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섬머소닉/스위트 러브 샤워 후기
펜타포트, 섬머소닉(오사카), 스위트 러브 샤워. 2023년의 여름도 그렇게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 이후 오랜만에 일본의 여름 페스티벌에 참석했다는 것이 감개무량. 극히 일부만으로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느껴졌던 것은 양국 모두 분위기가 굉장히 캐주얼해졌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보기 힘들 수도 있는 레전더리 헤드라이너에 집중하기 보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러 가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보다는 최애 아티스트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풍경이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 같다고 할까. 결국 작년 펜타포트에서 느꼈던 약간의 위화감이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을 올해 확인하게 된 셈이다.
스위트 러브 샤워에서 야바이티셔츠야상의 코야마가 “요즘 페스티벌 돌면서 느끼는 건데, 코로나 기간 동안 너네 노는 법을 좀 까먹은 것 같다. 그럴 때일 수록 아는 사람들이 가르쳐 주라고!” 라는 코멘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티스트 역시 이전에 비해 조금은 차분해진 분위기가 감지되는 듯, 이전보다 떼창이나 박수, 서클 핏을 유도하는 제스처나 멘트가 조금 더 잦아지지 않았나 싶다. 섬머소닉은 그렇다 쳐도, 스위트 러브 샤워와 같은 로컬 록페도 이전만큼의 리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신규 유입층이 늘어났거나, 참가한 이들의 성향이 바뀌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과연 몇 년 지나면 이 분위기가 이전처럼 회복이 될까? 펜타포트는 작년과 올해의 흐름이 이어질 것 같지만, 일본은 워낙에 마니아들이 많은 만큼 향후의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더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올해 감지되었던 경향. 특히 관객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컨디션에 초점이 맞춰진 의견이 많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건 아마도 섬머소닉 도쿄에서 있었던 뉴진스의 퍼포먼스가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은데... 온난화로 인해 점점 무더워지는 한여름 땡볕에서 3~40분 동안 춤과 노래를 끊임 없이 해내야 하는 KPOP 아티스트들은 밴드 포맷에 비해 상대적으로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가 열사병으로 인해 쓰러지는 관객들도 속출. 더위가 사그러드는 9월이나, 적어도 한낮 공연을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트윗을 특히 올해 많이 본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 더위가 여름의 페스티벌을 완성하는 하나의 퍼즐조각 같은 느낌이어서... 그래도 건강과 직결된 문제니 논의될 여지는 충분히 있겠다는 것이 중론이다.
각 페스티벌의 운영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올해 펜타포트의 굿즈는 종류는 많지 않아도 좋은 디자인과 퀄리티로 구매욕을 자극했으며,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주문 시스템은 사전에 욕을 먹긴 했으나 막상 현장에서는 굳이 줄 설 필요가 없어 편리하게 음식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공연 외 즐길거리가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웠으며, 결제를 더디게 만드는 KB pay 단일 화폐 사용, 맥주나 물 구매가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옥에티로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
섬머소닉은 초반 굿즈 구매에 너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느낌. 뭐 아쉬운 사람이 일찍 가야지 싶긴 하지만, 오사카의 경우 대중교통만으로는 닿기가 어려워서... 10시 반 부터 줄을 섰는데 거의 1시간 반을 기다린 듯. 스위트 러브 샤워의 경우 사전구매가 가능해 미리 앱으로 결제하고 현장에 가서 줄 없이 바로 수령이 가능했는데, 섬머소닉 정도 되면 충분히 사전 구매 시스템 도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부분이었다. 뭐 플래티넘 티켓이랑 차등을 두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고. 그 외에 현장에서 실시되던 페인팅, 충분했던 푸드코트나 도쿄에 비해 짧은 동선으로 다양한 아티스트를 보기 용이하다는 점 등이 맘에 들었다.
스위트 러브 샤워에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은 맥주의 퀄리티. 삿포로 쿠로라벨을 취급하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푸어링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정말 제대로 따라주는 모습이었다. 재사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얇은 두께의 잔이라 입에 닿는 촉감이 좋고, 야외에서 서빙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워 첫 모금에 이미 반잔 이상 마셔버리게 되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페스티벌 맥주였다. 항상 펜타포트의 카스에 불만이 많은데, 같은 라거라 하더라도 특수제작된 탭과 따라주는 사람의 기술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다만 메인무대 근처에 푸드코트나 음료 부스가 너무 없었다. 아티스트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포카리스웨트나 맥주 부스로 몰리니 구매까지 기본 30분 이상이 소요. 메인 근처에 있는 프로모션 부스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식음료 부스를 확대하는 것이 편의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셔틀버스 입장권을 보여주는 웹 페이지가 당일 서버다운 되었었던 것도 조금 당황했던 부분. 물론 이름을 확인해 탑승이 가능했지만,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시간이 더 소요될 수 밖에 없었기에... 그 외에는 역시나 크게 불편함이 없었던 페스티벌이었다. 특히 굿즈 사전구매 시스템이 정말 편했다.
펜타포트 Best 3 : 엘르가든(ELLEGARDEN) / 박소은 / 메써드(Method)
엘르가든의 ‘Make a Wish’를 떼창한 뒤 거대한 서클에 몸을 던지던 그 순간은 누가 뭐래도 올해 펜타포트의 하이라이트였다. 15년만의 귀환이라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듯, 그들은 전성기를 웃도는 에너지와 타이트한 세트리스트를 통해 자신들은 여전함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80여분간 21곡을 쏟아 부으며 그 하드한 펜타포트의 관객들을 나가떨어지게 한 펑크 록 영웅들의 떡밥 회수 대 서사시. 여기에 공연 종료 직후 10월 단독 내한까지 결정되었으니, 그야말로 기승전결이 완벽한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의외로 큰 무대가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이 박소은의 무대. 야외에서의 공연이 신의 한 수였다. 지붕에 막혀 뻗어나가지 못하던 폭발력이 이윽고 그 잠재력을 맘껏 날뛰었다고 할까. 당연히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도, ‘말리부 오렌지’도 너무 좋아하는 나지만, 이 날 진짜 힘을 발휘한 트랙들은 ‘2017’, ‘Whiskey n Whiskey’나 ‘슬리퍼’ 같은 강렬한 업템포였다. ‘이 정도면 다음에 메인 가도 될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관객 분위기 역시 끝내줬던, 예상치 못했던 아티스트의 일면을 발견했던 뜻 깊었던 라이브.
나는 왠만하면 슬램 존을 찾아 함께 몸을 부대끼며 노는 편이다. 그러려고 록 페스티벌을 가는 거니까. 그렇게 섞여 놀다보면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른바 무아지경의 상태다. 오로지 그 순간에 심취해 지금 말고는 모든 것을 잠시 잊게 되는 마취의 순간들을 항상 기다리곤 하는데, 사실 최근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제대로 된 헤비니스 뮤직을 들려주었던 메써드의 무대는, 정말 간만에 나를 무의식의 경지에 데려다 준 고마운 시간으로 나에게 남아 있다. 오로지 나와 음악과 관객들만 있었던 그 순간, 록 페스티벌만의 뜨거움에 정말 쓰러져 버릴 것 같았던 순간. 정말 내가 이 곳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의 답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었던 퍼포먼스였다.
섬머소닉 Best 3 : 죠오바치(女王蜂) / 즛토마요나카데이이노니.(ずっと真夜中でいいのに。) / 메이지 피터스(Maisie Peters)
2017년에 록 인 재팬에서 죠오바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독특한 콘셉트로 이미 당시에도 정평이 나 있던 상태였지만, 개인적으론 왠지 모르게 음악적으로 와닿지가 않았던 것이 사실. 그렇게 심드렁하게 후반부 20여분를 관람했드랬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 완벽한 진화를 구현해내고 있었다. 러닝타임 동안 마치 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듯 치밀하게 짜여진 연주와 노래, MC와 각종 제스처 등. 정말 애드립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것 같은 그 준비성으로 구현되는 유일무이한 정체성이 대중과의 접점을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올 초 선보인 앨범에서도 그 성장세가 체감되기는 했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도 난해하게 여겨질 콘셉트로 10여년을 꾸준히 일궈낸 꾸준함과, 타이밍 좋게 찾아온 ‘메피스토’의 히트가 이제 위풍당당한 메인스트림 밴드로 자리잡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그 압도적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40여분.
즛토마요는 사실 아이묭과 함께 너무 개인 사견이 많이 들어갈 거 같아 좀 자제하려고 한다. 그냥 나는 ‘꿈 같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 타이밍에 해당 아티스트를 본 것 자체가 오랜만이어서 그런 거 같긴 한데. 40분간 정확히 7곡. 짧은 시간 동안 설치하기 쉽지 않은 무대 세팅임에도 대인원의 스탭들이 모여 구현해 낸 섬머소닉이라는 세계 속 즛토마요라는 오아시스. 정말 지금 다시 그 기억을 떠올려봐도 “봤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아카네의 라이브는 정말 완벽했고, 모니터 드럼이나 릴 테이프 턴 테이블이 장식이 아닌 실제 작동되는 악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모든 세션이 응축해 쏟아 내는 ‘あいつら全員同窓会’를 직접 볼 수 있어 그저 행복했던 시간.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엔 꼭 단독을 가고 싶다.
메이지 피터스는 사실 이번 섬머소닉을 통해 처음 접한 아티스트였는데, 음악이 너무 내 취향이어서 그낭 푹 빠져 버리게 됐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처치스의 신스 팝 + 에이브릴 라빈 류의 틴에이지 팝 펑크의 융합이랄까. 특히 마지막으로 불러줬던 ‘Lost the breakup’이 너무 맘에 들어 끝나고 몇 번이나 돌려 들었는지 모른다. 뭐 간만에 추억에 젖게 했던 리암의 오아시스 레퍼토리나, 한 여름밤의 꿈을 현실화 시켜주었던 블러의 ‘The Universal’도 인상 깊은 순간들이었지만, 결국 취향에 맞는 한 방이 나의 삶으로 이어지는구나 싶었던 무대였다.
스위트 러브 샤워 Best 2 : 아이묭(あいみょん) / 텐-핏(10-Feet)
아이묭도 즛토마요와 마찬가지로 현 시점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에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어쨌든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총 8곡. 꽉꽉 눌러 담았음에도 이대로 끝난다는 게 너무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아이묭의 라이브 역량. 성량이 정말 짱짱했으며, 거의 음원을 씹어먹은 듯한 안정감으로 관객들을 리드하며 완벽하게 그 시간대를 순식간에 지배했다. 특히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표정을 짓고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제스처를 보내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돌 스타와 같은 면도 엿볼 수 있었고. 특히 ‘空の青さを知る人よ’의 후렴에서 괜시리 벅찬 느낌에 눈물이 찔끔. 나도 예상 못한 내 감정이라 그만큼 이 노래가 나에게 있어 소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10-FEET는 한국 라이브와 양상이 너무 달라 흥미로웠던 순간이었다. ㅎㅎ 뭐 예상은 했지만, 일본에서는 10대 중심의 찐 록 팬들이 모여 난장판을 만드는 양상이라면, 한국은 슬램덩크를 통해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팬덤이 마치 아이돌을 소비하듯이 응원하는 양상. 지난 7월에 10-FEET의 공연을 봤지만, 정말 서클 없고 슬램 없는 10-FEET의 라이브를 일본 팬들은 상상하지 못할 거다. 어쨌든 “행복해지자”라는 말을 연발하던 타쿠마. 페스티벌을 보기 전보다 본 후가 더 행복했으면 하다는 그의 바람에서 내가 이 곳을 매년 찾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던 듯. 역시나 이들의 공연엔 여운과 감동이 있다는 사실,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2023년 여름 페스티벌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