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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Apr 11. 2021

한국 내 일본음악의 현주소는?

최근 BTS와 back number의 콜라보레이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BTS의 새 노래에 주목하는 분위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백 넘버라는 멋진 밴드가 한국에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보다 반갑게 느껴졌다. 여기에 해당 곡의 주제가로 쓰이는 작품이 한국에서도 히트한 드라마 < 시그널 >의 일본 리메이크 극장판이라는 점은 더욱 흥미로웠다. 이처럼 양국간의 활발한 문화교류는 대중에게 양질의 컨텐츠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러한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더욱 풍성한 삶의 기반이 됨을 우리는 여러번 목격해 왔다.


다만, 최신 일본음악의 소식이 BTS의 힘을 빌어 겨우겨우 소개되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의 10~20대들에게 제이팝이라는 카테고리는 굉장히 낯설다. 관련 프로그램이나 매체가 전무한 탓에 살면서 일본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음악이 인기있었던 시절이란 그저 어렴풋이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일 뿐. 그래도 많은 이들은 기억한다. 2~30년전 다양한 장르와 뛰어난 녹음기술로 무장해 선진문물로 여겨지던 일본음악을. 그 우수성을 기반으로 정식 유통되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목말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 시그널 >의 일본 극장판 주제가로 낙점된 BTS의 'Film out'
개인적으로는 좀 오묘했습니다. 딱 합이 맞는 느낌은 아닌...


한국에서 터부시되었던 일본음악


사잔 올스타즈부터 시작해 '긴기라긴니'로 유명한 콘도 마사히코, 그 존재감이 남다른 X Japan과 라르크 앙시엘,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자드를 주축으로 한 비잉(Being) 소속 가수들은 한국에서 꽤 많은 인기를 누렸다. 코무로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글로브와 아무로 나미에 역시 한 축이었다. 쟈니즈나 하로프로 아이돌에 대한 팬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디 한 장, 비디오 자료 하나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동호회가 속속 만들어졌고, 정모나 영상회를 통해 서로의 열정을 어렵게 나누던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일본음악 마니아들에게 희소식이었다. 문화적 갈증을 해갈함과 동시에 일본 컨텐츠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길이 열리자, 그 파급력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내수 중심이었던 일본 음악신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던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CD 단가의 차이 등으로 인해 극소수 아티스트의 음반만이 유통되었다. 개방 전과 후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 왜색에 잠식당한다니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여기에 한국 대중들의 거부감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근본적인 역사적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컨텐츠가 유통된다 한들 사람들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거나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중파 방송에서의 일본음악 배척은 더욱 심했다. 한국 지상파에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모습이 첫 생방송 된 것은 2010년이 되어서였다. 법적인 제재가 없음에도, 일본어 가창의 송출은 ‘국민정서를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자체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양국이 가진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의 상이함과 한국 아이돌 신의 급격한 성장 등 한국 대중들이 일본음악을 즐겨야 할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중과 제작자의 확연한 온도차이


‘아이돌 신’에 집중하게 되면 이 거부감에 대한 문제는 약간 복잡해진다.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과, 이를 제작하는 기획사 측의 온도차가 확연히 다른 탓이다. 최근 한국데뷔를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일어났던 니쥬(NiziU)의 케이스를 보면, 대중들은 여전히 일본 컨텐츠의 한국 진출에 대해 탐탁치 않아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물론 ‘KPOP 기술 유출’이라는 이슈도 한 몫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와 별개로 한국 데뷔를 염원하는 목소리 역시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 이러한 양극화는 당분간 여전하리라는 전망이다. 


대중들이 일본의 한국 연예계 개입을 곱게 보지 않는 것과 달리 제작자들은 적극적이다.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KPOP 그룹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현지 공략을 위해 일본어 싱글을 내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루트가 되었다. 최근 빅히트엔테테인먼트에서 곧 아이즈원 활동을 마무리하는 미야와키 사쿠라를 영입할 것이라는 뉴스가 뜨는 등(아직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익적인 측면에서 한국 대비 몇 배, 몇십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본 공략을 위해 일본의 회사/인재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는 것이 바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신이다. ‘금전적 이익’을 내야하는 입장인 만큼, 일반 대중들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거리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트와이스의 일본 성공은 역시 일본인 멤버의 공이 컸다.


‘KPOP vs JPOP’이라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바로 KPOP과 JPOP이라는 용어의 개념이다. 위와 같은 역사적 흐름을 거치며, ‘JPOP’이라는 용어는 한국인들에게 ‘일본 대중음악 전반’을 일컫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일본에서 ‘KPOP’을 주로 ‘아이돌 팝’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매체 등에서 주로 쓰이는 ‘KPOP vs JPOP’과 같은 헤드라인은, 사실 ‘한국 아이돌 vs 일본 아이돌’로 쓰여야 옳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체는 이 두 단어를 일반화 하고, 단순 비교를 통한 화제 모으기에 급급한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한국 아이돌 vs 일본 아이돌’이 올바른 비교대상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 아이돌과 일본 아이돌의 형성 배경과 그 성향은 엄연히 다르다. 즉, 하는 역할과 존재하는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KPOP이 JPOP보다 수준이 높다!’와 같은 문장은, 그 의미가 텅 비어있는 셈이다. ‘KPOP’과 ‘JPOP’의 정확한 의미, 그리고 양국간 아이돌 특성의 상이함 등을 알아야 의미 있는 비교가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프레임.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이런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의도도 순수하지도 않고.


‘한국 정서에 부합하는 실력’이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음과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를 꼽자면, 나는 아무로 나미에를 언급하고 싶다.(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음을 참고 바란다.) 한국에서 아무로 나미에는 일본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도 한번씩 이름을 들어본 가수임과 동시에, 한국에서 활동해도 무리 없을 ‘실력파 아티스트’로 인식되어 있다. 더불어 수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동경하는 대상이기도 했으며, 한국 여자 솔로 가수들의 스타일링 및 기획 측면에서 많은 참고사례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에게 꾸준히 회자되는 인물이라면 역시 자드다. 특출났던 외모와 준수했던 가창력, 남녀노소가 들어도 거부감없는 대중적인 노래들로 하여금 지금까지도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이할 만한 점은, 애니메이션 < 명탐정 코난 >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덕분에 신규 유입층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본음악’의 대명사로 어느덧 자리잡힌 아티스트가 바로 그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어쨌든 ‘실력’이 중요한 가수의 덕목으로 자리한다. 가창력이 우선시 되어왔던 시장답게, 노래와 춤에 대한 능숙함이 우선인 것이다. 대신, 그러한 ‘능숙함’ 역시 한국의 정서와 어느 정도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아무로 나미에의 호불호 없는 음색과 뛰어난 퍼포먼스, 자드의 호소력 있는 가창과 보편적인 매력의 선율 등이 한국인들에게도 꽤나 매력적으로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일본음악 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우타이테 출신의 아도(Ado)가 부른 ‘うっせぇわ’의 히트다. 서브컬처 색채가 짙은 곡조, 다소 과한 감정처리 등 이 곡이 과연 스트리밍 1위를 차지할 만한 노래인가 하는 것이 주요 쟁점. 언뜻 보면 한국 대중들이 ‘우타이테/보카로P’  문화를 낯설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싶겠지만, 요아소비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아소비의 경우 보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며, 무엇보다 한국인의 기준에서 보아도 보컬 이쿠라의 가창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의 히트는 나도 좀 의외였다. 이쪽 팬덤도 이제 차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이 되었다는 반증일지도.


코로나로 인한 ‘내한공연’ 부재의 아쉬움


최근 10년 동안 KPOP의 급격한 성장과 반비례해 메인스트림 내 일본음악의 자취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여기엔 폐쇄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던 일본 음악신의 책임도 있다. 한국은 일찌감치 스트리밍과 유튜브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반면, 일본에서 스트리밍 시장이 본격화된 것은 불과 2~3년 정도다. CD나 다운로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모두가 보는 유튜브엔 일본 대중음악 컨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음악과 점점 멀어지며 그 자리를 최신 KPOP이 대체했고, 일본음악의 소식을 전해주는 매체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BTS 정도가 되어야 곁다리로 일본 뮤지션이 소개되는 상황이 되었다. 


더불어 시시때때로 바뀌는 양국간의 기류는 지속적인 교류를 방해했다. 2019년부터 심화된 한일간 마찰은 일본 아티스트들의 내한을 망설이게 했으며, 코로나는 간간히 있던 교류마저 끊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내한공연의 중단이 참으로 아쉽게 다가온다. 본인으로서도 여러 아티스트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매력을 소개하고, 또 이들이 한국에서의 무대와 팬들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 알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에 내한했던 서치모스(suchmos)와의 인터뷰 중 멤버 HSU는 호텔 창을 가리키며 본인을 향해 “이번에는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서울에도 가보고 싶은데(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인천에서 진행된다), 서울이 어느 방향인가요?”라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날 대부분의 관객들은 서치모스를 처음 보았을 테지만,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 모두 하나같이 환호를 보내고 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또한 2015년 한국/일본/대만 3개국을 도는 공연 < Far East Union >을 통해 한국을 찾은 모노아이즈의 호소미 타케시는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며 음악을 통한 가교 역할의 중요함을 언급했다. 호소미 타케시를 뮤지션으로서 좋아한다는 생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경심을 가지게 했던 인터뷰였다. 뮤지션들 또한 가깝지만 먼 한국의 대중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를 전달하는 것이 일본음악에 대한 시선을 얼마나 많이 바꿔놓는지 꾸준히 체감해 온 지난 10년의 커리어였다.

ONE OK ROCK 내한영상. 취재했던 일본 아티스트는 모두 믿을 수 없을만치 호의적이었다.

왜 일본음악을 듣는가


여튼 한국에서 일본음악은 다소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이 강하나, 그래도 여전히 팬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체감상, 한국의 일본음악 팬들은 아이돌 팝의 지분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음악 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대안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이것은 인디음악이나 장르뮤직으로 발을 옮기게 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국 내 일본음악 팬들의 취향과 성향이 너무 달라 뭉치기 힘든 탓이 크다. 지엽적인 아이돌 팝을 가리키는 ‘KPOP’과 일본음악 전체를 일컫는 ‘JPOP’. 가리키는 범주가 다른 만큼, 두 카테고리의 지지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분위기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사실 한국엔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꾸준히 여러 일본음악들이 사랑받아 왔다는 증거가 있다. 바로 리메이크다. 대표적으로 나카시마 미카를 들 수 있는데, ‘雪の花’이 박효신에 의해 리메이크 되면서 가수 본인도 많은 주목을 받은 케이스다. 하지만 원곡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튜브의 ‘ガラスのメモリーズ’를 리메이크한 캔의 ‘내생에 봄날은’이나 히로세 코미의 ‘日付変更線’을 리메이크한 엠씨더맥스의 ‘행복하지 말아요’, 오자키 유타카의 ‘I Love You’를 리메이크한 포지션의 ‘I Love You’, 히라이 켄의 ‘瞳を閉じて’를 리메이크한 정재욱의 ‘가만히 눈을 감고’ 등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비교적 오리지널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내 일본음악 팬들은 보통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장르음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데뷔한 아티스트 중 많이 언급되는 이들이라면 역시 킹 누와 오피셜히게단디즘인데, 킹 누는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음악성으로, 오피셜히게단디즘은 후지하라 사토시의 가창력을 기반으로 한 대중성으로 어필하고 있다. 특히 이 두 팀은 1990년대~2000년대 일본음악에서 보여지는 가창력 및 작곡양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신규 일본음악 마니아 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히게단은 우리나라에도 꽤 팬들이 많다. 이 뮤비의 조회수는 어느덧 3억을 돌파.

두번째는 가사다. 일본어를 조금 공부한 이들이라면 아티스트 고유의 색이 담겨 있는 노랫말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한국 내 일본음악 팬들의 평균 일본어 실력이 꽤 높은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유니크한 세계관을 펼쳐 보였던 세카이 노 오와리와 기상천외한 표현으로 보편적인 정서를 구축하는 래드윔프스가 그 예시. 이 두 팀은 다수의 내한공연을 통해 많은 한국 팬들과 만난바 있다. 여기에 백 넘버 역시 ‘クリスマスソング’의 히트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묭 또한 어느 정도의 내한공연 동원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아닌가 싶다.


이 정도가 일본과 궤를 같이 한다면, 조금은 다른 방향의 사례 또한 존재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가장 큰 관중 동원력을 보여주었던 일본 아티스트 중 하나는 아마 스파이에어(Spyair)일 것이다. 이들은 인지도가 없던 시절부터 차근차근 공연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더니, 2018년엔 약 3천석 규모의 공연을 매진시키는 이들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만큼은 원 오크 록과 비슷한 티켓파워를 보여준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여기에 KK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카미키타 켄의 내한공연 또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3년여에 걸쳐 네차례나 2 Days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 내 인기 대비 한국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유산을 쫓는 이들도 많다. 특히 야마시타 타츠로, 타케우치 마리야 등을 필두로 한 시티팝에 대해 열광하는 음악 팬들이 급격히 늘어난 추세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음악들을 디깅하며 공유하고, 이러한 시티팝 기조의 음악을 구사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태. 국경의 의미가 없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우타이테/보카로P 신 및 유튜브 중심의 일본음악 커버 채널등은 꽤 깊게 그 뿌리를 뻗히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많은 우타이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음악 커버채널로 유명한 [달마발Darilm&Hamabal]은 현재 구독자 53만명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 여기에 밴드뮤직 마니아들 및 애니메이션을 통해 유입되는 일본음악 팬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한국 내 일본음악 팬들을 이루고 있는 구조가 대략적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음악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 컨텐츠로 자리잡는 날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한국에서 일본음악이 자리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내가 일본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한국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나 볼 수 있는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까운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제작자나 소속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한국, 특히 KPOP 신과 달리, 일본은 비교적 가사 표현이나 음악적 구사에 있어 자유롭다. 개인적으로 ‘주류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를 고집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개념은 일본음악이 보여주는 가장 의미있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점점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아티스트를 찾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즉,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가감없이 세상에 펼쳐 놓는 이들 모두가, 앞으로 한국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아티스트라는 이야기다. 


스트리밍의 활성화로 인해 어느 때 보다도 일본음악을 접하기가 용이해진 시대다. 지금의 한국 대중들은 일본 음악을 현지와의 시차 없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좋아하게 되었다 한들 정작 컨텐츠를 찾기가 힘들었던 예전에 비하면, 그 심리적 거리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을 타고 한국의 대중들도 ‘예전에 좋아했던’ 일본음악이 아닌 ‘지금 현지에서 주목받는 핫한’ 일본음악을 활발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많은 일본의 아티스트들이 이 곳을 찾아 자신들의 매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어떻게 보면 현재 한국 시장에서, 일본음악은 지분을 넓혀갈 일만 남았다. 그 줄어든 심리적 거리만큼, 물리적 거리 또한 조만간 줄어들기를, 그리고 한국에 일본음악이 영미권의 ‘팝’과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 컨텐츠로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래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원래 오기로 했던 스캔달부터 어떻게 안될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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