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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Nov 09. 2023

아도(Ado), 뉴타입의 출현

‘보카로네이티브 세대’의 메인스트림 정복기

* 위버스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9월, 일본 대중음악사에 새겨질 거대한 기록 하나가 갑작스레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아도(Ado) 자신의 전국 투어인 ‘マーズ(MARS)’의 마지막 날 발표한, 내년 4월 도쿄 국립경기장 단독 공연 개최 소식이었다. 역사를 되짚어봐도 이 거대한 무대를 밟은 것은 스맙(SMAP)이나 드림스 컴 트루, 아라시, 야자와 에이키치 등 단 7팀뿐. 이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게 될 줄은, 새로운 10년을 맞아들일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여성 솔로 최초라는 의미까지 더해낸 비교 불가의 영광. 아도는 3년 반 만에 씬의 판도와 고정관념을 모조리 뒤엎으며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의 데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보카로네이티브 세대’라는 용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츠네 미쿠’로 촉발된 보컬로이드‧우타이테 기반의 놀이터 ‘니코니코도가(ニコニコ動画)’가 거대한 서브컬처 마켓으로 거듭난 지도 어느덧 10여 년. 오늘날 많은 10대는 대중음악의 문법을 거부하고 이곳에서 공유되는 콘텐츠들을 인터랙티브하게 즐긴다. 아도 역시 일반적인 J-팝과의 큰 접촉 없이 우타이테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자신감이 없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싫은, 자신은 분명 니트족이 될 것이라며 이르게도 사회생활을 단념하고 있던 자기혐오로 점철된 아이.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던 것이 바로 우타이테였다. 얼굴이나 본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노래 하나로만 자신을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17년 첫 작품 투고로 활동을 시작, 2020년 유명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인 존-야키토리(jon-YAKITORY)의 작품에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シカバネーゼ/Shikabanēze’가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 1위에 오르며 조금씩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익명성이 높은 우타이테라는 스타일을 선택한 것도, 본인에게 친숙했기 때문인가요?

Ado : 원래 저는 공부도 운동도 서툴고, 내 자신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곤 해서. 아무것도 자신이 없고, 반에서 특별히 인기가 있다거나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쌓여 꽤 큰 콤플렉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그늘지고 그늘지고 그늘진 사람이라고 할까요?(웃음) 그래서 얼굴을 보여주고 활동하는 건 무리라고 처음부터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우타이테들은 얼굴도 본명도 밝히지 않고, 어디서 사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인터넷상에서는 확실히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이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죠. 그 자체가 저에게는 반짝반짝 빛나 보였고, 동시에 여기라면 저도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10월 19일, ‘Real Sound’ 인터뷰 중


이 당시는 요네즈 켄시의 히트를 계기로 대형 레이블들이 보컬로이드 씬에 숨어 있는 원석 찾기에 바쁠 시기였으며, 때마침 그의 재능 역시 레이더망에 걸려들게 되었다. 그렇게 2020년 10월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이하 보카로P)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슈도 작사‧작곡의 ‘うっせぇわ/Usseewa(시끄러워)’로 메이저 데뷔를 했다. 10대들의 정서를 대변한 과격한 가사가 화제를 모으며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듬해 3월에 빌보드 재팬 차트 스트리밍 누계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속도로는 역대 여섯 번째이자 솔로로서는 최연소 기록. 시대의 변혁을 선언하는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이 히트가 더욱 이례적이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서브컬처의 정서를 훼손 없이 가져와 끌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보카로P‧우타이테 출신들이 메이저 시장으로 건너왔지만, 어느 정도 대중과의 타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름을 바꾸거나, 보컬리스트를 동반한 유닛 형태로 데뷔하거나, 음악 스타일이나 가사를 ‘대중음악의 문법’에 맞춰 순화한다거나. 이 곡엔 이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지향한 셈. 이 전략엔 대중음악 씬이 팬덤 중심의 문화로 무게중심을 옮겨 가는 경향과 이 서브컬처 씬의 세력이 세상에 파급을 일으킬 만한 규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레이블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노래의 가사가 그토록 논란을 부추겼던 건 전적으로 그의 가창력 덕분이다. 소절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캐릭터를 바꾸는 섬세한 표현력과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폭넓은 보컬 운용, 여기에 성량과 힘으로 듣는 이를 압도하는 피지컬까지. 사회로부터 벗어나 온라인으로 피신한 그가 패배감 그대로의 마음으로 ‘시끄럽다’며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고하는 그 모습 앞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모험과도 같았던 과감한 한 수는 단숨에 그를 주목받는 신예로 만들었으며, ‘うっせぇわ/Usseewa’라는 단어는 여러 사회적 논의를 낳음과 동시에 그해 유행어 대상 톱 텐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순풍을 타고 완성된 첫 정규작 ‘狂言/Kyogen(광언)’(2022)은 주류라는 영토 내에 자신들의 영역이 존재함을 공식 선언하는 작품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모든 수록 곡을 보카로P로부터 공수받은 러닝타임은 이 씬이 얼마나 큰 다양성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서사’다. 스리와 미유항, 히이라기 키라이, 테니오하, 네루, 여기에 돔 공연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마후마후까지. 그야말로 올스타 총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인업. 이들이 모여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뛰어난 페르소나에 투영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이 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앨범’이 현실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그 누구와도 비교 불가한 아도의 ‘노래’가 있다. EDM과 K-팝 사운드를 주로 구사하는 기가와 테디로이드의 합작 ‘踊/Odo(춤)’에선 리드미컬한 반주에 맞서 능수능란한 강약 조절로 성공적인 밀고 당기기를 구현하며, 혼 세션이 가세해 큰 스케일을 구현하는 ‘阿修羅ちゃん/Ashura-chan(아수라쨩)’에서는 곡의 속도감에 지지 않는 워딩 구사와 적재적소에 꽂아 넣는 샤우팅이 곡의 카타르시스를 배가한다.

 

칠(Chill)한 분위기의 신스팝 트랙 ‘花火/Hanabi(불꽃놀이)’에서는 힘을 살짝 빼고 호흡을 고르며 전체 흐름을 조망하고, J-팝의 문법이 스며 있는 ‘会いたくて/아이타쿠테(보고 싶어서)’에서는 기승전결을 고려해 감정의 흐름을 비교적 천천히 고조시켜 나간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트랙이건만, 그는 자유자재로 표정을 바꾸며 14인의 주인공으로 분해 작곡자들이 의도한 방향성을 120% 이상 구현해낸다. 이러니 어떤 프로듀서가 그와의 작업을 거절하겠는가. 오히려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초반 화제몰이로 생겨난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그에 대한 지지로 환원하기엔 결정타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앨범의 내용물은 참여 스태프가 스태프인 만큼 다소 마니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이에 레이블은 거리감을 좁힐 조커를 재빨리 준비한다. 그것이 바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 여기서 그는 등장인물인 우타의 노래 목소리를 담당하며 ‘J-팝 가수로서의 아도’를 부각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국민적인 작품에 주인공 격으로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전체 상영 시간 중 뮤지컬 장면을 포함해 20여 분이 그의 노래 장면에 할애되어 있다. OST는 일렉트로니카 장인 나카타 야스타카와 미세스 그린 애플의 프런트 퍼슨 오모리 모토키, 멀티테이너의 신성 바운디, 특유의 서정적인 넘버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하타 모토히로 등이 참여했다. 이번엔 메이저 씬의 올스타가 그의 서포터를 자처해 새로운 음악 풍경을 그려낸다. 그야말로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물량 공세가 펼쳐진 셈. 결국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함께 그의 이름이 전방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해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新時代/New Genesis(신시대)’가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할 뿐 아니라 연말 음악 방송인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하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공평한 눈도장을 찍기에 이른다. 이렇게 그의 보편적인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는 두 영역의 무기를 능숙히 휘두를 수 있는 ‘이도류’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이도류’ 기반의 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원피스’ 이후 공개된 싱글을 기준으로 설명해보자. 치노조와 피노키오피, 기가와 테디로이드 등이 참여한 서브컬처 사이드, 시이나 링고와 바운디, 비즈 등이 힘을 보탠 메이저 사이드로 구분 가능하다. 워낙에 색이 명확하기에 듣는 입장으로는 참으로 흥미로울 따름. 전자는 각 보카로P의 정체성에 어떤 해석을 더하고 있는지, 후자는 기존 아티스트가 장기간에 걸쳐 확립해 온 정체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각각 쏠쏠하다.

지난 8월에는 르세라핌의 ‘UNFORGIVEN (Japanese ver.)’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의미 있는 협업을 완수했다. 평소 에스파나 아이브, 케플러를 즐겨 듣고, 함께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르세라핌의 ‘자컨’을 챙겨보고 자신도 ‘피어나’라고 언급할 만큼, K-팝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이기에 더욱 뜻깊은 참여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 중인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 2기 오프닝으로 ‘クラクラ/Kurakura(어질어질)’가 타이업되는 등 바다 건너에서도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내 모두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SNS를 통한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자기혐오에 빠져들기 쉬운 세대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아도의 성공은 좋은 사례이다.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일반인들에겐 좀처럼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보컬로이드와 우타이테의 매력을 알게끔 해주었으며, 기존 지지층에겐 언제까지나 비주류일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들의 영웅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 기반엔 차곡차곡 구축되어 온 일본 대중문화의 역사가 있다. ‘니코니코도가’라는 플랫폼과 여러 아티스트를 통해 검증된 신비주의 프로모션 전략. 여기에 ‘원피스’라는 매력적인 IP와 거대한 타이업 시장이 장기간에 걸쳐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그의 메인스트림 정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례는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K-팝과는 반대급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역시 이러한 익명성을 앞세운 넷 기반의 아티스트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양국 10대가 겪고 있는 타인과의 비교, 무한 경쟁 등의 상황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밴드 달의하루의 ‘염라(Karma)’가 2,5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우타이테 라온과 다즈비는 일본 레이블과 계약하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중이다. 더불어 버추얼 유튜버로 구성된 이세계아이돌이 멜론 최초 명예의 전당 4회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등, 이미 조금씩 그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다 건너 보카로네이티브 세대가 음악 씬에 던진 충격적이고도 성공적인 파문, 그 나비효과는 이미 이곳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도의 등장과 성공, 오히려 우리나라에 더욱 거센 폭풍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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