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엘티지만 이엘티가 아니다.

Evety Little Thing < Crispy Park>(2006)

by 황선업

제이팝 시장에서 이토록 많은 음악적 변화를 겪은 팀도 없을 것이다. 보컬 모치다 카오리(持田香織)와 기타 이토 이치로(伊藤一朗)로 구성된 에브리 리틀 씽은 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끊이지 않았던 그룹이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발매했던 일곱 번째 음반은 이들의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도 기존의 스타일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앨범이다.

1998년에 발매된 2집 < Time To Destination >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이들 특유의 신스 사운드는 당시 프로듀싱과 작곡을 도맡았던 이가라시 미츠루(五十嵐充)의 탈퇴와 함께 가야할 길을 잃었다. 결국 'Pray'나 'Graceful world' 등의 곡으로 기존 분위기를 유지하려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치다 카오리의 목 상태로 인한 창법 변화도 음악적 방향을 수정해야 했던 이유였다.

이러한 부침 속에 발매된 < Crispy Park >는 불운했다. 예전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아쉬움 탓에 좋은 내용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恋文(연애편지)', 'Good night' 같은 발라드는 예전의 향수만을 자극할 뿐이었고, 전체적으로 훨씬 밋밋해진 멜로디라인도 매력반감의 요인 중 하나였다. 애초에 지향하는 타깃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기존의 선입견을 넘어설 만큼 통렬한 한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ハイファイ メッセージ(Hi-fi message)'부터가 전과는 다른 낯선 모습이다. 전면에 나서는 기타 사운드가 예전과 차별화를 둔다. 물론 'Life cycle'이나 'Tye-die'처럼 강한 록 사운드를 소재로 곡을 만든 적은 있었지만 이와는 또 다르다. 훨씬 여유가 있고 느긋하다. 소리 자체도 더욱 깊고 풍성하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드라이브 감 있는 디스토션 사운드가 일품인 'スイミー(Swimmy)'는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여 그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편곡의 스펙트럼도 훨씬 넓어졌다. '風待ち心もよう(바람을 기다리는 마음 모양)'은 키보드, 첼로, 기타를 전개에 따라 각각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즐거움을 준다. 반복되는 루프가 귀를 잡아끄는 피아노 록 트랙 'スカーレット(스칼렛)'는 악기의 치고 빠짐과 템포 변화라는 무기로 매력적인 잽을 날린다.

모치다 카오리는 바뀐 음색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雨の鳴る夜、しずくを君に(비가 울리는 밤, 물방울을 그대에게)'에서의 감정표현은 음색의 변화로 등을 돌린 팬들을 다시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4집의 '鮮やかなもの(선명한 것)'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좀 더 가까이 들린다. 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흔해빠진 이야기라도 옆에서 들어주는 친절함이 스며있다. 맹목적으로 꿈을 노래하는 대신 아픔을 다독여주는 태도 속에 작사가로서의 성장 또한 엿볼 수 있다.

편곡은 넘치지 않고 감정과잉은 더더욱 없다. 어느 상황에서든 의연하다. 그렇기에 여운이 남는다. 모두들 상처가 있으면서도 감추고 살아감을 대변한다. 그러다 마지막 곡 'Good night'에서 터지는 묵혀두었던 슬픔은 시디플레이어가 멈췄음에도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결국에는 누구나 눈물 몇 방울과 함께 다시금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마음을 먹기에. 이러한 삶의 과정을 한 장의 시디로 담아내는 데에 10년이 걸렸다. 다른 10년을 향해 다시금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모습은 그룹명처럼 먼지와 같은 작은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가장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또한 이 음반과 함께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난 후련함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것 마냥 상쾌하다. 마치 이들이 말한 'Crispy park'에 있는 것처럼.

- 수록곡 -
1. ハイファイ メッセージ (Hi-fi message)
2. スイミー (Swimmy) 추천
3. 風待ち心もよう (바람을 기다리는 마음 모양)

추천
4. 雨の鳴る夜、しずくを君に (비가 울리는 밤, 물방울을 그대에게) 추천
5. 恋文 (연애편지) 추천
6. スカーレット (스칼렛)
7. Sweet emergency (Instrumental)
8. あすの心 (내일의 마음)
9. きみの て (그대의 손)
10. いずれもromantic (누구나 romantic) 추천
11. Azure moon
12. I met you (Instrumental)
13. Good night 추천


후일담 : 이 앨범은 제가 군대 있을때 정말 많이 들었던 앨범입니다. 행정병이었던 덕분에 모아둔 월급으로 저희 직속 장교분에게 시디 주문을 부탁드려서 듣고 싶은 앨범을 받곤 했었죠. 팍팍한 현실 속에서 들었던 오아시스 같은 작품 중에 하나랄까요. 사실 이엘티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 Time to Destination >이나 < Many Pieces >를 명반으로 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 Crispy Park >는 기존 대중들이 이들에게 바라던 대부분을 부정하면서 내놓은 준작이기에 외면을 받은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팝 그룹임에도 항상 변화를 모색했던 밴드라는 점은 박수를 주저하지 않게 만들죠. 이엘티 팬들 사이에서도 지금쯤 재평가 받음이 마땅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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