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글은 인디포스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라면, 오바 츠구미-오바타 타케시 콤비가 <데스노트> 종료 후(2006) 후속작으로 선보인 <바쿠만>(2008~2012)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화가들의 경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해당 작품 속에서,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흥미로운 표현으로 ‘왕도’와 ‘사도’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클리셰라고 할 정도의 정해진 공식과 루트를 차용해 익숙한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전자, 위험부담은 있지만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반영해 경험한 적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리스크가 큰 대중문화계, 특히 이익 추구가 더욱 강조되는 메인스트림에선 왕도를 추구하기 마련인데,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아무도 없는 길을 만들며 사도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독자적 스타일로 언제나 동시대에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3인조 밴드, 페트롤즈에 대한 이야기다.
팀의 이름은 낯설게 다가와도, 중심인물인 나가오카 료스케만큼은 익숙한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이나 링고가 이끄는 밴드 도쿄지헨에서 2005년부터 기타를 맡고 있는 우키구모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세션으로서의 경력도 화려하다. 오하시 트리오, 오리지널 러브, 사류, 호시노 겐, 러브 사이키델리코, 죠오바치 등 장르와 포맷을 가리지 않고 신의 최전선에서 많은 이들의 곁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왔다. 그동안 항상 곁에서 메인을 보조해왔던 그가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해소함과 동시에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자 만든 것, 그것이 바로 페트롤즈가 결성된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구심점은 바로 일본의 음악을 해외에 알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에서 발견된다. 영국 유학 당시 해외에서도 자국의 소리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된 나가오카 료스케는,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글로벌하게 발신하기로 결심한 후 하나둘 멤버를 모으기 시작한다. 드럼을 맡고 있는 ‘밥’ 카와무라 토시히데는 고등학교 때부터 카피 밴드를 함께 하던 인연으로, 베이스 담당인 ‘점보’ 미우라 쥰고는 힙합 기반의 밴드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블랙 뮤직을 지향하던 자신의 성향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각각 영입, 지금의 3인조 진형을 완성하게 된다. 굳이 트리오를 지향한 것은, 그 정도의 규모가 운신의 폭이 가장 넓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블루그래스, 펑크(Funk), 알앤비 등이 버무려진 음악적 색채 아래 치밀한 박자감으로 새겨넣은 그루브함과, 적극적인 코러스 워크를 동반한 유니크한 곡풍으로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가게 된다.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세 명이 모였기에 가능한, 마치 어떤 레퍼런스도 없는 듯한 감각은 기존 대중음악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조금은 질린 이들에게 단비와 같이 흩뿌려지며 순식간에 퍼져갔다. 이처럼 외부의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구축되는 밴드의 독창성이 듣는 이들에게도 능동적인 선택과 해석을 유도하며 보기 드문 풍성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그 신선한 자극은 페트롤즈가 음악을 넘어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에 이르는 문화로 받아들여지도록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지점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 시티 팝 리바이벌을 통해 블랙 뮤직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며 젋은이들의 롤모델로 자리했던 서치모스가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이 팀 특유의 대중성이다. 독특함만으로 승부했다면 지금과 같은 두터운 팬층을 구축할 수는 없었을 터. 나가오카 료스케의 보컬은 철저히 알앤비에 어울릴법한 음색과 기교를 가지고 있다. 최근 작품에 오면 올수록 앞서 언급한 서치모스의 욘시나 후지이 카제가 떠오를 정도로, 반주만 듣고 탐색전을 벌이고 있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 바로 그의 멜로우한 음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작품이 거듭될수록 비중 있게 자리하며 대중성을 농밀하게 채워주고 있는 것이 바로 미우라 쥰고와 카와무라 토시히데의 코러스 워크다. 초기작 ‘つばめ’나 ‘雨’에서도 시도되던 백 보컬은 ‘Talassa’나 ‘KOMEKAMI’와 같은 비교적 최근 트랙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활용되며 접근성을 높임과 동시에 팀만이 가진 섬세함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이와 함께 조금씩 곡에 포함되는 소리의 양을 줄여가며 더욱 깊게 자신들만의 디테일을 구현 중이다.
이쯤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이야기할까 한다. 이들의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없다. 자신들이 고정된 무언가로 남아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팀의 성향 탓이다. 커리어 초기에는 대부분의 음반이 공연장 한정으로 판매되었고, 데뷔 후 7년이 지나서야 EP <Problem>(2012)이 처음으로 전국 유통되었다. 이후 3년을 더 기다린 끝에야 첫 정규앨범 <Renaissance>(2015)를 내놓는 등 활동 방식에서도 기존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첫 풀 렝스라 할 수 있는 <MUSIC FOUND BY HDR-HC3>(2008)는 아예 라이브 음원을 담은 결과물이었다. 이와 같은 사도로서의 존재감은 그들의 라이브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공연 때마다 노래가 자란다”고 할 정도로, 편곡을 비롯한 곡의 구성을 지속해 바꾸며 동일한 퍼포먼스를 지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즉흥성을 기반으로 ‘완성 없이 진화해 나가는’ 본질을 가진 팀이 바로 페트롤즈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시점에서 음원 청취가 가능한 작품은 EP <乱反射>(2023)와 곡 ‘ホロウェイ’가 유일하다. 작년 말에 선보인 <乱反射>는 기존 발표곡을 디 안젤로(D’Angelo)의 <Voo Doo>(2000)를 비롯, 카마시 워싱턴과 노라 존스, 존 바티스트 등의 걸출한 뮤지션의 작품에 참여한 그래미 수상 엔지니어 러셀 엘레바도의 믹싱을 맡겨 탄생시킨 특별한 작품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갑자기 등장해 앞으로의 블랙 뮤직이 나아갈 길을 정의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레이블 <TOKA>의 수장이기도 한 오부쿠로 나리아키. 그는 페트롤즈의 음악을 영국의 청취자들이 선호할 댄서블한 매력에 초점을 맞춰 완벽히 재창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더욱 강조된 비트감과 살작 뒤로 뺀 기타와 코러스 등을 통해 극대화된 리드미컬함은 그들의 음악이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명확히 증명 중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음악을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는 페트롤즈. 그럼에도 점차 추종자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말 그대로 누가 뭐라든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식 밖의 갈지자 행보로 안심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는 그들이지만, 그 자유로움이 만들어 낸 일상의 도피처는 안식을 찾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로 분하며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부러 틈을 만들어 듣는 이들과의 통로를 남겨두는 페트롤즈.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를 빙자한 신기루 같은 밴드라 정의하고 싶다. 정신 차려보면 사라져 있지만, 정말 마셨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물맛은 너무나 달콤하고, 또 정말 봤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야자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늘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안식과 흥분을 동시에 가져다줄 환상의 실재를, 모두가 목격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