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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Feb 25. 2024

서로의 꿈을 덧그렸던 순간

요아소비(YOASOBI) 내한공연

*지난 12월 IZM에 기고했던 라이브레포트를 브런치에 재업로드하는 건입니다.



갑작스레 한파가 찾아온 12월 셋째 주 주말,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을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올 한 해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일본 음악 붐, 그 핵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요아소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소설을 음악으로 만드는 그룹'이라는 콘셉트로 데뷔한 이 2인조 유닛은, 올해 원작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숏폼 챌린지에 힘입어 수많은 글로벌 팬을 끌어모은 'アイドル(Idol)'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지라, 유튜브 Korea Top 100 Weekly에서 JPOP 최초로 1위에 등극하는가 하면 2023년 한국 유튜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 차트에선 쟁쟁한 KPOP 아티스트를 제치고 6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는 이마세의 'Night dancer'가 일본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멜론 Top 100에 오른 것과 비견될 만한 성적이었으며, 문화 전반에 일으킨 파급력은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질 만큼 굉장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미국과 홍콩에서 각각 열린 페스티벌 < Heads in the Clouds LA >와 < Clockenflap >, 그리고 콜드플레이의 오프닝으로 나섰던 도쿄돔 무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는 팀의 첫 해외 단독공연 그 이틀 차. 2023년 가장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티가 역력한 공연장에서, 나 또한 곧 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 많은 관객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공연 시간인 6시에서 몇 분 지나지 않아 장내가 암전, 용과 호랑이를 테마로 한 영상과 레이저가 무대를 수놓은 후 밴드 멤버들에 이어 이쿠라와 아야세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쿠라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후 이어서 “We are YOASOBI!”라고 외침과 동시에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夜に駆ける(밤을 달리다)'로 단숨에 공연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워밍업 없는 본 운동, 준비단계 없는 클라이맥스라고 할까. “Everybody Stand Up!”이라는 이쿠라의 한마디에 장내는 순식간에 스탠딩 공연으로 전환, 뒤에서 아야세가 박수를 유도하며 능숙하게 관객을 리드해 나갔다. 해외 첫 단독공연이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이 전혀 페널티가 되지 않다는 듯 프로의식으로 무장된 모습이었다.


이어 '祝福(축복)'과 '三原色(삼원색)'으로 팀의 다이나미즘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곡마다 다른 영상을 재생하며 특유의 세계관에 깊이를 더했고, 좀 더 집중해 듣다 보니 레코딩과 비교해 훨씬 '록 음악' 같은 편곡이 귀에 들어왔다. 특히 파워풀한 드러밍이 전체적인 사운드의 질감을 결정하는 느낌이었는데. 홍콩 < Clockenflap > 페스티벌 부터 합류한 타츠야 아마노의 영향으로 느껴졌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크로스페이스가 메탈코어를 지향하는 데다가,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요아소비의 라이브에도 고스란히 유지하는 모양새였다. 아야세는 '三原色(삼원색)' 시작과 함께 한국어로 “소리 질러!”라고 외치며 함성을 이끌어 냈고, 관객들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며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래가 끝난 후 각자 한국어로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온 요아소비입니다. 저는 이쿠라입니다”, “저는 아야세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한 후, 일본어로 MC를 이어 나갔다. 이번이 해외에서의 첫 단독공연이 된다는 것과, 자신들은 소설을 음악으로 만드는 그룹이니 노래가 맘에 들었다면 꼭 원작을 읽어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딱 필요한 말만 명료하게 전달하는 이쿠라의 멘트는 불필요한 틈 없이 상기된 분위기를 쭉 이끌어나가는 일등 공신이었다. 그간 경험이 많이 쌓인 모양인지, 공백을 메워나가는 진행 솜씨가 제법 수준급이었다.


키보드와 코러스를 맡고 있는 미소하기자쿠로가 중앙 무대로 올라가 퍼포먼스를 선보인 'セブンティーン(세븐틴)' 이후 살짝 기조를 바꿔 요아소비만의 그루브가 전면에 부각된 'ミスター(미스터)'와 게임 튠을 연상케하는 신스팝 장르의 신곡 'Biri-Biri'가 연달아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관객들의 스마트폰의 라이트가 환상적인 무대연출을 담당했던 '優しい箒星(상냥한 혜성)'는 처음으로 이쿠라의 보컬을 비롯한 개개인의 플레이가 부각된 시간이었다. 후반부에 배치된 'もう少しだけ(조금만 더)'와 'たぶん(아마도)'과 같이 '노래'에 집중한 트랙들은 꽉 조여져 있는 긴장의 끈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했으며, 음원과 차이 없이 유려하게 보컬을 소화해 내는 이쿠라의 가창력은 이런 곡들에서 더욱 돋보였다.



해외에서의 첫 단독공연인 만큼 그 나라의 말로 소통하려는 멤버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각자 한국어로 간단한 편지를 써왔는데, 아야세는 “여러분을 만나서 기뻐요. 응원해 주는 여러분들의 소리가 일본에서도 들립니다. 정말 고맙고, 우리랑 같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이쿠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써왔습니다. SNS에서도 실제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해외 공연이 하나의 꿈이 되었는데요. 이렇게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요아소비를 만나주시고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꿈을 같이 이뤄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고, 곧바로 'あの夢をなぞって(그 꿈을 덧그리며)'로 공연이 이어졌다.


큰 공연장에서 무반주로 부른 첫 소절이 왠지 모를 울림을 주는 와중에,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는 가사 덕분인지 팬들에 대한 마음, 그리고 해외 공연 성사에 대한 감사함이 가장 강하게 묻어나는 듯했다. 관객들도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을 통해 그 감정을 함께 겹쳐나갔고, 그야말로 서로의 꿈이 실현된 아름다운 광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공연은 '怪物(괴물)'와 '群青(군청)'을 거치며 절정으로 나아갔고, 빈 공간이 있을 새라 이를 충만한 행복감으로 채워 낸 'アドベンチャー(Adventure)'를 마지막으로 본 공연을 마무리했다. 물론 아무도 이것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레퍼토리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앵콜 요청 후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도입부. 올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アイドル(Idol)'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쿠라는 일본어로 “앵콜 고맙습니다! 다음이 진짜 마지막 곡이에요.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 후, 한국어로 “사랑해요. 코리아!”라고 외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신들린 듯한 팀의 퍼포먼스, 있는 힘을 다해 뿜어내는 관객들의 열기가 가장 이상적인 마무리를 향해가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90분. 성실하게, 또 마음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낸 이들은 끝까지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쉽게 가시지 않을 여운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러닝타임의 속도감이 굉장한 공연이었다. 조금의 틈을 주지 않고 텐션을 이어 나가는 구성은 딴생각할 여유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 곡 배치 또한 '夜に駆ける(밤을 달리다)'로 처음부터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킨 다음 고자극의 사운드로 일관하며 쇼츠를 보는 것 마냥 도파민을 분출하게 했다. MC 또한 소리의 공백 없이 타이트하게 진행하며 최소한의 시간을 할애하는 등, 마치 1.25배속으로 영상을 빠르게 돌려보는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다.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Z세대를 타깃으로 한 전략인가 싶을 정도로, 이들의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한 마리의 경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한 속도감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완벽한 준비와 뛰어난 멤버들의 라이브 역량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사운드 전체를 지휘하는 아야세와 탄탄한 연주력을 겸비한 밴드 멤버들, 여기에 호흡이나 리듬에 있어 가히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쿠라의 가창력은 이들의 인기가 단순히 트렌드나 플랫폼에만 기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원작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요아소비지만, 그러한 곡들로 자신들만의 '오리지널'을 구축하고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준 내한 공연. 그들의 꿈에 관객들의 꿈이 덧그려진 그 순간의 기억은, 축복으로서 오랜 기간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슬로건에 적혀 있던 내용처럼, 정말 요아소비는 '완벽한 궁극의 아이돌'이었다.


사진제공 : 리벳(LIVET), Kato Shumpei(카토 슘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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