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0의 정중앙은 0.5가 아닌 무한이다.

안도로프(androp) < One and Zero >(2012)

by 황선업

2013/01 작성


청소년기를 지내다 보면 몇 개월 전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단기간에 부쩍 키가 크고 어른스러워질 때가 있다. 물론 이러한 성장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유세계가 성장해감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일 뿐. 일본의 4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 안도로프의 2집은 정확히 이와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데뷔작 < Relight >(2011)를 이미 체험했던 이들이라면, 이 앨범 속 15개의 소행성을 탐사한 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까지 진화하게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년 3월 11일의 대지진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멤버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그 전진의 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08년, 포스트 록과 앰비언트에 심취해있던 리더 우치사와 타카히토(内澤 崇仁)를 주축으로 결성된 이들은 여느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인디즈 마켓에서 공력을 쌓으며 관계자들의 눈에 띌 우연을 준비해왔다. 2000년대가 배출한 록스타인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과 래드윔프스(RADWIMPS)의 보컬과 음악스타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단순한 기타 록에서 벗어나 전자음을 빈 곳에 차곡차곡 배열함으로서 생성되는 공간감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의 귀를 잡아채며 대중적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이렇듯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에 나온 신작은 주제면에서도 음악면에서도 몇 단계의 스케일 업을 이루어낸다. 우선 여태껏 꿈과 희망, 미래라는 '1'만을 이야기해 왔다면 이제는 현실과 절망, 과거라는 '0'을 이야기하며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또한 추상적인 단어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흡인력 있는 송라이팅과 트랙마다 확실한 주안점을 두고 변화해나가는 편곡, 이 모든 것을 구현시키는 연주는 당겨도 당겨도 늘어나지 않는 고무줄처럼 탄성을 유지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획득한다.


키보드와 드럼의 엇갈리는 박자를 절묘하게 배합시킨 'Rising star', 베이스의 중후함을 앞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얇게 퍼지는 전자음으로 여백을 획득한 뒤 그 곳을 디스토션으로 날카롭게 찌르는 'Boohoo', 16비트의 맹렬한 돌진 뒤에 영리한 후렴구의 완급조절이 기다리는 'Plug in head' 등은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트랙들이다. 여기에 팝 감각이 좀 더 가세한 'Message'나 'You', 'Party'를 통해서는 좀 더 밝은 분위기로 자신들이 내지르고자 하는 목소리를 십분 토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반 정도 차지하고 있는 슬로우 템포 넘버를 거치면서 오히려 작품의 진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 밸런스의 특출함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멜로디다. 'Rainbow'도, 'Radio'도, 'Encore'도 각기 다른 구성과 포인트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한두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는 강력한 훅이 존재한다. 여기에 록 페스티벌을 한순간 클럽으로 만들어 버렸던 앰비언트 넘버 'World,world,lights', '나는 마지막을 선택한 것 같지만 그래도 너를 비추는 빛이 되고 싶다'라는 가사와 함께 장대한 현악 편곡으로 여운을 남기는 'End roll'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네 소년의 믿기지 않는 성장스토리는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다양성을 담보로 순간의 즐거움과 자극만을 포착하는 소비적인 일본의 주류 록신에서 간만에 생명력 곧게 뿌리내린 손꼽을 만한 '신진세력의 한 장'이다. 날이 서 있는 멤버들의 감각과 스킬은 진부한 것을 진부하지 않게 설파해야 할 뮤지션으로서의 책임에 일말의 어긋남이 없다. '일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여태껏 오타쿠 문화를 비롯한 소수지향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왔다면, 이번만큼은 이 구절이 긍정적으로 쓰여야 하는 순간이다. 1에서 0으로 향하는 것이 단지 사라짐에 대한 절망이 아닌, 다시금 1로 나아갈 수 있다는 무한한 동기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들은 그렇게 타인의 의식에 낀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 수록곡 -

1. O

2. Rising star

3. Boohoo

4. Message

5. Plug in head

6. Rainbow

7. AM 0:40

8. Radio

9. World,world,lights

10. You

11. Party

12. Human Factor

13. Waltz

14. Encore

15. End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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