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이기에 가능한 베스트 아닌 베스트

아무로 나미에 < Checkmate! >

by 황선업

제이팝의 여왕은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예상보다 이른 타이밍에 꺼낸 히든카드는 바로 합작(Collaboration), 즉 그녀가 참여했던 외부활동을 한 장의 시디에 모은 컴필레이션 작이다. 가수뿐만 아니라 디렉터로서의 고충까지 홀로 끌어안아야 했던 부담을 내려놓고, < Style > 시절부터 협력해왔던 동료 뮤지션들과의 즐거운 순간을 되새기며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명목은 모음집이지만 열성 팬이 아닌 이상 언제 어디에서 발표한 곡인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수록곡의 역사는 2003년부터 시작하며, 함께 작업한 이들 또한 인디와 오버를 넘나드는 탓이다. 많은 이들이 트랙의 신원확인에 진땀을 뺐을 듯하다. 이처럼 넓은 영역을 아우름에도 러닝타임동안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이목을 끈다. 오랜 기간 추구해 왔던 뚜렷한 음악적 방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 콘셉트의 앨범을 탄생시키고야 만 셈이다.

국내 팬들의 이목은 역시 애프터 스쿨이 참여한 신곡 'Make it happen'에 집중되어 있다. 드라마 < 미남이시네요 >를 즐겨보던 그녀의 선택으로 성사된 한일교류는 아쉽게도 생각보다 싱거운 모습이다. 자극적인 전자음과 웅장한 현악 편곡이 양국스타의 대담을 보좌하지만, 한국의 아홉 소녀들은 오히려 그 분위기에 눌리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뮤직비디오의 화려함에 비하면 오디오로서의 매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이팝 팬이라면 단연 기 센 누님들이 뭉친 'Wonder woman'에 눈이 간다. 강하다 못해 무서운 인상을 지닌 츠치야 안나(土屋アンナ), 터프한 알앤비 싱어 아이(A.I.)가 함께 서있는 장면만으로도 대중을 압도한다. '강한 여성'을 모티브로 했듯 헤비한 기타리프를 적극적으로 삽입해 숨막히는 질주감과 저돌적인 생동감을 부여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야마시타 토모히사(山下智久)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Unusual'은 전체적인 완성도보다는 비주얼과 화제성 측면에서 관심을 불러오는 신스 사운드의 곡이며,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카와바타 카나메(川畑要)와 함께 한 '#1'은 평소 이미지와는 다른 크런크-비(Crunk & B) 스타일의 업템포 사운드를 들려주며 다소 경직되어 있던 그의 변신을 유도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그 밖에 엠플로(M-flo) 멤버인 버벌(VERbal)과의 진한 파트너십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해산한 힙합 여성 듀오 하트데일즈(Heartdales)의 'Wet N wild'에서는 프로듀서로, < Cosmicolor >(2007)에 수록되었던 'Luvutomy'와 릴 웨인(Lil Wayne)을 끌어들인 솔로작 < VISIONAIR >(2011)의 대표곡 'Black out'에서는 작사가와 래퍼로 분해 그녀와의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힙합 뮤지션 지브라(Zeebra)와 함께 한 'Do what U gotta do'와 'After party'를 통해서는 좀 더 랩뮤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 또한 엿볼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음악적 소신과 어디서든 주인공을 쉽게 내주지 않는 그녀만의 본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다. 본인에게는 꾸준함에 대한 보상이며, 팬들에게는 놓쳤던 노래들을 모아들을 수 있는 뜻 깊은 선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줏대 없이 유행만을 쫓는 이들을 위한 충고라는 시선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이렇듯 존재감을 피력하며 쉽게 사라지는 이들에게 당당히 내민다. 메인스트림의 'Checkmate!'에 도달할 그녀만의 한수를.


- 수록곡 -
1. Wonder Woman feat. AI & Anna Tsuchiya *
2. Unusual feat. Yamashita Tomohisa
3. Make it happen feat. After School

4. Rock U feat. Ravex
5. Do what U gotta do feat. AI, Mummy-D, Zeebra *
6. Wet'N wild feat. Suite Chic, Heartdales
7. Do or Die feat. Yakko for Aquaris
8. Fake feat. A.I

9. #1 feat. Kaname Kawabata of Chemistry

10. Black out feat. Lil Wayne, VERbal *
11. Black diamond feat. DOUBLE
12. Luvotomy feat. m-flo *
13. After party feat. Zeebra
14. Want me, want me (Hidden Track)


2011/05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후일담 : 이 앨범은 신곡들만 빼면 거의 힙합앨범에 가깝습니다. 한창 래퍼들의 서포트 아래 음악적 영역을 진지하게 넓혀나갈 시기의 의욕작들을 한데 몰아넣은 덕분이죠. 시기도 제각각인데 이렇게 통일성 있는 앨범이 만들어지는 거 보면 그의 방향성이 꽤나 확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애프터 스쿨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는데, 정작 애프터 스쿨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좀 급이 맞는 솔로를 붙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규작과는 또 다른 테이스트가 담겨 있는, 번외작 정도로 생각하고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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