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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뜻한 Feb 22. 2019

왜 우리는 항상 기쁨을 강요받을까?

긍정사회와 슬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담긴 한 편의 인생철학

어제 '인사이드 아웃'이 재밌다는 소식을 듣고 6년 만에 혼자 영화를 관람했다. 혼자 영화를 본 것은 <다크나이트>가 개봉했을 때,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후로 6년 만이었던 것 같다. 

(7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하.)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내가 본 영화들 중에서 재미있었던 것(내 기준으로)을 꼽아보라면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내 기준으로는, <겨울왕국>보다 재미있었고, 어떤 디즈니 영화보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쳤으며,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메세지와 함께 무릎을 탁 칠 만한 교훈을 주는 영화였다.


* 후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후에 읽어주세요 ^^

* 글에 대한 무단 복사, 무단 스크랩을 절대 금지합니다.



1. 디즈니의 창의력, 인사이드 아웃의 창의력



 '창의력'이라는 것은 뭔가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기발하고 독특한 능력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뻔하지 않게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간의 '마음'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는 여러 학문이나 매체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 기억과 잊혀진 것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그 마음의 구조를 묘사하면서도, 뻔하지 않게 표현한다.


 라일리의 마음 속 세상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5가지 친구들이 있다. 그렇다. 기쁘고, 슬프고, 버럭하고, 까칠하고 소심한 우리가 늘 느끼는 그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한 사람에게 소중한, 그리고 중요한 삶의 분야들이 '섬'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라일리의 경우에는 친구섬, 하키섬, 가족섬, 정직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라일리의 삶의 태도가 바뀌면 이 섬에도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관계가 안좋아지면 가족섬은 위협을 받는다. 붕괴되기도 한다.  친구 간의 관계도 그렇다. 그리고 이 섬을 연결하는 부분에는 장기기억연결창고가 있다. (하하. 이름도 길다.) 그냥 간단히 말해 여러 기억들을 보관하고, 분류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로처럼 생겨서 한번 들어가면 나가기 힘들다. (봉봉의 도움 없이는!)


  내가 디즈니의 창의력에 감탄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기억이 잊혀지는 탄광과 같은 부분.' 이곳에 들어가면 기억은 잊혀지고 재로 변한다. 그리고 '잠재의식 부분'. 우리가 마땅히 드러내서는 안되는 기억들-이를테면 무서운 피에로-이 감금된다. 일종의 감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꿈' 상영관.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라일리의 머릿속에서는 '꿈' 공연이 상연된다. 대역들을 쓰는데, 꿈 극장의 카메라가 닿으면 마치 사람처럼 라일리의 꿈속에서 보여진다. 정말 대단한 창의력, 상상력이다!




2. <인사이드 아웃>이 지닌 인생철학


1)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 무너지게 된다.


 현재 사회에서,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피곤하다. '무한 경쟁'이 현재 사회의 모토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늘 무언가 새로운 성과,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강요받는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밤 늦은 시간까지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에 가야 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마음 속으로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은 학원이라는 감옥에 틀어박혀,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억압의 감옥-나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요가 스스로 만들어낸-에 갇혀서 사라진다. 

 

 우리는 잃고 있는 것이다. 친구라는 섬을, 가족이라는 섬을…. 돌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은 사라지게 된다.


 학생뿐일까. 비단 통계자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인들은 아주 바삐 일한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뿐. 야근에,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 야근을 끝내고, 회식을 끝내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은 모두 잠에 들어 있다. 아이의 일기장에는 '아빠, 혹은 엄마와 더 놀고 싶다.'는 말이 적혀 있다. 주말이 되면 여지없이 잠에 든다. 외국에서 2주, 3주 휴식을 위해 취한다는 휴가는 바빠서 내기조차 힘들다.

  잃고 있다. 가족섬을,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의 섬을, 아들, 딸들의 섬을, '나 자신'의 섬을.



2) 우리에겐 모두 잊혀진 기억들이 존재한다.


 영화를 보고 깨달은 사실은, 아니 너무 당연하기에 깨달았다고도 하기 뭐한 사실은, 우리는 하루하루 많은 일들을 겪지만, 그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분명 하루하루 나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어떤 일들은 기쁘고, 기쁘면서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그렇다. 많은 감정들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기억들은 저 먼 탄광과 같은 '잊혀진 기억들'의 장소로 향하여 한 줌의 재가 되어 잊혀지게 된다.


 그 기억들에는 중요한 기억들도, 행복했던 기억들도 많을 것이다. 기쁨(joy)이 그 잊혀진 기억들의 공간에 갇혔을 때 그곳에서 찾았던 라일리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들처럼, 너무나 소중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무심하게 잊혀진 기억들이 나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3)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감정을 숨겨야 할 때가 많다. 화가 난다고 다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쁘다고 마냥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의 기분 때문에 화를 내지 말아야 하고, 혹시 내가 기쁜 것이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질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마냥 기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특히 슬픔이 그렇다. 내가 슬픈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민망한 것이다. '긍정 사회', 긍정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지금 세상이 힘들어도 '잘 될거야', '더 기쁜 생각을 해봐'라고 강요받는 사회에서, 우리의 슬픔은 영화 속에서처럼 드러낼 수 없는 선 안에 가둬지기도 하고, 기쁨의 등쌀에 떠밀려 표현조차 거부당한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메세지처럼, 하나의 경험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은 아주 많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다양하게 얽히고설켜 우리의 기억들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감정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슬픔이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슬픔은 사람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우리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과 나를 하나로 연결해준다.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 에서 주인공이었던 의사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다가 다양한 감정들을 오롯이, 진실되게 드러나게 되면서 행복을 비로소 되찾았던 것처럼. 숨긴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잠재의식을 탈출하고서라도 말이다. 





흔히 디즈니의 영화에는 한 편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도 디즈니만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디즈니의 영화는 단순한 듯하지만 복잡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한편으로는 디즈니의 대단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고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살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무언가도 있다. 슬픔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담은 <인사이드 아웃2>가 나오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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