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타츠로 인터뷰 번역 (1)
지난 6월, 시티팝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14번째 정규작이 무려 11년만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와 함께 그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매체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위대한 아티스트와의 대담이나 인터뷰 콘텐츠 들도 속속 선보이거나 선보일 예정에 있는 상황인데요. 제가 즐겨보는 음악프로인 칸잼 완전연쇼( 関ジャム 完全燃SHOW)에서 야마시타 타츠로 특집을 2부에 걸쳐 선보인 바, 방송에 담긴 야마시타 타츠로의 인터뷰를 번역해서 게재하고자 합니다. TV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목소리는 OK'라는 취지 하에 행해진 아주 귀중한 공중파 자료이지 않나 싶은데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작업비화라던가 아티스트로서의 애티튜드, 그가 생각하는 일본의 음악사까지. 흥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이 많은 것 같아 저 역시 데이터베이스로 남겨 놓음과 동시에 많은 분들도 함께 즐기셨으면 하는 의도이니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올릴 예정이며, 우선은 1부 내용부터 업로드합니다.
프로그램명 : 関ジャム 完全燃SHOW
방영일자 : 6.19
인터뷰 내용 번역 : 황선업(의역이나 오역이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Q : 앨범을 만들고자 하는 시기는 어느 타이밍인가요? 구상을 세우고 나서? 곡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야마시타 타츠로 : < FOR YOU >는 40년전 앨범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1년에 1장 내는게 기본이었어요. 사업계획으로 봤을 때 한 해에 한 장이 일반적. 한 3년 동안 앨범 안내면 “너 뭐하냐”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 대문에 어찌어찌 한 해에 앨범 2장을 내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땐 구상이고 나발이고 그런게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싱어송라이터’, 혹은 ‘작가’, ‘작곡가’에 가까운 스탠스였기 때문에 매일 “이런 곡으로 하자”하고 메모를 하는게 아니라 “곡이 쌓이면 그 중에서 고른다”라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70년대 당시엔 전혀 인기 없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될랑말랑 빠듯하게 녹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0곡 들어가는 앨범에 겨우겨우 12곡 레코딩하고 그랬죠.
밴드랑 다르게 저희 같은 솔로의 경우는 앨범은 곡을 만들고 나서,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 그게 처음이에요. 예산이 없으니까 리허설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스튜디오 뮤지션을 불러서 3시간만에 2곡을 녹음하는 정도의 페이스가 일반적인 70년대의 풍경이었죠. 제가 직접 편곡을 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코다(곡의 끝을 맺는 부분) 라던가 "한 소절 더 녹음하고 싶은데” 싶은 마음에 한번 더 녹음하고 싶다고 말해도 예산이 없어서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판을 더 파세요” “인기 뮤지션이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죠.
인기를 얻고 싶다고 생각한 동기엔 “원 테이크 더 녹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어요. 좀 더 녹음하고 싶다고 하면 “당신의 매출로는 무리입니다”라고 하니까요. < RIDE ON TIME >이 히트하고 가장 기뻤던 것은, 레코딩에 맘껏 투자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앨범인 < FOR YOU >는 17곡을 녹음해 8곡을 수록했죠. 2배 이상을 작업했습니다. 더불어 스튜디오 뮤지션이 아닌 자신의 퍼머넌트 멤버가 확정할 수 있었죠,
(역주 : 당시의 멤버는 아오야마 준(Dr) 이토 코우키(B) 시이나 카즈오(Gt), 난바 히로유키(키보드))
우선 드럼, 베이스와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리듬 패턴을 연구했죠. 당시에는 리듬박스나 컴퓨터가 그닥 발전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해나갈 수 밖에 없었죠. 이 선행작업을 통해, ‘Sparkle’의 패턴 같은걸 함께 정하고… < RIDE ON TIME > 앨범부터 이러한 시행착오가 가능해졌죠. < RIDE ON TIME > 이전과 이후의 작업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 FOR YOU >의 경우는 맘껏 녹음한다, 그 뿐이었습니다. 이 시점 이후로는 계속 그래왔습니다. < POCKET MUSIC >은 헤매고 헤매 27곡 정도를 녹음했으니까요.
그닥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될테지만… ‘앨범을 만들자’라는 구상을 물으신다면, 70년대의 작업물에 그러한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지 않나 싶네요. “곡을 썼다”는 의미의 기준이 무언지가 좀 애매한데요. 싱어송라이터는 기타 하나로 노랫말과 곡을 만들죠. 저의 경우는, 리듬 패턴만 만들어요. < FOR YOU >는 전부 리듬 패턴만 만든 후, 멜로디는 나중에 생각했죠.
(트랙(리듬 섹션)이 있는 상태에서 말씀이시죠?)
야마시타 타츠로 : 당시 작업할 때는 '멜로디를 만드는 날'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형태가 만들어진 멀티 트랙을 스튜디오에 틀어놓고 “라~라라~라”하며 멜로디를 구상하고 거기에 가사를 붙이죠. 어째서 그런 방식으로 했냐고 묻는다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트랙과 멜로디가 가진 리듬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하고 싶다라던가.
제가 작업할 때는, 가능한 한 리듬박스를 활용해 집에서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선 폴리리듬(상이한 리듬을 동시에 연주), 리듬 앤 블루스 적인 리듬섹션의 복합(어울림). 앙상블을 능숙하게 구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럼이나 베이스를 넣어서 “이 프레이즈는 이렇게…” 라며 점점 형태를 만들어 나갑니다. < FOR YOU > 작업 당시에는 거의 이런 형태로만 만들었었죠.
Q. 이 타이밍에 새 앨범을 릴리즈한 이유가 있을가요?
야마시타 타츠로 : 코로나로 라이브가 불가능해진 덕분이죠. 라이브를 11년 동안 줄곧 해왔지만, 라이브는 육체노동이고, 해마다 50번 정도를 해요. 나이도 나이인지라… 싱글은 가능하다 쳐도, 앨범이라는 형태를 연속적으로 선보이는 그런 육체적인 에너지와 집중력은 라이브를 하면서는 좀처럼 유지하기 힘들죠. 뭐 80년대에는 라이브 하고, 앨범 만들고, 다른 사람 곡 써주고. 그땐 30대 였으니까요. 지금은 나이를 먹었죠.(코로나로 인해 라이브를 할 수 없게된 시간을 앨범 쪽으로...) 그렇죠.
Q. ’크리스마스 이브’의 코러스는 레코딩 할 당시 얼마나 시간이 걸렸었는지요?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몇 개의 목소리를 겹쳐냈던 것인지요?
야마시타 타츠로 : 8시간 정도 걸렸어요. 2시에 시작해서 10시까지. 항상 이야기하지만 저는 혼자 하니까요. 1인 아카펠라 인데요. 아카펠라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끝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1인 아카펠라는 가이드 리듬을 들으면서 하는데, 지금과 같이 다른 소리와의 어긋남이나 음정을 조정할 수 시대가 아니었고, 그 가이드 리듬을 들으며 겹쳐나가는 작업이었죠. 기분대로 하면 어긋나 버려요. 진짜로 가이드 리듬을 따라가거든요. 그러면 어긋나 버리죠.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머리로부터 가이드 리듬에 딱 맞게 20회 노래한 다음에도, 확실히 첫번째 부른 것과 딱 맞도록 훈련을 합니다. 그게 1년이 걸렸어요. 그걸 맞추는 데에요.
그래서 설령 20번을 부르자고 했을 때 10번을 부르고 나머지는 다음날 한다고 칩시다. 다음날이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어제 했던 거랑은 맞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바이오리듬은 정말 불가사의해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 날에 끝내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몇십마디를 하던간에 그날 다 해버려야 한다. 그 마인드의 극치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간주인 셈이죠.
스윙글 싱어즈(Swingle Singers)라는, 바로크 음악의 코러스를 하던 분들이 있는데요. 바하는 기악곡이기 때문에 숨을 쉴 구간이 없어요. 그래서 1~2소절을 한사람씩 교대로 부르죠. (크리스마스 이브의 코러스는) 파헬벨의 ‘캐논’이라는 곡. 운 좋게도 ‘캐논’도 ‘크리스마스 이브’도 키가 A였기 때문에, 같은 악보로 할 수 있었죠. 더욱이 운이 좋았던게, 제 음역대가 3옥타브라서 낼 수 있는 가장 고음이 E인데, 캐논도 마찬가지로 E 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죠. 음정이 높았다거나 낮았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거에요. 우연이었죠. 그날 2시부터 10시 즈음까지 했으니까 8시간 가까이 했었네요.
Q. 구체적으로 몇개의 목소리가 겹쳐진건가요?
야마시타 타츠로 : 세본적은 없는데요.. 그게… (연필로 메모를 해가며 계산…) 50회 전후일 거에요. 50회라고는 해도 교대로 부르고 있죠. 실제로는 27성위인데, 그 안에서 십수개는 1소절씩 교대하고 있어요. 그것을 전부 두 배로 쳐야하니까 대충 50개 전후. 그러니까 오리지널(각각의 목소리 파트)는 남아있지 않아요. 두 트랙으로 떨어트려 놓은 것만 있죠. (지금, 연필로 메모하시면서 떠올리셨는데요. 그렇게 하면 기억이 나나요?) 나 혼자 다한다니까!!(웃음) 디테일이 아주 세밀한 것까지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싫어요 제 작업방식이.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잘 모르겠으니까 체념해버리고 말죠. '철금(타악기의 하나)이 레가 아니라 솔에 튀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머리에 맴돕니다. 그렇게 되면 그날 잠은 다 잔 거에요.
Q. 자음의 강한 발성 등 노래의 뉘앙스를 붙이는 방식은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그리고 'SPARKLE'은 트랙이 먼저 만들어진 것이라고 들었는데요, 작곡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요.
야마시타 타츠로 : 거의 피아노로 만들어요. 그런데 멜로디 선행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코드와 훅이라고 하는, 가장 캐치한 멜로디, 그리고 노래를 시작하는 A 멜로디가 갑작스레 떠오르는 경우가 있죠. 그것을 테이프에 넣거나, 악보로 옮긴다거나 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일람표로 만들어 데이터베이스로 가지고 있습니다. 곡 오퍼를 받았을때 “이런 곡으로 해주세요”라는 의뢰와 맞춰서, 뭔가 좋은 훅이 있으며 팽창시켜서(발전시켜서) 1곡을 만들죠.
그런데 < FOR YOU >의 경우에는, 트랙으로서의 그루브를 가장 우선시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멜로디에 맞는 편곡을 하는 것과 트랙을 만들고 나서 나서 멜로디를 정하는 것과는 그루브가 완전히 달라요. 원래 서양음악의 멜로디, 영어 기반의 멜로디에 영향을 받아서 선율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일본어를 얹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I LOVE YOU’는 3음절인데 일본어의 경우에는 ‘아나타(あなた)’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죠. 핸디캡이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각자의 방법으로 해쳐나가고 있었고, 가장 눈에 많이 띄었던 것이 창법이었습니다. 제 세대의 사람들은 전부 특수한 가창법을 가지고 있죠. 저는 ‘아이우에오’를 ‘하히후헤호’로 발음하고 있고, 야자와 에이키치씨, 이마와노 키요시로씨, 쿠와타 케이스케씨… 모두 특징이 있는 창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멜로디에 있어 일본어 활용이 어려운 측면을 창법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결과의 발음입니다.
제가 80년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게, 어떤 방법으로 서양음악 스타일의 트랙에 일본어를 실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입장에서, 집에서 나름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멜로디를 생각했기 때문에 리듬패턴으로서의 정합성을 취할수가 없었습니다. 노래하면서 연주하는 형태에 있어, 그것은 폴리리듬으로서의 드럼, 베이스, 키보드, 기타가 조합된 콤비네이션 상에서 만들어진 멜로디가 아니잖아요.
일본의 경우에는 어쨌든 노래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에요. 왜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국어교육 때문이죠. 일본인은 국어교육을 소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4년) 동안 철저하게 하죠. 동일한 수준의 경제적/인적노력을 음악교육에 쏟는다면 완전히 달라질 거에요. “여기에 드롭이 굉장해”라던가 (드롭 : 리듬이 쿵하고 정착하는 타이밍) “여기의 블루글래스가 굉장해” (블루글래스 : 현악기를 오프비트로 강조하는 연주) 등과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겠죠.
일본의 경우에는, 언어가 무엇보다 가치 있기 때문에, 음악의 70%가 가사에요. 이걸 먼저 인식하지 않으면, 일본의 히트송이라던가 팝뮤직에 대해서도 “이 가사가 좋네”라는 건 결국 “이 노래가 좋네”와 같은 이야기라는 거죠. 작곡쪽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게 되면 “이 노래 어려워..” “가사가 좀..” 과 같은 반응이 나오죠. 이런 일을 47년, 계속 겪으면서 커왔어요.(웃음) 그러다보니 음악은 즉 “가사와 멜로디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거죠. 그렇게 가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줄 알았다면 시인이 되면 좋았을텐데.
저희들은 로큰롤이니까, 리듬패턴 위에 어떤 멜로디를 태워서 어떻게든 유기적으로 융합하지 않으면, 블렌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요곡 같은 음악은 인트로는 엄청 멋진데, 노래가 나오면 이상해져요. 그건 편곡의 문제라고 봐요. 멜로디의 구조에, 편곡이 잘 붙지 않는다. 예전부터, 어렸을때 부터 생각했었어요. 반면 외국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멜로디를 가진 비트와, 트랙을 가진 비트가 확실히 융합되어 있죠. 그것을 융합해보이고 싶다고 줄곧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왔는데, 가장 성과가 나왔던 것이 < FOR YOU >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완전히 구분해서, 멜로디는 나중에, 리듬세션의 그루브를 최우선으로 했었죠. 댄서블한 비트 위에 멜로디가 정확히 꽂혀 있는, 그런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Q. ‘は’라고 말할때의 ‘H’의 자음이 강한것은 연구에 의한 것인가요?
야마시타 타츠로 : 그건 하다가 보니 그렇게 된 거에요. 모두 그래요, 연구 같은 건 아무도 안해요. 예를 들면, 야자와씨나 쿠와타씨도 “저는 이런 걸 듣고 그렇게 되었죠”라고 한들… 누구든지 하다가 보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창법에 있어서 서양음악에 일본어를 실으려는 싸움이 타츠로씨 내면에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경위로 노래가 변화했는지요?
야마시타 타츠로 : 서양음악만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가요곡이라고 불리는 음악을 거의 들은 적이 없어요. 내 자신이 일본어로 노래할 때의 그 위화감이 있었죠. 특히 그 리듬패턴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그 위화감이 강해졌습니다. 일본의 경우, 제가 슈가베이브를 시작했을 시절에 완전히 16비트 지상주의여서 8분음표의 8비트 음악은 한단계 아래라고 생각되어 졌었죠. 그러다보니 결국 인스트루멘탈 지향이 되어서, 만드는 족족 부르기 힘든 노래들이 되어갔습니다. 16비트의 곡이라던가.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인스트루멘탈 쪽이 노래보다 위대해요. 여러분들 세대가 믿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시대가 ‘보컬 지향’입니다만, 저희들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먼저 리드기타가 가장 지위가 높았습니다. 왜냐면, 벤쳐즈(The Ventures) 때문이죠. 일본 로큰롤의 시작은, 벤쳐즈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됩니다. 벤쳐즈는 인스트루멘탈 밴드니 리드기타가 가장 스타고 다음이 사이드기타, 다음이 베이스, 드럼과 키보드는 조금 입장이 다르지만, 가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보컬이었죠.
일본의 보컬 뮤직이 이상하리만치 발전이 늦었던건 왜일까. 그건 어떤 의미로는 벤처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90년대부터 보컬, 보컬, 보컬… 제 시대는 보컬 지향의 작품을 할려 치면, 록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집단소요가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노래’라는 고유명사를 표현하는 좀 더 성실한 수단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포크 뮤직”이라던가… 그거라면 언어도 멜로디도 확실하게 들려오죠. 록은 시끄럽습니다. 그런 시대였어요. 제 경우에는 폴리시(Policy)로서 강한 비트에 아름다운 멜로디. 그런 것을 지향했습니다만, 그런 것들이 당시에는 그닥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FOR YOU >는 38년전 작품이니까 이제 와서 이렇게 고평가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고 싶었던 건 멜로디 라인을 가진 음율과 리듬섹션의 유기적인 앙상블이었죠.
솔로 작품을 내고 나서 세상 속에서 메이저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레코드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을 뿐이죠. 레코드를 만드는 하나의 법칙성에 꽤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면 사람의 재능에 플러스 알파가 되지 않을까 하고. 지금의 신에서, 이 음악이 어떤 스탠스로 어떻게 자리매김 할 것인가. 제 일에 대해서는 남의 일에 대해서든, 그런 것 말고는 생각한 적이 없네요. “나는 이 기분을 노래로 만들자” 같은 게 아니에요. 구축의 동기가 달라요.
Q. 이야기를 죽 들었는데요. 일단 휴식하실까요?
야마시타 타츠로 : 상관없어요. 괜찮습니다. 모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네요.(웃음)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는데. 고작 음악일 뿐이니까!!(웃음)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