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스파이더즈(ザ·スパイダース) < アルバム No.1 >(1966)
* 서적 < Jポップを創ったアルバム >(2008)의
내용을 제가 직접 번역해서 올리는 컨텐츠입니다.
JPOP ALBUM REVIEW 와는 다른 개념의 컨텐츠이니 참고 바랍니다.
* 저자 : 키타나카 마사카츠(北中正和, 1946~), 일본의 음악평론가, < New Music Magazine > 창간멤버.
CD로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 < アルバム No.1 >(66년 4월 발매)와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ザ·フォーク·クルセダーズ)의 < ハレンチ >(67년 10월 발매), 잭스(ジャックス)의 < ジャックスの世界 >(68년 9월 발매)와의 차이가, 단순히 음악적 차이로만은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사진의 색이 바래가는 것처럼, 음악 역시 예능으로부터 역사적인 작품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60년대 후반, 앞서 언급한 두 그룹과 스파이더즈의 사이에는 음악 뿐만이 아닌 거리감이 있었다. 그것은 앞의 두 그룹이 60년대 후반 학생이었을 시절 아마추어 밴드로 시작해, 그 분위기 그대로 예능계의 바깥에서 데뷔했던 반면, 스파이더즈는 예능계의 안쪽에서 등장했던 것에 기인한다. 그 거리감은, 지금으로 따지면 인디즈와 메이저의 차이보다 더 컸을 지도 모르겠다.
스파이더즈는 웨스턴 로커빌리 밴드의 스윙 웨스트 드러머였던 타나베 쇼치(田辺 昭知)가 61년에 결성한 밴드로, 처음에는 라운지 재즈 스타일의 연주를 했다. 하지만 점점 멤버가 바뀜과 동시에 음악의 방향성도 변화하여, 오리지널곡으로 레코드 데뷔를 할 무렵에는 비틀즈 등 영국의 영향을 받은 그룹으로 변해 있었다, 타나베를 제외한 데뷔 당시의 멤버는 다음과 같다. 사카이 마사아키(탬버린, 노래), 이노우에 쥰(노래), 카마야츠 히로시(리듬기타, 노래), 이노우에 타카유키(리드기타, 노래), 오노 카츠오(스틸기타, 오르간), 카토 미츠루(베이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라디오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크라운에서 싱글 ‘フリ·フリ’가 나왔을 무렵이니 아마 1965년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라디오에서 우연찮게 몇번이나 들었다. 그렇다고 치면 포크 크루세이더즈나 잭스의 음악 역시 똑같이 라디오에서 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를 통해 들을 때까지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었던 것 역시 동일했다.
하지만 ‘フリ·フリ’의 연주나 노래에선, 라디오에서 잠깐 들은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아마추어와는 거리가 먼 연주력과 연기력이 느껴졌다. 좀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그들의 음악엔 프로의 냄새가 났다.
다음해인 66년, 필립스로 이적했던 시절의 그들을 TV에서 처음으로 보고, 의상이나 동작 및 연주 등에서 - 역시 어딜봐도 프로, 그것만으로 기성의 음악업계에 가까운 곳에서 활동해고 있는 사람들이다 - 라는 인상을 받았다. 카마야츠 히로시가 로커빌리 붐 이후, 청춘가요가수로서 모리야 히로시, 이노우에 히로시과 함께 ‘三人ひろし(세명의 히로시)’로 불렸던 일이나, 사카이 마사아키가 희극배우 슌지 사카이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쩐지.
어째서 그들이 신경쓰였냐고 한다면, 당시 일본에 있던 프로의 음악 = 가요곡이라는 선입관 탓에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듣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가요곡은 말마따나 천적이었다. 그 천적에 가깝다는 것만으로, 그룹사운즈(GS)로 불렸던 인기 그룹 중 가장 멋있던 그들 역시 나에겐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소견이 좁았다.
그 인상은 66년 가을 ‘夕陽が泣いている’를 듣고 난 후 더욱 심해졌다. 그 곡을 작사작곡한 것이 가요곡의 히트메이커 하마구치 쿠라노스케였기 때문. 그는 서양음악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멋진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어쨌건 그때까지 만들었던 히트곡의 인상이 워낙 강했다. 스리 캣츠(スリー·キャッツ)의 ‘黄色いさくらんぼ’, 모리야 히로시의 ‘僕はないちっち’ 등, 제목부터가 가요곡임을 알려주는 곡 투성이였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를 목표로 한 스파이더즈가, 설마 그 하마구치 쿠라노스케의 곡을? 이게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은 지금에 비교하면 미스터 칠드런이 층쿠(역주 : 샤란큐의 보컬리스트 출신으로, 모닝구 무스메의 프로듀서로 유명)의 곡을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관계없이 ‘夕陽が泣いている’는 스파이더즈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잭스의 하야카와 요시오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바 있다.
“당시 스파이더즈는 말이죠. 뭐랄까. 하마구치 쿠라노스케의 곡을 부르고 있던 것, ‘夕陽が泣いている’가 아무래도 싫었겠죠. (중략) 스파이더즈는 끝내주는 팀이라고 생각하지만 ‘夕陽が泣いている’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네요.”
잭스의 두번째 앨범 < ジャックスの奇跡 >에 수록된 ‘ロール・オーヴァー・ゆらの助’에는 하야카와 요시오의 그 꼬인 기분이 반영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직 ‘夕陽が泣いている’의 발매 전이었는데, < アルバム No.1 >이 선보일 무렵, 적극적으로 들어볼 기분이 나질 않아(용돈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 결국 앨범을 손에 넣은 것은 76년의 리이슈반이 발매되던 때였다. 이미 그때는 60년대에 느꼈던 가요곡 알러지도 없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앨범을 역사의 한페이지로서 냉정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수록되어 있는 것은 12곡. 모두 오리지널로 카마야츠 히로시가 7곡, 오노가 2곡을 작곡하고 있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보다 이전에 교회풍 오르간 연주도 도입하고 있다. 작사는 카마야츠가 2곡, 타나베가 1곡. 나머지는 아쿠 유와 카와키타 카즈코의 이름이 보인다. ‘フリ·フリ’66’은 337박자와 부기를 믹스한 와일드한 기타 로큰롤로, 비틀즈의 리버풀 사운드에 대항한 도쿄 사운드로서 당시 필립스에서도 발매되었다. 만약 이 곡이 대히트했다면 그 후 GS의 흐름은 보다 록적인 방향으로 향해갔겠지만, 현실은 ‘夕陽が泣いている’ 쪽으로 흘러갔다.
아마 크라운 버전도 이 버전도, 당시의 일본음악 팬의 취향에 부합하기엔 너무 강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선구적인 앨범은 69년 GS 붐의 쇠퇴와 함께 잊혀져 가, GS 연구가들에 의해 평가되기까지는 일본 록역사에 있어 그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했다. 그것을 역사의 못된 장난이라고 마무리하려 하니, 너무나도 아쉽고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