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백넘버였다.

back number < blues >(2012)

by 황선업

감성보다 감각이 지배하는 시대, 요즘 우리가 마주치는 음악들은 대부분 번뜩이는 센스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짧지만 강렬한 자극을 안겨준다. 이에 반해 처음엔 와닿지 않아도 조금씩 마음을 파고드는 노래들은 상대적으로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 사실. 이러한 경향이 반복될수록 히트곡의 주기는 짧아지고 들을게 없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제이 팝 시장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맞은 요즘 록 신이 조금씩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쉽사리 전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독자적인 작법에 치중한 나머지 대중들의 외면을 스스로 사게 되는 자의식 과잉에 대부분 빚을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 넘버(Back Number)의 위치는 특별하다. 전작 < スーパースター(Superstar) >(2011)와 싱글 '花束(꽃다발)'의 히트로 메이저 데뷔 후 최고의 나날을 보낸 이 삼인조 밴드는 철저히 보편적인 정서를 전제로 한 팝록 사운드를 주축으로 지난 한 해 양쪽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결과물 안에 자신들만의 사운드와 언어를 무리하게 집어넣는 일부 뮤지션들의 아집과는 달리, 일상에서 캐치해 낸 여운으로 반가움을 자아내는 이들의 역량은 평범하기에 특별하다는 역설적인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편곡적인 면에서의 포인트를 배제한 채 가사와 선율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이들의 장점은 반대로 이 두 가지가 조금이라도 약해질 시 급격히 그 빛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낯빛을 바꾸기도 한다. 신작은 그 외줄타기의 긍정적인 면만을 흡수해 풀어 놓았다. 최근 이 정도까지 멜로디로 승부를 건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러닝타임 내내 익숙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드라마틱함이 귀를 관통한다, 뻔한 것을 뻔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 뛰어난 기승전결의 플롯구성은 옛 추억을 생생히 재현해 내는 프로젝터처럼 그렇게 기억의 단편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50여분간 써내려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히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기타 솔로를 최대한 배제한 수수하면서도 이상적인 밸런스를 갖춘 합주에 오롯이 실어내는 목소리는 진정성이라는 설득력을 갖추며 일정 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덕분이다. 상승조의 멜로디가 업템포를 타며 날아갈 듯한 연인과의 데이트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만드는 '日曜日(일요일)', 졸업식을 앞두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상대에게 마지막으로 고백을 준비하는 내용의 발라드 '恋(사랑)', 순간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만큼은 만족시켜주고 싶다는 밴드의 가치관이 잘 살아있는 희망찬 내용의 '平日のブルース(평일의 블루스)'와 드라마 < 高校入試(고교입시) >의 주제가였던 '青い春(청춘)' 등 인상적인 코드워크를 타고 흐르는 리더 시미즈 이요리(清水 依与吏)의 보컬은 그야말로 대중성과 자의식의 이상적인 교집합이다.

'나는 너의 옛 남자, 나는 그녀의 백넘버'. 밴드를 하고 있던 남자에게 애인을 뺏긴 후 자신도 보란 듯이 음악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었다는 이름은 언뜻 보기엔 찌질해 보일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치열했던 순정에 대한 보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은 한 때 있었던 그런 순수한 감정들을 음악을 통해 불러일으킨다. 전작에서 얼떨결에 분출된 잠재력을 확실히 체득함과 동시에 과장과 무리수는 한 스푼 더 덜어낸 이 담백함에 우리들의 마음이 동함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프론트 넘버는 아닐 수 있어도, 분명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백 넘버일 것이기 때문에.

- 수록곡 -
1. 青い春(청춘) 추천
2. 手の鳴る方へ(손뼉이 울리는 쪽으로)
3. わたがし(솜사탕) 추천
4. エンディング(Ending)
5. 日曜日(일요일) 추천
6. 平日のブルース(평일의 블루스) 추천
7. 笑顔(웃는 얼굴)
8. ささえる人の歌(버팀목의 노래)
9. bird's sorrow
10. 助演女優症(조연여우증)
11. 僕が今できることを(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12. 恋(사랑). 추천


2012/12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후일담 : 이 앨범이 선보인지도, 제가 이 리뷰를 쓴지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백넘버는 어느덧 돔투어를 할 정도의 거물밴드가 되었고요. 사실 보편적인 메시지와 멜로디를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데뷔하고 나서도 한 5년은 록 신에서만 반응이 오던 탓에 전국구급 스타까지 가기는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 갑자기 'christmas song'이 대히트하더니, 록 페스티벌에서는 아이돌 저리가라 할 만큼 여성팬들의 환호를 받는 팀이 되어 기분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약간 젊은 나이의 윤종신이 밴드를 하는데 거기에 여성팬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격이랄까요. < シャンデリア >(2015)로 이들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 blues > 앨범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훨씬 더 매력적인 선율이 담겨있는 이들이 최고작이라 생각하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