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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Apr 28. 2024

‘음악’ 그 자체로 존재하고자 하는 자

일본 사이키델릭의 거장이자 자유로운 음악가, 사카모토 신타로의 이야기

* Visla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티스트와 곡 명칭은 해당 매체 편집부의 의도에 따라 기재하였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의 가치하락에 큰 책임이 있다 한들 무시할 수 없는 순기능 하나는, 바로 ‘국경’이라는 벽을 무너뜨렸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은 의도치 않게 전세계 대중을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해외로부터 큰 반응을 얻어 역수입되고, 예상치 못한 나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찌감치 인정받은 한 레전드 뮤지션 역시 뒤늦게 이러한 흐름을 타고 아시아를 넘어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 멕시코, 미국을 도는 예상치 못한 여정에 특유의 페이스로 성큼성큼 발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일본 사이키델릭 신의 산 증인이자, 음악가로서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내비치는 이단아, 사카모토 신타로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그의 출발점은 밴드 유라유라테이코쿠(ゆらゆら帝国)다. [ 3x3x3 (1998)]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개러지 록과 신스팝, 뉴웨이브 등을 융합한 독자적인 스타일로 컬트적인 팬덤을 자랑했던 팀이었다. 특히 열도 록 역사에 길이 남을 [쿠도데스(空洞です)(2007)]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셸 건 엘리펀트와 비견될 만한 굉음의 디스토션에서 탈력(脫力)의 사이키델릭으로 완벽하게 자신들을 재정의한 명반. 트레몰로를 활용한 느슨한 기타가 ‘공허함’이라는 테마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카모토 신타로 자신도 ‘밴드가 완성되어 버렸다’고 생각할 정도의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현 체제로서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신작 발매 없이 팀은 해산되었다. 일본의 유서 깊은 음악 잡지 ‘MUSIC MAGAZINE’은 2019년 4월호을 통해 발표한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서 이 [空洞です]를 4위에 올린 바 있다. 5위에 랭크 된 앨범이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Solid State Survivor]였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그 위대함이 조금 더 와닿지 않을까 싶다.

지금 돌아보면 이 앨범은 솔로 활동의, 구체적으로는 첫 번째 작품인 [마보로시토노츠키아이카타(幻とのつきあい方)(2011)]에 대한 힌트가 아니었나 싶다. [空洞です]는, ‘나는 큰 구멍이 되겠다’, 즉 ‘내 존재감을 없애고 음악만 남기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선천적으로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모두가 자신을 숭배하는 듯한 라이브에서 그 모순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 불쾌함에서 벗어나고자 목적을 가진 음악이 아닌, ‘음악 자체’를 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고스란히 이 솔로 데뷔작에 담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幻)’은 이제는 사라진 밴드를 일컬으며, 그것이 보이지 않아도 결국 그 본질은 어딘가에 있으며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통해 내면으로 침잠하며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감각’으로 이 작품을 꾸미게 된다.


그는 솔로 작을 통해 음악을 정의하는 기준이나 언어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느 거점도 두지 않는 하이브리드 뮤직 제작에 골몰해 갔다. [幻とのつきあい方]를 이루는 사운드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리듬을 구성하는 악기들이다. 특히 콩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최대한 볼륨을 줄인 드럼과 단단하게 잡혀 있는 베이스에 스며들며 이국적인 무드를 자아내고 있다. [空洞です]에서도 슬쩍 엿보였던 AOR과 소울 역시 적극 반영되어 있으며, 스틸 기타가 합세해 구현되고 있는 ‘힘 빠진 리드미컬함’이 감상의 포인트라 할만하다.


그런가 하면 ‘나니카가치가우(何かが違う)’에서는 플루트를 동반한 카펜터스 류의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그의 음색과 맞물려 괜시리 오타키 에이치를 떠올리게 하고, ‘카스카나키보(かすかな希望)’에서는 도어스(The Doors)의 레이 만자렉이 연상되는 신시사이저 톤을 활용하며 사이키델릭에 대한 헌사 또한 잊지 않는다. 이처럼 이전의 음악 활동과는 완전히 선을 긋는, 철저히 개인에서 파생된 독자적인 형식의 음악들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국적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듣는 순간 직감하게 된다. 그의 음악이 가장 많이 재생되는 나라 중 하나가 브라질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대목이다.


첫 작품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음악을 정립했다면, 그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나마데오도로(ナマで踊ろう)(2014)]에서는 세션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본인 외의 요소를 늘리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록’은 아니어도 ‘밴드’라는 인상을 주는 앙상블이 러닝타임을 관통하고 있다. 특히 이 앨범은 SF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가 가진 죽음에 대한 인식을 구체화 한 가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한 공포라던가, 죽은 사람들의 생각과 무드가 예술 작품으로 남아 시공간을 초월해 재현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본래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가 흔치 않게 ‘설정’을 빌려 내뱉는 신랄함이 이 앨범의 가장 큰 감상 포인트라 할 만하다.



구원받을 수 없는 세상을 노래하는 “슈퍼 컬트 탄죠(スーパーカルト誕生), ‘사람은 집단이 되면 변하는거야’라며 자신이 가진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오야메타(もうやめた)”, 경쾌한 아이리시 반주와 상반되는 ‘로봇이 되자’라는 가사가 마치 후지코 F 후지오의 기괴한 단편 만화를 생각나게 하는 “아나타모로봇토니나레루(あなたもロボットになれる)” 등 노래 속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꽤나 스트레이트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그의 모습. 그에 비해 음악은 전작에 비해 훨씬 파퓰러하다. 선율은 캐치해졌고, 기승전결 또한 명확해졌다. 그럼에도 그가 만드는 소리들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BGM 정도면 대만족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정말 철저하게 공감과 일체화를 거부하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애티튜드는 그의 라이브관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이 두 번째 앨범이 나올때까지만 해도 전혀 공연활동 재개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숭배’의 분위기를 혐오했거니와, 직접 무대에서 목소리를 낸다거나 자신들의 퍼포먼스에 관객이 개입하는 것만으로 흐릿하게 부유하기를 의도했던 언어들이 단단한 메시지가 되어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또한 커리어 후반부로 갈수록 라이브를 줄여갔지만, 그들은 단순히 ‘레코딩을 반복하는 것이 지겨워서’ 였을 따름이었다. 이를 비교해보면 그가 자신이 하는 음악에 있어 얼마나 본인의 존재감을 지우고 싶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개인의 독자성을 중시하고 있었는지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그가 사람들 앞에 선 것은 세 번째 앨범 [데키레바아이오(できれば愛を)(2016)]를 선보이고도 1년이 지난 후였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한층 밝아진 무드로 하여금 이제는 ‘살아있는 기척을 내보자’, ‘멤버들이 즐겁게 연주하고 있는 이미지를 그리고 싶다’는 그의 의향이 라이브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언제든 무대에 서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다. 그렇기에 이번 한국 방문이 뜻깊을 수밖에 없다. 특히 관객 앞에서의 재현이 스튜디오 작품을 왜곡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그다. 레코딩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줄 것이 기정사실화다. 정식으로 공개되어 있는 “소레와이호데시타(それは違法でした/That Was Illigal)”의 라이브 클립을 보면, 이 곡이 내가 알던 그 노래가 맞나 싶다. 관악 세션 대신 하모니카가 적극 개입함과 동시에 빨라진 템포를 통해 박자감을 완전히 재정립하는 그 모습은, 이들의 라이브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로 자리한다.  



6년 만에 발매한 [모노가타리노요오니(物語のように)(2022)]는 간만에 일렉기타를 전면에 내세움과 동시에 서프 뮤직과 아메리칸 록, 로커빌리, 로네츠로 대표되는 60년대 걸그룹 뮤직, 모타운의 그루브함까지 포용해 그의 커리어 사상 가장 팝적인 모음집으로 완성되어 있다. 그는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지금이 너무 가혹한 세상이라 조금이라도 밝게 가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차곡차곡 수록되어 있는 10개의 트랙은, 그의 발자취를 쫓아온 이들이라면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바깥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차분히 세월을 겹쳐오는 동안, 음악잡지 ‘MUSIC MAGAZINE’은 3년 전에 발표한 2010년대 100대 명반 리스트에 그가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을 모두 포함시켰다. 그의 결과물들이 어느덧 일본 대중음악 신에서 빠뜨려서는 안될 중요작이자 문제작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중이다.


음악적 성취는 차치하고라도 세상과 쉽게 부대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의 음악은, 어째 세상이 보더리스화 되어 갈수록 더욱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추세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전에 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지속해 온 그는, 음악 속 메시지가 아닌 음악 자체의 경이로움으로 어필하는 것이 자신의 지향점이라 언급한다. 그리고 점점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에 호기심을 표하는 무국경 시대에 접어들며, 나름의 희망과 함께 자신을 지지하는 관객들과의 만남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독보적인 행보로 일본 음악 신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사카모토 신타로. 그의 내한과 관련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한다면, 라이브를 관람한 후 그 위대함을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함과 동시에 그 역사적 장면을 입에서 입으로 후대에 전파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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