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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Oct 25. 2023

챤미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일곱 조각

그의 성장통이 타인의 결핍을 메워 나가는 순간의 기록들

* 위버스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챤미나를 봤을 때 느꼈던 호기심을 잊지 못한다. 일본에서 데뷔했음에도 묘하게 한국스러운 이름과 그것이 한일 혼혈이라는 출생 배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무엇보다 아무렇지 않게 그 정체성을 적극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 등. 나에게 있어 그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별종임과 동시에 성공을 짐작하게 하는 잠재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그렇게 음악 씬에 등장한 지도 어느덧 7년. 그동안 적지 않은 디스코그래피를 쌓아 올림과 동시에 부도칸과 요코하마 아레나 단독 공연을 완수하며 완연한 프로 뮤지션이자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는 셀러브리티로 성장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작년 한국 데뷔를 완수했고, 태연과 최예나의 일본 작품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꾸준히 양국과의 접점을 이어 나간 덕분이다. 강한 이미지와 공격적인 래핑으로 무장한 기세등등함이 그와의 첫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보통의 인상이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결핍을 트라우마를 극복할 용기로 치환하는 섬세한 면모의 아티스트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두보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의지. 두 나라에 중간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닌, 전체를 아우르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챤미나. 그런 그의 진면목을 살펴보기에 알맞은, 커리어를 관통하는 트랙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未成年/Miseinen(미성년) feat. めっし(멧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가수의 꿈을 품에 안고, 빅뱅의 ‘하루하루’를 계기로 랩과 힙합에 집중하게 된 챤미나. 본격적으로 데뷔를 모색하던 중, 그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 바로 고교생 대상 경연 프로그램인 ‘BAZOOKA!!! 고교생 랩 선수권(高校生RAP選手権)’이었다. 비록 그는 2회전에서 탈락해 조기 퇴장했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전달된 원석으로서의 매력은 그에게 ‘네리마(練馬)의 비욘세’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다.

 

이 곡은 방송 당일 공개된 데뷔 곡으로, 아이튠즈 스토어 힙합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노래다. 도발적인 표현으로 무장한 이 자기소개서가 프로그램과 맞물려 동 세대의 큰 호응을 유발한 셈. 참고로 피처링을 맡은 멧시는 같은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던 동급생으로, 군중 앞에서 노래해본 적 없는 그를 무대에 세우기 위해 제작한 곡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단 하루 동안 펼쳐 보인 포텐셜이 많은 러브콜을 불러 모았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당시 16세, 단숨에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달게 된 순간이었다.


‘Pain is Beauty’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에게 종종 “Pain is Beauty”라 말하곤 했다. 지금의 고통이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극복할 힘이 된다는 격언이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그는 아직 많이 어렸다. 그러던 중 가수 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일을 겪으며 서서히 깨닫게 된다. 결국 실패나 실연 등에서 비롯된 슬픔과 열등감이 내가 창작한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깨달음이 20세가 된 기념으로 선보인 이 ‘Pain is Beauty’에 깃들어 있다.

 

록 기조의 반주 위로 이모 랩을 버무린 곡조엔 음악을 막 좋아하기 시작한 당시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빗발쳤던 여러 무자비한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폭풍 전야의 무드가 날을 바짝 세운다. 레이블 이적과 함께 향후 전개해 나갈 활동 방향의 영점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트랙.


‘I’m a Pop’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곡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제작된 이 노래에서, 그는 ‘나는 팝이기도 하고 록이기도 하며 힙합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향한 잣대에 반감을 드러낸다. ‘나 자신은 내가 직접 정의하겠다.’는 의지는 음악가로서의 자아를 탈환하고자 하는 각성으로 이어진다.

 

주목할 지점은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한국어 가사.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출생 배경을 활용해 어느 한곳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완성하고 있다. 더불어 시종일관 무겁고 비장한 비트 속에서 벌스에 따라 흐름을 주도하는 능숙한 퍼포먼스가 ‘노력’의 재능 또한 겸비하고 있음을, 이와 함께 그의 역량이 완성 단계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작품이다.

‘Never Grow Up’

그는 노래가 ‘자신을 담는 그릇’이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과 감정이 날것으로 가사에 남겨진 경우가 많다. 특히 러브 송에서 그러한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대표 곡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을 예시로 들 만하다.


이별 후에도 후회와 미련을 삼키며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을 라틴 팝의 처연한 무드로 그려내는 이 곡은, ‘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결국 그것도 나 자신’이라는 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참고로 노래 속 상대가 이전에 발표한 ‘LADY’와 ‘OVER’, ‘CHOCOLATE’과 같은 인물이라고 밝혀 주목받은 바 있으며, 보컬의 지분을 늘린 구성에서는 ‘래퍼’에서 벗어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서서히 거듭나고 있는 그를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美人/Bijin(미인)’

데뷔했을 당시 감내해야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외모에 대한 악플이었다. 이로 인한 마음고생으로 원치 않게 살이 빠졌는데, 이것을 보고 예뻐졌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기괴하게 느껴졌다고. “못생긴 여자가 노래하고 자빠졌네(醜いブスが歌ってんじゃないよ)”라는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당시의 경험은 루키즘을 비판함과 동시에 세상이 이야기하는 ‘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나갈 것을 권유하는 이 곡의 주제로 분하고 있다.

 

강한 색감의 이미지와 스타일링, 특히나 후반부에 삽입된 자살 장면으로 인해 뮤직비디오가 이슈화되기도 했으며, 단독 공연 ‘AREA OF DIAMOND’에서는 메이크업을 지우는 연출을 가미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층 신경 써 전달하고자 했다. 어찌 보면 과거의 고통을 긍정적인 메시지로 승화하는 에고가 앞서 이야기했던 ‘Pain is Beauty’의 태도와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을 터. 여기에 자전적인 내용으로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냈던 기존 작법에서 벗어나, 명확히 청취자를 의식하고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 이 곡이 특별대우 받아야 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여러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 마지막의 절규에 가까운 보컬은 그야말로 압권.


‘Don’t go (feat. ASH ISLAND)’

그의 아티스트 활동은 다시금 새 국면을 맞는다. 더욱 진정성 있게 음악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감싼 장식을 완전히 걷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정규작 ‘Naked’는 K-팝에도 J-팝에도 팝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그만이 가능한 포지셔닝을 표방하며 본 적 없는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Don’t go’는 한글과 영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한국 데뷔 싱글로, 역동적인 리듬과 레트로한 선율의 조합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일면을 선사하는 노래다. 과거 자신이 노래했던 것들을 그 역시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애쉬 아일랜드에게 협업을 요청했다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이들이 빚어내는 시너지도 흥미롭지만, 일본어와는 사뭇 다른 한국어 가창의 뉘앙스 역시 청취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참고로 활동 당시의 파란색 머리는 태극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I’m Not OK’

‘Naked’ 앨범 서두에선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Good’), 그것은 사실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서였음을 그는 이 노래를 통해 고백한다. 최근 다시금 순풍을 타고 있는 팝 펑크의 기운을 빌어, 2000년대의 에이브릴 라빈에 빙의한 듯한 목소리로 ‘나는 너무나 불안정하지만 그렇기에 나로 있을 수 있고,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으며, 이 모습이 지금의 챤미나에게 어울린다.’고 외친다. 부정적인 감정은 누구나 맞닥뜨리는 것이며,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 세상에 퍼뜨려 나가는 선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커리어의 반석이라 말하는 그. OK하지 않은 상태가 본인에겐 OK라는 역설, 상처를 입더라도 포장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마주 대하고자 하는 용기. 그것들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갈지,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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