타’ 그 자체였다. 무대가 좁다는 듯 이곳 저곳을 휘저으며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사했으며, 처음 보는 이들 역시 그 에너지에 감화되어 갔다. 마지막 곡 ‘Pedestrian at best’를 부를때 쯤에는 처음에 모여 있었던 군중의 3~4배 이상 증가. 스튜디오 앨범과는 별개로 ‘라이브에서의 코트니 바넷’은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음에 감탄하며 아쉬움을 한가득 안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펜타포트에 이어 역량과는 별개로 페스티벌과는 여러 측면에서 미스매치가 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악동뮤지션의 공연을 잠시 관람. 아무래도 대중적인 인지도로 인해 사람들의 호응은 좋았으나 퀄리티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이었다. 이제 올해 국내 페스티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 형제를 영접할 차례. 장비세팅이 마무리되자 곧이어 암전. 그 후 9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실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에 홀려몸을 움직이고 음악에 취하고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
소문으로 전해만 들었던 음악과 영상과의 시너지는 이제 어떤 예술의 사조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른 듯 했다. ‘Eve of destruction’, ‘No geography’, ‘MAH’ 등의 신곡과 ‘Chemical Beats’, ‘Swoon’, ‘Star guitar’,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려퍼진 ‘Block rockin’ beats’ 같은 클래식이 합쳐져 하나의 완벽한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그 광경. 지금의 EDM 세대와는 또 다른 일렉트로니카의 경지를 보란듯이 선사했고, 그 곳에 모여 있던 추종자들은 다시 한번 이 전자세례를 통해 내면에 묵어있던 스트레스와 화를 날려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이 날의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지뢰밭을 피하고 피해 잘 골랐네”하고 말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올해 페스티벌 중 운영 및 공연의 퀄리티, 라인업 등 모든 측면을 고려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로 꼽히리라는 사실이다. 솔리달(Soilical)이나 화이트 캣츠(White Catss) 같은 실력이 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타국의 아티스트를 초청하고, 로컬 및 타 지역의 인디 뮤지션션에게도 활짝 문을 열어 두었다. 이와 함께 페스티벌이라는 본연의 의미와 기능에 초점을 둔 운영까지. 케미컬 브라더스나 코트니 바넷만을 쫓아온 내가 살짝 부끄러워지는 주최 측의 노력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한 성질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내한이 성사되었다면, 부산 국제록 페스티벌은 올해 여러 상황과 맞물려 단숨에 그 위상을 높이고 제 1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렇지만 뭐 한번에 배부를 수 있으랴. 이렇게 리스크를 동반한 그들의 모험은 절반의, 아니 그 이상의 성공을 남겼다. 이로서 우리가 굳이 서울에서만 이런 록 페스티벌을 즐길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수도권의 페스티벌 신이 이처럼 아비규환에 이른마당에, 부산을 마다할 이유는 더 이상 없어 보인다.
2019/08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