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의 어릴적 모험담

JUDY AND MARY < THE POWER SOURCE >(1997)

by 황선업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이팝을 접할 수 있는 경로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애니메이션 주제가로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알려지는 경우였는데, 그 중심에 있던 뮤지션 중 하나가 바로 주디 앤 마리였다.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そばかす(주근깨)'가 애니메이션 < 바람의 검심 >의 여는 곡으로 쓰이며 국내 대중의 좁은 틈으로 얼추 파고 든 덕분이었다. 다만 일본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이 전무해 라이브 영상을 접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그저 만화주제가 정도로 여겨지며 원치 않는 저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좋은 아티스트를 판별하는 시각을 흐리게 만들곤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편견이다. 이들은 결코 작품성 측면에서 과소평가될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적 없는 집단이기에 우리나라의 그러한 시선이 더욱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펑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완급조절이 능숙한 연주와 편곡실력, 여기에 캐릭터 강한 유키의 보컬은 일본 록의 새로운 영역을 도화지 밖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들의 4번째 앨범 < The Power Source >는 싱글 'Over drive'의 히트로 전환기를 맞아, 전체적인 사운드의 힘을 빼고 드라마틱한 선율로 대중성을 확보해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던 절충작이었다.

이 당시 주목해야 할 것은 커리어 초기의 텃밭을 일군 온다 요시히토(恩田快人)의 주도권이 타쿠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타쿠야의 캐치한 멜로디 감각으로 인해 음악적인 변화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점차 그의 곡이 싱글 커트되는 경우가 늘어나며 '포지티브한 팝록 밴드'로의 이미지를 규정짓고 또 구체화시켰다. 팬들 사이에서는 좀 더 록 스피릿으로 무장했던 < Orange Sunshine >(1994)이나 < Miracle Driving >(1995)을 우선순위에 두는 이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そばかす(주근깨)'의 영향력과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주디 앤 마리의 이름을 드높인 결정타 한 방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그렇게 조타수를 돌림과 동시에 전무후무했던 유키의 캐릭터와 보컬은 물을 만난 듯 호소력의 상승을 이뤄냈다. 다소 부담스러웠던 초창기의 'Power of love'나 'Hello! orange sunshine'의 과장스러운 목소리에서 벗어나 'KISSの温度(KISS의 온도)'에서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새침데기, 'クラシック(Classic)'에서는 절실하게 자신의 바람을 읊는 소녀 등 그 역할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여기에 고조되는 기타에 키보드를 덧칠함으로서 칼칼한 도입부를 이끌어낸 'Happy?', 템포를 좌지우지 하다 순간적으로 피치를 올리며 산뜻한 질주감을 능숙하게 구사해내는 'ラブリーベイベー(Lovely baby)' 등 롤러코스터를 타듯 짜릿한 러닝타임을 즐기다 보면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게 이들이 쓴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가 닫혀버리고 만다.

세월이 흘렀음을 명확히 체감하게 해주는 것은 자신의 변화보다도 자주 봐오던 누군가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유키가 그렇다. 마냥 말괄량이 같던 그녀도 어느덧 6장의 솔로 디스코그라피가 쌓이고, 안타깝게도 일찍이 딸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되어 'Miss yesterday'에서와 같은 애수를 세상의 흐름에 흘려보내는 순간, 주위의 대기가 그제야 느지막이 시계바늘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그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자 할 때, 그 때가 바로 이 앨범의 먼지를 털어낼 시기다. 가장 극대화된 캔디 팝록의 상큼함이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남아 잠시나마 그때의 단맛을 맘껏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토록 긍정적으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낸 이 작품은 어느새 일본 록음악사의 한 영역을 새롭게 정의해냄과 동시에 타임머신으로 군림하며 과거와 미래의 그들을 무리 없이 이어주고 있다.

- 수록곡 -
1. Birthday song
2. ラブリーベイベー(Lovely baby) 추천
3. そばかす(주근깨) 추천
4. KISSの温度(KISS의 온도) 추천
5. Happy? 추천
6. Pinky loves him
7. くじら12号(고래12호) 추천
8. クラシック(Classic) 추천
9. 風に吹かれて(바람에 날려)
10. The Great Escape


2012/01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후일담 : 국내 대중들에게 주디 앤 마리는 애니메이션 < 바람의 검심 > 주제가로 굉장히 잘 알려져 있죠. 어렸을 적 들었을 땐 그저 좋은 노래로만 인식했었는데, 좀 머리가 커서 들으니 곡 전체에 흐르는 기타 솔로잉이 살벌하더이다 ;;; (사실 주디 앤 마리는 굉장한 테크니션 아티스트죠) 팀 이름만 듣고는 여성 2인조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밴드여서 2차로 충격을 먹곤 했었죠. 이 앨범은 밴드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흘려보낼 곳이 없는 완벽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베스트만 들으면 놓치기 쉬운 'ラブリーベイベー(Lovely baby)’나 'Happy?' 같은 곡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을 가치는 충분하죠. 유키의 솔로 앨범과는 또다른, 가슴이 두근두근할 모험담이 가득한 달콤상큼한 캔디같은 작품, 일상이 무기력할 때 들어보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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