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설정한 한계' VS '내가 설정한 한계'
#3. 챠토몬치(チャットモンチー), < Rockin’ on Japan > ‘18년 7월호 중
야마자키 요이치로 : [무한의 가능성] 같은 말, 저희들은 쉽게 쓰곤 하지만, 역시 한계라는 건 있기 마련이죠.
후쿠오카 아키코 : 그렇죠. 음, 한계를 우리들이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저희가 스스로 “선을 그어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꽤 크죠.
야마자키 요이치로 : 과연 그렇네요. 포기하는 것이 아닌 긍정적인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두 사람이 [완결]이라는 것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잖아요.
하시모토 에리코 : 네, 누군가에 의해 멈춰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챠토몬치를 지속해야 한다라는 기분으로 해왔기 때문에 그런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선택함으로서 정말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열어젖힌거죠, 완전히.
변신해 갈때마다, 쓰리피스 시절의 챠토몬치를 어떤 식으로 담아낼까 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다른 결과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역시 있었어요. 그 우려는, 챠토몬치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이제 그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서의 자유란건데요.(웃음) 챠토(몬치)를 뛰어넘는 자유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중략)
야마자키 요이치로 : 챠토몬치는 밴드지만, 이른바 음악밴드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개념 비슷한 것으로 존재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면 블루 하츠(The Blue Hearts)라는 것은 단지 음악밴드가 아닌 블루 하츠적인 정신이기도 하고요.(중략) 챠토몬치 정신의 그 형태를 빚어낸 셈인데, 그것이 사라져 버린다던가. 이 시대로부터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후쿠오카 아키코 : 음.. 확실히 그런걸까 싶긴 하지만, 챠토몬치가 사라진다는 의식은 지금 들을 때까지 전혀 해본적이 없어서,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챠토몬치 카피밴드 하는 분들이 엄청 많아서요.(웃음) 그래서 이미 조금은 영원할 거라는 느낌이..(웃음)
야마자키 요이치로 : (웃음)
후쿠오카 아키코 : 그래서 쓸쓸한 느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웃음) 더불어 “쓰리피스시절의 그 곡을 연습하고 있어요”라는 말들 뿐이라서요.(웃음) 뭐랄까,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것 같달까요.(웃음)
벌써 챠토몬치 완결로부터 1년. 시간엔 가속이 붙고 결심은 일상에 치인다. 그때 그 마지막 공연을 보며 느꼈던 그것들이 내 삶에 여러 반전과 변화를 가져다 줬느냐 묻는다면 그런 건 개뿔 없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한 것 같다고 대답하겠다. 물론 맺고 끊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확실히 절감하고 있지만.
항상 우리는 남에게 한계를 측정당하고 그것을 돌파하라 종용받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돌아보면 그런 주문의 대부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말하는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자각하고 이건 안될 것 같다고 말한뒤 대비를 위한 선택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어느 조직에 속한 상태로 이런 루트를 밟기란 참으로 쉽지 않단 말이지.
챠토몬치가 완결을 발표했을 때 놀랐던 것은, 앞으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소식이 놀랍지 않았던 것은, 그들은 항상 최선을 통해 몇 번이고 통념을 뒤집는 변신을 보여준 덕이었겠지.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해본자에게만 주어지는 훈장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결국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야 그들은 발전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하고 싶은, 나아가 되고 싶은 ‘나’의 간격을 메울 수 없다는 확신이 든 순간, 단 하루, 몇 마디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론, 완결.
그 결심으로부터 1년, 나는 어떤 삶을 지속하고 있는가.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살기 위한 삶인가. 남이 요구하는 한계를 맞춰가며 죽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삶인가. 아니 그 전엔 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 혹은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 같은 걸 애초에 해본 적이 있었던 삶인가. 간만에 챠토몬치의 마지막 공연을 다시 한 번 플레이하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