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공연 앞둔 킹 누의 음악세계를 알 수 있는 여섯 곡의 노래
* 위버스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언뜻 듣기에 그들의 음악은 낯설다. 여러 장르를 융합한 사운드와 기존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구성, 팝의 경계를 부수는 넓디넓은 바운더리까지. 그럼에도 청취가 거듭될수록 중독적인 매력이 온몸의 신경으로 빠르게 퍼져 지그시 눌러앉는다. 기존 J-팝의 양식을 배제한 일본 음악 만들기에 골몰해온 그들의 커리어. 온갖 문화가 뒤섞인 도쿄의 풍경을 담아낸 듯한 이들의 얼룩덜룩한 소리 덩어리들은, 질서가 아닌 혼돈 속에서 독자적인 대중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자칭 ‘도쿄 뉴 믹스처 스타일’. 자신들에게 필요한 요소들은 제한 없이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팝’이라는 카테고리로 마감질하는 역량이 발군이기에 붙일 수 있는 신조어일 것이다. 첼로 전공자임과 동시에 킹 누의 전신인 서버 빈치(Srv.Vinci)를 발족시킨 츠네타 다이키, 댄서를 지망함과 동시에 블랙 뮤직 애호가인 세키 유우, 재즈 세션으로 활동했던 아라이 카즈키, J-팝을 즐겨 듣고 불렀던 이구치 사토루까지. 각기 다른 취향의 멤버들이 일으키는 화학작용이 고차원적인 하이브리드 뮤직의 근간이 된다고 할 수 있을 터. 아래 소개할 여섯 곡은, 그 ‘혼합물’을 새로운 개념의 팝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고군분투의 여정이라 할 만하다.
‘Tokyo Rendez-Vous’
그들이 제시하는 ‘도쿄 뉴 믹스처 스타일’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곡이다. 첫 앨범 ‘Tokyo Rendez-Vous’는 그룹의 전신인 서버 빈치(Srv.Vinci)만의 전위적이고도 실험적인 면모가 남아 있어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럼에도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J-팝을 모색했던 팀의 기개만큼은 동시대의 어떤 팀과 비교하더라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각 멤버들의 상반된 취향이 빚어낸 ‘생경함’을 오히려 새 시대의 대중성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아이러니한 면모. 그 위풍당당한 첫 발걸음에 대중과 평단 할 것 없이 모두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첫 곡인 ‘Tokyo Rendez-Vous’는 그들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힙합의 그루브함과 록의 통렬함이 뒤섞이는 가운데 츠네타 다이키와 이구치 사토루가 빚어내는 보컬 하모니의 난장은 글로벌 트렌드와 J-팝의 그사이 어딘가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있는 광경을 연출한다. 특히나 전 세계의 컬처가 뒤섞여 어지럽게 돌아가는 도쿄의 풍경을 묘사한 가사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도쿄 뉴 믹스처 스타일’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과장 하나 없이 2010년대 데뷔한 어떤 팀보다도 충격적이었던, ‘록스타’까지의 티켓을 미리 발권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던 등장이었다.
‘Flash!!!’
츠네타 다이키는 한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킹 누를 상징하는 곡”이라 언급한 바 있다. 캐치한 선율의 후렴을 기반으로 프로디지가 떠오를 법한 신시사이저 라인, 여기에 펑키한 기타 리프와 중독적인 코러스 라인까지. 이들이 구사하는 믹스처 팝 특유의 균형감은 이 곡을 거치며 비로소 그 형태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두 번째 앨범 ‘Sympa’를 앞두고 선보인 이 싱글은 팀의 정체성이 확고히 완성되었음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작품이다. 킹 누라는 음악 집단의 작법이 확립되었음 알림과 동시에 특유의 저돌적인 면모까지 각인시킨, 메이저 데뷔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했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The hole’
처음 접했을 때는 낯설지만, 거듭 들으며 이제까지 경험한 적 없는 대중성에 굴복하게 되는 과정. 그것이 킹 누의 팬이 되어가는 일반적인 수순이 아닐까 싶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결국 그들의 지향점이 ‘J-팝’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은 그들이 생각하는 ‘상투적이고도 통념적인 J-팝’의 핵심을 끌어와 자신들의 양식에 맞춰 재해석한 트랙으로, 네 멤버가 자국의 일반적인 정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의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실제로 츠네타 다이키 본인이 미스터 칠드런이나 사잔 올 스타즈, 우타다 히카루, 시이나 링고, 래드윔프스 등의 곡을 들으며 생겨난 영감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라 언급하기도. 그만큼 그들의 곡 중 가장 보편적인 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공간감을 담아낸 퍼커션과 현악 세션에 묻어나오는 클래시컬함에서 결국 그 아이덴티티를 들켜버리고 마는, 참으로 그들다운 노래.
‘Hakujitsu (白日)’
현 시점 4.6억 회의 유튜브 조회 수와 더불어 일본레코드협회가 인정한 100만 다운로드와 5억 스트리밍 돌파의 기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두 작품 중 하나인, 명실상부 이들의 최고 히트 곡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노래지만, 한편으로는 그룹에게 고민과 과제의 발단이 된 양날의 검과 같은 트랙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왜 양날의 검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언급할 법하다. 우선 작법 측면인데, 서정성과 비장미를 뒤섞어 구현한 미디엄 템포 기반의 리드미컬함은 그들이 이제껏 해왔던 것과는 살짝 다른 결의 팝 센스를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싱글만 챙겨 듣던 이들이라면 그 변화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을 터. 그럼에도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白日’가 마치 이들의 정석적인 스타일 마냥 굳혀지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팀의 정체성이 오해받으며 약간의 허들에 부딪힌 시기이기도 했다. 앨범 ‘Ceremony’ 역시 이 한 곡에 전체 흐름이 끌려가 버리는 탓에 어떻게 트랙 배치를 해야 할지 고심했을 정도였다고.
또 하나는 ‘타이업’에 대한 회의감이다. 드라마 편성에 따른 부족한 작업 기간으로 인해 멤버 각자의 개성을 녹여내는 시간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레코딩 스튜디오 안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제작 방식을 택한 것. 이후 주제가와 CM 송 의뢰가 쇄도하면서 팀의 창작적 의도를 일부 포기하고 ‘규격에 맞춰 기계적으로 쫓겨 가며’ 해야 하는 녹음이 연달아 이어졌다.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져 가는 사이에 팀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함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세상에 ‘내뱉어지는’ 프로세스에 대한 번아웃과 거부감. 이는 이후 다시금 ‘무명’으로서의 자유로움을 추구하고자 한 4집 ‘THE GREATEST UNKNOWN’으로의 추진력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쯤 되면 정말 여러모로 애증의 곡이라 부를 법도.
‘Hikoutei (飛行艇)’
앨범으로서의 유기성보다는 싱글들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진 탓에 과연 풀 렝스로서의 의미가 있는가 자문했다는 세 번째 정규작 ‘Ceremony’. 그 안에서 이 작품의 의의를 찾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이 곡의 탄생을 첫 손가락에 꼽고 싶다. 우드스톡에서 울려 퍼질 법한 사운드와 규모감을 연상하며 만들었다는 츠네타 다이키의 이야기처럼, ‘飛行艇’의 러닝타임은 영미권의 록 밴드들이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스케일감을 자신들에게 장착하는 과정 그 자체다. 심플한 리듬감과 파워풀한 사운드가 일으키는 고양감이 대중들을 본능에 눈뜨게 만들며, 이를 통해 스스로 팀을 자신들이 동경하던 ‘스타디움 밴드’로서 격상시키기에 이른다. ‘라이브’에서의 극적인 진화를 이뤄내며 지금과 같은 돔 투어 밴드로서의 자격을 자가 증명한 원동력, 그 중심에는 바로 이 노래가 있다.
‘SPECIALZ’
애니메이션 ‘주술회전’과의 인연은 2021년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라이브 시장으로 소통 창구가 막혀버린 아티스트들은 영상 작품과의 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의 론칭과 이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 송출하는 OTT의 보급은 타이업의 영향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주제가 맛집으로 소문난 팀에게 의뢰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극장판 주술회전 0’ 주제가와 엔딩 테마로 각각 기용된 ‘一途’와 ‘逆夢’는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그들의 인기를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었던 반석임이 틀림없었다.
이후 ‘주술회전’과의 인연을 이어간 이 곡은 세계적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림과 동시에, 타이업의 제작 주도권을 완전히 자신들에게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확실히 이 노래에는 ‘주제가’라는 용도에 관계없이 우선 자신들의 자유로움을 최대한으로 풀어놓고자 한 의도가 감지된다. 여느 소프라노의 노래를 따서 만든 듯한 코러스 리프를 기반으로, 리얼 세션을 건조하게 반영한 차가운 리듬 위에 왜인지 모르게 납득되는 선율의 파퓰러함은 어느 때보다도 날선 이들의 창작력이 반영되어 있는 대목이다.
밴드라는 포맷이나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대중성에서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개념의 팝’을 만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자신감 있게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제 곡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이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언더그라운드 뮤직에서 J-팝으로 본의 아니게 정착해 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자 한 네 번째 정규작 ‘THE GREATEST UNKNOWN’의 방향성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트랙. 밴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1억 스트리밍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해외에서 듣고 있는 일본 음악 인기의 지표이기도 한 ‘빌보드 재팬’의 ‘Global Japan Songs Excl. Japan’ 차트에서는 12월 셋째 주부터 요아소비의 ‘アイドル’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정말 지금의 킹 누는 ‘무적’ 외에 달리 붙일 만한 호칭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