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슌 온라인 > 12/31 게재 내용을 번역해 업로드합니다.
* 일본의 매체 < 분슌 온라인(文春オンライン) >에 기고한 < 홍백출장 NiziU에 한국 KPOP 팬이 품는 '2개의 복잡한 감정' >을 원문으로 업로드 합니다. 현재 업로드 된 글의 맥락은 원문과 동일하지만, 편집과정에서 다소 압축이 되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일본 웹진에 실린 기사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 바랍니다.
「紅白出場」NiziUに韓国K-POPファンが抱く“2つの複雑な感情”〈韓国人評論家が寄稿〉 | 文春オンライン (bunshun.jp)
NiziU를 향한 일본의 반응이 뜨겁다. < Nizi Project > 오디션의 열기를 업고 선보인 프리 데뷔 곡 ‘make you happy’는 여성 아티스트 사상 최고 속도로 1억 스트리밍을 달성. 여기에 정식 데뷔도 전에 홍백가합전 출장이 결정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정말 유례없는 속도다. 최근 일본 내에서의 KPOP 컨텐츠의 열풍은 익히 체감하고 있었지만, NiziU가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일본시장을 점령할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한국의 KPOP 팬들이 NiziU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오디션 초반부터 한국의 시스템이나 노하우를 아무 대가 없이 일본에 퍼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기도 했고, 프리 데뷔 때는 일본인이 주축이 되는 만큼 이를 KPOP이라 할 수 없다는 의견 또한 강했다. 한국 아이돌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등. KPOP과 JPOP 간의 선을 긋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프리 데뷔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지금은 현지에서의 활동을 응원하는 사람도 늘어났고, 한국으로 진출만 하지 않는다면 외화벌이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아졌다.(그와 별개로 그룹에 대한 인지도는 굉장히 낮은 상황이다.) 한류의 최종형태로 여겨지는 ‘현지화 팀을 통한 시장 공략’의 측면에서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SM이 추진하고 있는 NCT 프로젝트도 이와 같은 맥락위에 있음을 고려해 보면, NiziU의 등장은 시기상의 문제였을 뿐 언젠가는 등장했을 KPOP의 넥스트 스텝이라는 것이다.
불쾌하게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다. 겉으로는 KPOP 열풍을 별 것 아닌 듯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의 시스템을 힘들이지 않고 이식해오려는 움직임과, 이를 토대로 ‘일본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KPOP과 같은 경쟁력을 갖춘 팀을 배출할 수 있다’며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도입해오기만 한다면, 언제든 이를 뛰어넘는 컨텐츠를 자체 생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아이돌 산업이 단시간 내에 KPOP과 같은 수준에는 이르기 어려우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본의 대중문화 수준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 애초에 출발점이 달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의 아이돌 산업은 1980년대 중반 아키모토 야스시가 주도한 오냥코 클럽을 필두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친근함을 내세워 팬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기획, 동시에 본격화된 유사연애요소와 팬덤문화. 여기에 쟈니스의 미디어 점령이 더해지며 “아이돌 =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이 굳어졌다.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스맙/아라시, 모닝구무스메는 현재 일본 남녀아이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아키모토 야스시는 오냥코 클럽의 기조를 강화한 AKB 사단을 출범, ‘팬과 멤버가 함께 성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개념은 현재 KPOP을 주도하는 모든 팬덤의 근간이 되어있다.)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악수회와 극장공연을 도입했고, 아이돌은 실력이 좋지 않아도 꿈과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걸었다. 당연히 그 꿈과 노력을 현실로 실현해주는 것은 팬들의 자금력. 이렇게 일본의 아이돌 신은 ‘테크닉’과는 점점 거리를 두며 성장해왔다. 한국의 대중들이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야마구치 모모에,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의 영상을 접한 후, “일본의 아이돌 신은 왜 이렇게 퇴보한 것이냐”라고 묻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역할’에 집중했던 일본의 아이돌과 달리, 한국의 아이돌들은 항상 검증의 대상이었다. 소방차나 야차 등 쟈니즈식 기획을 벤치마킹한 팀들이 존재하지만, 그 명맥은 1980년대 후반에 이미 끊긴 상태. 1세대 아이돌의 등장을 견인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1992년에 있었던 뉴키즈 온 더 블락의 내한공연과 1994년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 두 사건을 통해 10대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SM의 이수만 대표는 철저한 시장조사와 그에 따른 캐스팅, 긴 준비기간을 거쳐 H.O.T.를 탄생시켰다. 그야말로 예비스타의 등장이었다.
10대들의 열광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주목할 점은 일반 대중들의 비판 또한 심했다는 사실이다. 만들어진 상품, 기획사의 꼭두각시, 누가 만들어 준 노래만 금붕어처럼 따라하는 주체성 없는 이들. 이것이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들이 가진 시선이었다. 이후 데뷔한 S.E.S와 젝스키스, 핑클 등 KPOP의 근간이 되는 1세대 아이돌 신은, 이처럼 음악성은 없는 빈 껍데기와도 같은 컨텐츠로 여겨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오로지 더 나은 실력을 갖추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트레이닝 시스템은 고도화되었으며, 작사작곡에 참여해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을 어필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H.O.T.는 3집부터 자작곡 비중을 늘려, 5집은 전곡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완성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 5년 남짓 되는 활동기간 동안 작사작곡을 배워 하나의 앨범을 자신들의 힘 만으로 전부 채워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대중들의 시선은 달갑지 못했다. 이러한 편견은 다섯 멤버 모두가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동방신기의 성공, 그리고 2007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카라가 촉발시킨 한류를 통해 그나마 사그라들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들의 반목에 맞서 이를 납득시키는 형태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일본의 흐름과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의 팬들이 NiziU의 실력적인 측면에 있어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이러한 배경을 통해 높아진 눈에 기인한다.
한국 대중들의 논쟁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NiziU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최소화한 호감형 KPOP 컨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역시 멤버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크다. 이를 통해 일본 대중에게 48/46사단과 선을 긋는, 실력 있고 건강한 이미지의 아이돌 상을 제시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KPOP을 알고 모르고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중장년층에게는 실력을 갖춘 10대 여성그룹이라는 점에서 1990년대 후반을 휩쓴 스피드와 맥스를 떠오르게 할 법도 하다.
이렇게 빠른 침투가 가능했던 것은, 아이돌과 KPOP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몰입할 수 있는 서사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했다는 점도 크다.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 Produce 101 JAPAN >이나 팬들 위주의 잔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 AKB 선발 총선거 >와는 다르게, < Nizi Project >는 참가자들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며 온기가 있는 경연으로 꾸며지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감동을 선사했다. 여기엔 여러 심사평과 명언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J.Y.Park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현 시점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KPOP 컨텐츠를 자국 인력으로 탄생시켰다는 점,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류의 다음 스텝인 현지화 팀을 성공리에 런칭했다는 점 등 양국이 목표로 했던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시기상으로도 적절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사건사고를 유발했던 48/46 사단의 운영과 그 대안을 제시했던 트와이스의 성공. 여기에 JYP 엔터테인먼트와 Sony Music의 합작까지. 될 것 같은 상황에서 될 만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끌어 낸 성공인 것이다.
가장 논쟁의 중심에 있는 ‘KPOP이냐 JPOP이냐’에 대한 논의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KPOP의 ‘K’를 어떤 의미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K’를 ‘나라/국적’의 의미로 볼 경우, NiziU는 당연히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JPOP이다. 하지만 ‘K’를 컨텐츠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아무래도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는 KPOP 쪽으로 추가 기울 수밖에 없다. 퍼포먼스나 음악 스타일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KPOP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JYP Entertainment 소속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면, 이것이 KPOP이 아니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일본 주간지 < AERA >에서는 아예 ‘글로벌 걸그룹’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보아와 동방신기가 진출했을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이들의 컨텐츠가 JPOP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KPOP이라는 용어가 본격화되기 전이었을 뿐더러, 그 당시엔 ‘하드웨어’는 한국, ‘소프트웨어’는 일본이라는 분업체제로 진출이 이루어졌다. 가수는 한국인이었지만, 음악과 퍼포먼스는 모두 일본의 것이었다. 지금은 컨텐츠까지 한국의 몫이다. 일본에서 주도한 컨텐츠이기에 JPOP이라 불렸다면, JYP가 주도한 NiziU의 컨텐츠를 KPOP이라 부르는 것도 마냥 어색한 일은 아니다. 언어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면, 최근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어 앨범을 냈을 때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것이 일본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JPOP으로 분류되는 경우를 본 기억은 없는 듯하다.
NiziU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문제는 주위에서 부추기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NiziU를 두고 양국의 대중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인 중엔 일본음악을 좋아해 나와 함께 매년 일본의 록 페스티벌을 함께 보러가는 친구들이 있다. 일본여행 중 한국인이라 이야기하면 모두가 KPOP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기도 한다.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려보자면, 힙합 신에선 양국간의 교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흔히 알려진 대립구도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일관하는 일부 매체와 특정 성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주도할 뿐이다. 우리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면 되지, 굳이 편을 가르고 싸울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일본의 어떤 기획사에서 빌보드 1위를 노리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KPOP 시스템을 들여와 인재를 선별해 고도의 테크닉을 갖춘 팀을 양성하면 될 것이고, 독자적인 기획력을 통해 내수 시장 위주의 성과를 거두고 싶다면 굳이 실력 위주의 팀을 만들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 중 어떤 컨텐츠를 택하느냐는 대중 각자의 몫이다. 빌보드 1위, 전세계적인 인정은 받으면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획득해야 할 과제는 아니다. 그 컨텐츠를 접하는 누군가가 충분한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있는 대중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과 만족으로 연결되는 개개인의 취향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소수가 부추기는 싸움에 현혹되지 말고, 장기적으로 양국의 대중들이 NiziU를 어떻게 받아들이고해석하는지 차분히 지켜보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이 겪어왔다. 흐름이라는 것은 일부 집단의 편견이 아닌, 다수가 일으키는 시대의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NiziU의 등장, 그것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지.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