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기도와 같은 투명한 노랫소리

오카바야시 노부야스(岡林 信康) < わたしを断罪せよ >(1969)

by 황선업

* 서적 < Jポップを創ったアルバム >(2008)의 내용을 번역해 업로드하는 컨텐츠입니다.


* 저자 : 키타나카 마사카츠(北中正和, 1946~), 일본의 음악평론가, < New Music Magazine > 창간멤버.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 와타시오단자이세요(わたしを断罪せよ) >는 이츠츠노아카이후센(五つの赤い風船)의 < 오토기바나시(おとぎばなし) >와 함께 1969년 8월 URC 레코드의 첫번째 신보로서 발표되었다. URC가 레코드회사로 바뀌기 전, 아직 타카이시음악사무소(高石音楽事務所)가 주최한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클럽이라는 회원제 레코드 배포회였던 시절에도 그의 라이브 음원은 레코드화되어 있었지만, 스튜디오 녹음을 거친 솔로 앨범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오카바야시도 후센도, 오사카의 아마추어 작품 발표 무대였던 포크 스쿨에 등장해 관계자를 놀라게 한 일로부터 아직 1년 남짓 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태의 진전은 그만큼 급속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츠츠노아카이후센은 포크스쿨 시절엔 처음부터 그룹이 아닌, 리더 니시오카 타카시에 의한 참가였다. 그들은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 니시오카 타카시(보컬, 기타, 피아노, 오토 하프 등)가 후지와라 히데코(보컬), 나카가와 이사토(기타, 보컬), 나가노 타카시(베이스)와 만나 결성한 그룹이었다.


이츠츠노아카이후센, 'これが僕らの道なのか' 제2회 전일본 포크잼버리(1970)에서의 라이브 영상


한편, 오카바야시 노부야스는 시가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샤 대학 신학부에 진학했지만, 목사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드롭 아웃. 도쿄의 산야나 시가현의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시기에 타카이시 토모야의 노래와 만나, 이런 음악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 와타시오단자이세요(わたしを断罪せよ) >라는 앨범 타이틀은 그런 자신의 성장과 체험에 기인해 지어졌다.


재킷은 좌우여닫이로, 안에 가사와 오카바야시의 코멘트가 인쇄되어 있고 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본 포크는 이 곳에서 태어났다! 오카바야시 데뷔 앨범 わたしを断罪せよ, 일본 포크의 원점”


재킷 그림에서 기타를 메고 선 그의 그림자는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다. 표4의 그림도 같은 구도지만 노란색을 기조로 했던 사이키델릭한 색채로 그려져 있고, 그가 안고 있는 기타는 일렉기타로, 표 1에서 그의 오른쪽 후방에 보이는 건물은 기타 앰프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그가 포크 뿐 아니라, 이미 일렉트릭기타를 사용한 록적인 음악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포크 팬들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밥 딜런이 1965년에 포크 기타를 일렉기타로 바꾸며 포크 팬으로부터 비난 받았던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재킷이나 타이틀을 보고, 그것을 떠올렸던 사람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재킷의 아트 디렉션과 일러스트레이션를 담당한 이는, 후에 핫피엔도의 앨범을 포함해 URC의 작품 다수를 담당하게 되는 야부키 노부히코였다.


앨범의 대부분은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기타는 그 자신이 아닌, 후센의 나카가와 이사토가 치고 있다. 몇몇 곡의 베이스 역시 후센의 나가노 타카시가 참가. ‘쿄오오코에테(今日をこえて)’, ‘소레데지유니낫타노카이(それで自由になったのかい)’의 두 곡은 온화한 록 곡조의 연주가 붙어 있다. 리듬 세션은 나카가와 이사토(기타), 키다 타카스케(피아노, 오르간), 타니노 히토시(베이스), 츠노다 히로(드럼). 후자에는 니시오카 타카시도 하모니카로 참가함과 동시에 이 앨범의 레코딩 디렉터를 겸하고 있다.


후센의 < 오토기바나시(おとぎばなし) > 역시 니시오카 타카시가 디렉터를 담당했고, 키다, 타니노, 츠노다 세명이 게스트로 참가하고 있다. 키다, 타니노, 츠노다는 잭스의 말기 멤버였다. 그 해 11월에 발표된 나카가와 고로의 앨범 < 오와리 하지마루(終わり はじまる) >에도, 키다, 타니노, 츠노다, 하야카와 요시오, 나카가와 이사토가 참가하고 있다. 레이블의 특색을 결정하는 뮤지션 집단이라고 하면, 70년대 초기 URC에서는 핫피엔도였지만, 그들의 등장 반 년 정도 전 발족 당시의 URC의 레코딩에선 잭스와 이츠츠노아카이후센이 레이블의 음악적 지주였다.


수록된 10곡 중 오카바야시의 자작곡은 록 리듬이 붙은 앞서 언급한 두 곡 외 ‘산야블루스(山谷ブルース)‘, ‘테가미(手紙)’, ‘토모요(友よ)’의 세 곡. 나머지는 톰 팩스턴의 ‘Ramblin’ boy’, 에릭 앤더슨의 ‘Come to my bedside’, 밥 딜런의 ‘Masters of War/戦争の親玉’. 모두 당시 포크 팬에게 잘 알려져 있던 아메리칸 포크 송이다. 여기에 반전 노래로서 불리던 ‘모즈가카레테(モズが枯れて)’, 가장이 돈벌이를 위해 집을 떠난 겨울 설국의 가족을 노래한 ‘오토카에레야(お父帰れや)’ 등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토모요(友よ)’에 견줄 그의 초기 대표곡 중 하나가 ‘산야블루스(山谷ブルース)’다. 이 곡은 그의 체험으로부터 태어난 노래로, LP의 코멘트에는 “동급생이었던 카가군을 한번 산골짜기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가 ‘신주쿠블루스(新宿ブルース)’에 가사만 바꿔 그 원형을 만들었다. 거기에 손을 더해 새롭게 작곡했다.”라고 쓰여져 있다.



코멘트 중 ‘신주쿠블루스(新宿ブルース)’는 오기 히로코가 1967년에 부른 곡으로, 전 해에 발표한 소노 마리의 ‘유메와요루히라쿠(夢は夜ひらく)’와 같이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에 흐느끼는 여성의 기분을 노래한 엔카로 높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산야블루스(山谷ブルース)‘의 가사는 ‘신주쿠블루스(新宿ブルース)’와 비슷하지 않다. 하지만 주로 일용직 노동자가 내뱉는 체념의 한탄이나 단념을 표현해, 미소라 히바리의 ‘카나시이사케(悲しい酒)’의 인용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프레이즈가 나오는 구간은 역시나 굉장히 엔카스럽다. 음악적으로도, 인트로의 기타 역시 존 바에즈의 ‘Donna donna’를 인용했으나 노래는 4, 7음을 제외한 단음계의 엔카 곡조로 이루어져 있다.


개러지 포크 시대에는, 누가 엔카적인 것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겨루는 듯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런 경향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의 등장은 그가 반전노래나 사회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 이상으로 큰 사건이었다.


앙그라 포크라는 강렬하면서도 기묘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캐치프레이즈로 소개되었던 칸사이 포크의 기수 중 한 명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학원 분쟁이나 베트남 반전 데모 등 기동대와 데모대가 충돌해 화염병이나 최루가스가 길에 날아다니던 일이 드물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세상을 배경으로 발표되었던 것과도 관계 없이, “나를 단죄하라”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한 앨범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타만을 치며 부른 곡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주변에 붙인 캐치 프레이즈와는 관계가 없는 곳에서 음악을 만들고, 정말 지금의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다니 무르구만,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에 분노하고, 차별에 분개하고, 보다 좋은 미래를 염원하는 마음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래에 다소 말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과 관계없이 지금까지도 이 앨범에 내 마음이 동하는 것은, 맑은 노랫소리로부터 그의 그러한 마음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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