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p of Chicken < orbital period >(2010)
네 번의 내한공연으로 두터운 팬 층을 가지고 있는 이 일본의 4인조 록그룹은 왠지 우주와 마음이 맞는 모양이다. 6년-5년-6년-11년의 순서로 태어난 날과 같은 요일을 맞닥뜨린다는 28년의 궤도주기(Orbital period)가 잠시 정체되어 있는 이들의 뇌관을 건드린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들이 28살을 맞아 내놓은 다섯 번째 앨범은 규모나 콘셉트, 음악 전반에 있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얼터너티브 록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결과물은 이제껏 타협 없는 자의식의 산물이었다. 그런 탓에 차트 성적을 위시한 'K'나 '天体観測(천체관측)', 'Sailing day' 등의 싱글과는 달리 한 장의 시디로 접하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 밴드 중 하나였다. 우리를 이방인으로 내모는 낯선 멜로디 역시 러닝타임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멀리서 들려오는 'メーデー(Mayday)'의 메아리는 그들의 달라진 모습을 실감케 한다. 어느 때보다도 애타게 의사소통을 요청하는 가사와 후지와라 모토오(藤原基央)의 날선 목소리에 전에 없던 강한 설득력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명확히 들리는 선율에 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이러한 대중성의 획득은 듣는 이와 말하는 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잘 짜인 한편의 이야기와 같은 치밀한 구성도 작품을 평작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같은 멜로디에 다른 편곡을 취한 'Voyager'와 'Flyby'는 궤도를 순환하는 위성의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점하고 있다. 또한 두 트랙씩 이어지는 음악적 이미지와 메시지의 연속성, '飴玉の唄(눈깔사탕의 노래)'의 내용이 'Supernova'에서 끝맺음되는 듯한 인상 등은 개개의 곡들이 결국 한 장의 음반을 이루기 위한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8분의 6박자를 시도한 '時空かくれんぼ(시공 숨바꼭질)'과 베이스 위에 또 한 대의 베이스를 프레이즈로 살포시 얹어 놓은 'ひとりごと(혼잣말)', 진일보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주는 'プラネタリウム(Planetarium)' 등은 새로운 음악으로의 도전을 알리는 차임벨이다. 자칫 플롯 자체에 매몰될 수도 있는 음악이 어느 때보다도 찬란히 햇빛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리더인 후지와라 모토오가 그랬듯, 단순했던 점이 선이 되고 그 선이 점점 입체감을 갖는 작품이다. 10여곡의 노래가 중첩되어 만들어 낸 이들 특유의 철학적인 세계관을 대중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전과 달리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계속 파내도 끝없는 우물물 같은 상상력, 어느 한곡을 들어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들의 정체성 또한 고무적이다. 제이 록(J-Rock)을 근본도 없는 변종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날려줄 강력한 카운터펀치라 할 만하다.
-수록곡-
1. Voyager
2. 星の鳥(별의 새)
3. メーデー(Mayday) 추천
4. 才悩人応援歌(재뇌인응원가)
5. プラネタリウム(Planetarium)
6. Supernova 추천
7. ハンマーソングと痛みの塔(해머송과 아픔의 탑)
8. 時空かくれんぼ(시공 숨바꼭질) 추천
9. かさぶたぶたぶ(상처딱지딱지딱)
10. 花の名(꽃의 이름) 추천
11. ひとりごと(혼잣말)
12. 飴玉の唄(눈깔사탕의 노래)
13. 星の鳥 Reprise(별의 새 Reprise)
14. カルマ(Karma) 추천
15. Arrows
16. 涙のふるさと(눈물의 고향) 추천
17. Flyby
후일담 : 단연 범프의 최고작입니다. 질릴만 하면 이 곡에 꽂히고, 그 곡이 질릴만 하면 또 다른 곡에 꽂히는 과정을 거치며 정말 오래오래 들은 저만의 명반 of 명반이죠. 노래방에서는 涙のふるさと나 カルマ를 부르고, 집에 가면 기타로 花の名와 supernova를 연습했던 그야말로 제 삶의 일부였던 작품.
2013년 처음으로 갔던 일본 록페에서 그들을 직접 봤는데, 현장에 있던 5만명의 사람들과 다함께 'supernova'의 후렴을 합창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었죠. 이렇듯 음악을 넘어 가장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뉴먼트로서 저에게 존재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