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츠에비스츄가쿠(私立恵比寿中学) < 金八 >(2015)
2015/03 작성
여아이돌에게 있어 '소녀'라는 직함은 영원한 화두다. 핑클, 에스이에스, 소녀시대가 그랬듯, 에이핑크, 러블리즈, 여자친구와 같은 그룹이 다시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스쿨룩 디자인의 의상과 수줍음으로 일관한 노랫말. 어찌 보면 변함없는 공식임에도 이것이 일정 이상의 성공확률을 보장하는 것은, 소녀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그 '퓨어함'의 영원불멸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학교를 콘셉트로 정착시킨 칠학년일반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간다. 가지각색의 소녀들이 모여 있는 그곳이야말로 판타지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덕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캐릭터가 주로 '사랑' 내지는 '연애'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소녀들의 학교생활이란 의외로 다이내믹하다. 열도로 잠깐 시선을 돌려보자. AKB48의 '淚サプライズ!(눈물 Surprise!)'에선 몰래 생일파티를 열어주려는 작당모의를 귀엽게 그려내고, 모모이로클로버Z(ももいろクロ―バ―Z)의 'ワニとシャンプ―(악어와 샴푸)'에서는 방학숙제를 끝내지 못해 '신이시여 시간을 되돌려주소서'라 외치는 아이들의 절박한 마음이 구구절절 나타나 있다. 이처럼 일본의 아이돌 기획은 좀 더 그 사용방법에 있어 좀 더 높은 자유도를 자랑한다.
사쿠라가쿠인(さくら學院)이 '동아리활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베이비메탈(BABYMETAL)을 탄생시켰다면, 지금 소개하려는 이들은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사립에비스중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실감을 부여하며 일본의 아이돌 신이 중요시하는 '친근감'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가 있다. 라이브를 학예회라 부르며 학교생활을 성과를 발표한다고 하는 콘셉트 역시 그 일환. 소개에 가까웠던 데뷔작에 이은 이들의 두 번째 작품은 그 캐릭터를 구체화시키고 있으며, 더불어 히트에 대한 야망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음악 자체로는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다. 빠른 템포의 '달리는 넘버'들을 기반으로 하며, 특별한 리드보컬 없이 떼창으로 일관하는 후렴과 한번 들어도 캐치 가능한 쉬운 멜로디가 이를 뒷받침한다. 팝록의 요소를 상당부분 끌어와 라이브용 곡을 양산하는 선배 그룹들의 노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별점은 역시 여러 에피소드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통일감이다. '학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재미가 확실히 쏠쏠하다. 한번 히트가 되면 어느 정도 스타일이 고착화되는 타 그룹들에 비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그야말로 '뜨기 직전' 넣을 수 있는 모든 추임새를 넣고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방송인 < Music Station >에 나가고 싶다는 내용을 1990년대 초반의 클럽에서 성행했을 법한 레이브에 실어 표현한 오프닝 트랙 '金八DANCE MUSIC'는 단연 발군. 모모이로클로버Z의 'Z伝設~終わりなき革命~(Z전설~끝없는 혁명~)'로 그룹의 전대물 콘셉트를 정착시킨 작곡가 마에야마다 켄이치(前山田 健一)가 수완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10대만이 느끼는 정체불명의 감정들을 표현한 '未確認中學生X', 단골 소재인 꿈을 극강의 멜로디 라인과 힘이 넘치는 록 반주로 노래한 'テブラデスキ― ∼靑春リバティ∼', 강한 전자음을 중심으로 풀어낸 캐릭터 송 'キングオブ學芸會のテ―マ∼Nu Skool Teenage Riot∼', 학생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졸업시즌의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 'フユコイ' 등 학교와 학생이라는 소재에서 뽑아낼 수 있는 여러 감정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발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수록곡의 작곡가가 다름에도 이만큼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초반 팀의 성격과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본 작품의 일렉트로니카적 요소와 게임음악과의 연관성이다. 흔히 비마니(BEMANI) 계열로 불리는 < beatmania >나 최근의 < jubeat >, < Sound Voltex >과 같은 리듬게임의 사운드트랙과 함께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전자 사운드가, 최근 들어 아이돌 및 록 음악과 혼용되는 경향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비마니 계열의 게임들이 신규 유저를 위해 중소 아이돌들의 곡을 삽입하는 콜라보레이션 사례가 늘어남과 동시에, 게임 음악들의 요소들 역시 메이저 음악신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록 신에서는 피어 앤 로딩 인 라스베가스(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의 음악들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발매된 덴파구미.잉크(でんぱ組.inc)의 신보를 비롯, 수록곡 'ちちんぷい'에서 보여주는 인트로, 개버에 버금가는 프레이즈가 들어간 'キングオブ學芸會のテ―マ∼Nu Skool Teenage Riot∼' 등 아이돌 신에서의 결과물 역시 서로간의 교류에 의한 결과물로 보이는 곡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스타일을 정립시켜온 게임 음악의 작법의 주류 개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장면, 바로 요즘 일본음악계가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흐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소녀'라는 판타지에 '학교'라는 일상성이 개입하며 만들어지는 한편의 리얼리티다. 음악적으로 특출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들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좋은 송라이팅과 함께 설득력 있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높은 완성도의 근거가 된다. 역시, '사랑'이나 '연애'만으로 소녀를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고민이 있고 아픔이 있고 꿈이 있고 야망이 있다. 대부분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소녀라는 캐릭터를 소비하는 국내와 달리, 이들은 좀 더 다양한 주장과 포부로 여러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게 전자가 적당한 남성 팬들을 끌어 모으는 사이, 후자는 AKB48가 그랬듯, 모모이로클로버Z가 그랬듯 광범위한 연령층의 지갑을 열어젖히는 중이다. '이성'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그 범위를 넓히는 기획의 디테일함은, 이렇게 본교 중학생들의 전국 인지도 석차를 일본 인구 1% 이내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쯤 되면 아이돌로서 제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답안지에 가깝지 않은가.
아, 그리고 이 앨범을 선보인 지 일주일만에 그들은 그렇게 염원하던 엠스테에 출현했다!
- 수록곡 -
1. 私立惠比壽中學の日常(Prologue) : 二乘の事情(사립에비스중학의 일상 : 제곱의 사정)
2. 金八DANCE MUSIC(킨파치 DANCE MUSIC) 추천
3. 未確認中學生X(미확인중학생X) (金八ver.)
4. テブラデスキ― ∼靑春リバティ∼(테부라데스키 ~청춘 Libertine~) 추천
5. キングオブ學芸會のテ―マ(King of 학예회의 Theme) ∼Nu Skool Teenage Riot∼
6. 私立惠比壽中學の日常(Interlude) : 早弁ラップ(사립에비스중학의 일상 : 하야벤 랩)
7. バタフライエフェクト(Butterfly Effect) 추천
8. ちちんぷい
9. U.B.U. (金八ver.)
10. フユコイ(겨울사랑) 추천
11. PLAYBACK
12. 幸せの貼り紙はいつも背中に(행복의 벽보는 언제나 등뒤에)
13. ハイタテキ!(하이타테키!)
14. 大漁惠比壽節
15. 買い物しようと町田へ(쇼핑을 하러 마치다에)
16. 私立惠比壽中學の日常(Epilogue) : 螢の光(Demo)(사립에비스중학의 일상 : 반딧불이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