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YUKI) < うれしくって抱きあうよ >(2011)
아직도 그녀에게서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 시절의 앙칼진 모습만을 찾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더 이상 옛날이 아쉬울 일은 없다. 지금의 유키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처방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조심스레 차려낸 음어(音語)의 만찬은 이제 모두의 마음을 살찌울 준비가 되었다. 첫 작품 < Prismic >으로부터 다섯 번째 산고를 겪고서야 이뤄낸 성과다.
보아가 < Best of Soul > 이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것처럼 일본 아티스트들은 베스트 앨범 이후 곧잘 하락세를 타곤 한다. 아무래도 전성기를 정리하는 의미가 강한 탓이다. < Five star >로 역시 원치 않은 내리막길을 걸어갔던 그녀지만 다시금 호흡을 고르며 대중과의 교감을 준비했다. 허투루 내딛은 한걸음이 가수생명 단축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있던 터였다.
먼 길을 돌아오며 발견해 낸 소통의 키워드는 결국 '현재', 그리고 '솔직함'이었다. 이 요소가 중력 밖으로 튀어나간 진로를 다시금 대기권으로 상륙시켰다. 밴드의 색깔을 벗지 못했던 초기와 일렉트로니카에 욕심을 보였던 중기를 거쳐 가장 맘에 들며 자신 있어 하는 곳에 안착한 느낌이다.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다급함을 벗고 편안히 이야기 하는 모습이 어느 때 보다도 진실하다.
좋은 멜로디가 비음 강한 보컬을 부유감 없이 붙잡는 모습은 전작이었던 < Wave >에서부터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대중적 감각의 만개를 상징한다. 스트링과 아코디언의 앙상블로 새로운 시작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 '朝が来る(아침이 와)', 록 적인 어프로치가 팝스럽게 순화된 'プレゼント(Present)'은 캐치한 선율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효과적인 신시사이저 사용과 독특한 음계, 보컬만으로도 트인 드레스 옆선의 섹시한 각선미가 상상되는 'チャイニーズガール(Chinese girl)'은 변화를 간과하지 않은 고민의 산물이다. 노래를 부른 다기 보다 빅밴드 사운드와 스윙을 추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완급조절을 보여주는 '恋愛模様(사랑모양)', 차분한 슬픔에 오히려 가슴이 더욱 저릿한 'ミス・イエスタデイ(Miss yesterday)'에는 유키만의 감성이 응집되어 있다. 어느 하나 놓치기 아까운 트랙들이다.
여전히 걷고 있다. 전성기가 언제였느냐 따지는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전과 같이 나아가고 있다. 그녀라는 이름의 폭포가 히스테릭 블루(Hysteric Blue), 아이코(Aiko), 오오츠카 아이(大塚愛) 등의 여러 물줄기로 분파되는 와중에도 꿋꿋하다. 많은 이들이 쥬디 앤 마리를 그리워하지만 솔로로서의 경력 또한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과거의 영광에 취하는 대신 '현재'를 차분히 밟으며 성장해 온 서른여덟 살 소녀의 모습엔 추억보다 값진 미래가 있다는 강한 믿음 덕분이다. '음악과의 진솔한 대면(Face to face)'. 마냥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마녀가 펼치는 마법의 원천이다.
- 수록곡 -
1. 朝が来る(아침이 와) 추천
2. プレゼント(Present) 추천
3. Cosmic box 추천
4. ランデヴー(Rendezvous)
5. Just life! All right!
6. チャイニーズガール(Chinese girl) 추천
7. 恋愛模様(사랑모양) 추천
8. さようなら、おかえり(잘 있어, 어서 와)
9. うれしくって抱きあうよ(기뻐서 서로 껴안아)
10. ミス・イエスタデイ(Miss yesterday) 추천
11. 汽車に乗って(기차를 타고)
12. 同じ手(똑같은 손)
13. 夜が来る(밤이 와)
2011/01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후일담 : 지금도 "재결성했으면 하는 밴드는?"이라는 설문을 하면 1~2위를 다투는 것이 바로 쥬디 앤 마리죠. 그와 별개로 유키는 솔로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로 어제 그녀의 새앨범이 발매되었죠. 소니 뮤직과의 계약 종료 이후 초심으로 돌아가 선보이는 작품인데요. 이 시점에서 괜시리 이 작품이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뭔가 판타지 속에 있던 소녀가 현실에 나와 정착하면서 어느덧 삶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렸지만, 그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며 오히려 그 속에 희노애락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결국 그것이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재료들임을 알려주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모두가 다시한번 공유한 다음, 그렇게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게 된 유키의 새앨범과 마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싶네요. 어쨌든 유키는 언제까지나 철들지 않은 어른으로 남아있을 것이란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