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와 음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선업 Jun 12. 2018

나의 20대, 그리고 챠토몬치

챠토몬치의 '완결'에 부치는 글


챠토몬치의 '완결'이 발표되던 날, 마음은 놀랍게도 평온했다. 왠지 머지 않은 시기에 이별을 고할 것 같았던 그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자신들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느낌이었고, 이제 그 준비가 완료되었구나 싶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더 원하는 것 자체가, 수많은 위기를 딛고 일어선 그들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았다. 그저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손을 힘껏 흔들어주리라. 단지 그 생각 뿐.


3년 전, 챠토몬치의 10주년 공연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부도칸을 찾은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막 서른살이 되던 차였고, 여러가지 고민들로 머리속이 어지럽던 시기였다. 멤버의 탈퇴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낸 그들이었다. 20살때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10년의 출발점에서 다시 한 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었다. 이처럼 그들은 나의 20대를 말하는 데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존재들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 노래

이전부터 일본음악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챠토몬치의 음악들은 처음부터 특별하게 다가왔다. 2006년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그 안에 반짝이던, 앨범 제목대로의 < 생명력 >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건 뚜렷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도전하지 못하고 있던 때, 그들의 음악은 확신이 없더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일단 과감히 뛰어들라 말해주고 있었다. 그 뒤로 나의 삶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생각은 행동이 되었고,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10주년 공연 중 에리코가 '今日は10周年なので、みなさまと共に10年間を振り返りたいと思います(오늘은 10주년이니, 모두와 함께 그간의 10년을 돌아보고 싶네요)'라 말했던게 기억난다. 그 10년은, 밴드의 10년임과 동시에 나의 10년이기도 했다. 군대시절 만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 耳鳴り > 와 < 生命力 >, 그리고 홀로 칠레라는 낯선 땅에서 공부를 하던 때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하라 충고해 주었던 < 告白 >,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기에 들었던 < AWA COME >과 < YOU MORE >, 현실과 꿈의 갭에 힘들어할 때, 바로 그럴 때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우리처럼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던 < 変身 >, 그리고 세상엔 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 共鳴 > 까지. 모두가 그 시기의 정답을 알려준 작품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위기가 있었듯 나에게도 물론 위기가 있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해질 줄 알고, 티내지 않으면서도 빛이 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욱 진화한 그들. 그들이 있었기에 고민 많은 나의 20대를 지탱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전 그때, 2인조가 된 탓에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인생곡 'LAST LOVE LETTER'를 연주하는 그들을 보았다. '그래, 세상은 살아봐야 아는 거야'. 불시에 기습한 행복이 내 30대의 시작을 반기던 순간이었다.

당신은 남에게 사랑받아서 처음으로 당신이 되는 거에요

그리고 이번 7월, 나는 그들의 완결을 맞이하러, 그리고 나의 20대를 완전히 완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무도관을 찾는다. 돌아보면 지난 3년 간의 나는,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는 거짓말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감각은 여전히 젊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20대 시절과 별반 다르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올 초 즈음부터, 언제나 어리고만 싶었던, 청춘이고만 싶었던 나도 이젠 나이를 먹었고, 이전과는 같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함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두려웠고, 내 자아가 사라지는 것만 같아 좀처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시점에서, 거짓말처럼 그들은 '완결'을 발표했다. 그들 또한 챠토몬치를 끝내야 하는 시기임을 직감했으며, 그 결정은 놀랄 정도로 망설임이 없었다. 순간 직감했다. 지금이야말로 나도 20대를 '완결'할 시점이라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또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내 마음이 말해주고 있었다.


예전의 나와 이별을 고한다고 해서 그 때 간직한 꿈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망설이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20대엔 그 시기에 어울리는 방식대로, 30대엔 이 시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또 다른 길을 걸어나가고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사실, 그 명제를 부도칸에서 함께 확인하며 내 마음에 새기고 싶다. 예전과 다른 것이라면, 꿈이 한번에 이뤄지는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꿈이란 것은 매일 조금씩 이뤄가는 것이고, 내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었을 때 여태까지 이뤘던 꿈의 조각들을 맞춰보고 그것이 예전에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르쳐 주었듯이, 앞으로의 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되, 꿈에 있어서는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더욱 꾸준히 걸을 것이다.


그 곁엔 챠토몬치, 하시모토 에리코, 후쿠오카 아키코, 다카하시 쿠미코 이 세 명이 흩뜨려놓은, 그리고 앞으로 흩뜨려 놓을 소리들이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여담이지만, 나는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하는 음악을 어디에 있는 이가 들을지, 어느 상황에 있는 이가 들을지 결코 당신들은 상상할 수 없다고. 당신들의 음악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상상한 것 보다 훨씬 위대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이다. 직접 전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나마 힘껏 외칠 것이다. 나의 20대가 정말로 끝을 맞이할, 2018년 7월 4일 부도칸에서.

안녕 챠토몬치, 안녕 나의 20대
매거진의 이전글 제이팝의 여제를 떠나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