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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뒤의 그림자 - 보이스피싱

한 평범한 시민의 뒤틀린 정의와 되찾은 일상

by 산뜻한

모든 사건은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되었고, 이를 위하여 내용 중에 허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변호사님, 돈을 잃은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제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생각, 그리고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었습니다."


의뢰인 김민준(가명) 씨의 목소리는 깊은 절망과 억울함으로 떨렸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의 삶은 2022년 가을, 한 통의 전화로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검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정교한덫에 걸려 거액의 돈을 편취당한 것도 모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범죄 자금 전달책으로 이용될 뻔한 아찔한 상황에 놓였던 것입니다. 그가 겪어야 했던 심리적 압박과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1. "당신은 이미 용의자입니다": 공포를 심은 첫 통화


2022년 10월 10일 오후, 김민준 씨는 ‘서울중앙지검 이강현 수사관’(가명)이라는 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김민준 씨 명의의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그가 주요 공범으로 지목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황한 김민준 씨에게 ‘윤지훈 검사’(가명)라는 이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당신이 결백하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구속될 수 있다"며 압박했습니다.


그들은 김민준 씨의 이메일로 ‘긴급 사건 통지서’라는 그럴듯한 문서를 보내 낭독하게 하고, ‘금융보안 서약서’와 ‘특별수사 협조 지침’에 서명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여기에는 "수사 내용은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며, 위반 시 가중 처벌을 받는다"는 살벌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감옥: 교묘한 심리 조종과 완벽한 통제


이후 김민준 씨의 일상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완벽한 통제하에 놓였습니다. 그들은 김민준 씨에게 "수사 보안"을 이유로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 대신 새로운 안드로이드폰을 구매하게 한 뒤, ‘SafeShield’(가명)라는 악성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지시했습니다. 이 앱은 특정 번호(예: 금융감독원 민원실)로 전화를 걸면 조직원에게 연결되는 기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김민준 씨가 의심을 품고 금융감독원에 확인 전화를 시도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조직원과 통화하며 그들의 거짓된 답변에 더욱 깊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조직은 매시간 김민준 씨의 일상을 보고하게 하고, 주고받는 모든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 대화 내용을 캡처해서 전송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 은행 앱 접속조차 그들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고립과 감시는 김민준 씨를 극도의 심리적 불안 상태로 몰아넣었고, 그는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홀로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실제로 김민준 씨의 직장 동료인 박지훈(가명) 씨가 최근 명의도용으로 큰 금융 피해를 본 경험이 있었기에, 김민준 씨는 자신에게도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3. 검은 돈의 흐름: 피해자에서 본의 아닌 조력자로


조직은 김민준 씨에게 "계좌의 불법 자금 연루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며 기존 예금을 해지하고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총 9,5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대출을 받아 현금으로 인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민준 씨는 2022년 10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지시받은 대로 수차례에 걸쳐 돈을 인출하여 조직원이 지정한 장소에 있는 의문의 인물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돈을 전달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탈 경우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챙기는 등 범죄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넘긴 후에도 조직의 요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최정민 부장검사’(가명)라는 자가 등장하여, "당신 사건의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피해금을 안전하게 회수하여 전달하는 데 협조해야 당신의 결백이 최종 입증되고 동결된 자산도 복구된다"고 기망했습니다. 완전히 심리적으로 지배당한 김민준 씨는 2022년 11월 말, 두 차례에 걸쳐 총 2,500만 원의 현금을 다른 "피해자"로부터 전달받아 조직이 지정한 인물에게 넘기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달하는 돈의 정확한 액수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옷차림이나 행동 역시 전혀 위장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은 김민준 씨가 신용카드만 사용하는 것을 보고 "생활비가 필요할 테니 받아 가는 돈에서 30만 원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미 거액을 갈취당한 김민준 씨에게는 미미한 금액이었고, 오히려 그들의 지시에 순응하게 만드는 또 다른 교묘한 수법이었습니다.



4. 한 줄기 빛: 변호인의 조력과 진실 규명의 시작


2022년 12월 초, 김민준 씨는 저희 법무법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극도의 불안감과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고, 사기방조 혐의로 처벌받을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저희는 김민준 씨가 명백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이며, 이후 돈을 전달한 행위 역시 조직의 철저한 심리적 지배와 기망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김민준 씨에게는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방조의 고의'가 전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저희는 김민준 씨가 조직과 주고받은 모든 메시지(다행히 일부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낸 가짜 공문서들, 대출 실행 내역, 돈 전달 과정에서의 CCTV 기록 등을 증거로 수집했습니다.


특히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대화가 주로 자동 삭제 기능이 있는 텔레그램으로 이루어져 증거 확보가 매우 어려웠으나, 결정적으로 경찰이 김민준 씨의 집에 출동했을 당시 그의 휴대폰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틀간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확보하여 캡처한 것이 김민준 씨가 마지막 순간까지 조직에게 철저히 기망당하고 지시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메시지에는 경찰이 집에 찾아온 상황을 조직에게 다급하게 보고하고, 조직으로부터 "녹음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의 무고함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5. 검찰의 판단: "혐의없음" 그리고 되찾은 안도


저희는 이러한 증거들과 함께, 김민준 씨가 범행에 연루되었다는 인식 없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굳게 믿고 조직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 그리고 어떠한 대가도 약속받거나 취득한 바 없다는 점(30만 원은 편취금액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을 상세히 기술한 변호인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경찰은 2023년 2월 15일, 김민준 씨의 사기방조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검찰 역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존중하여 사건을 종결지었습니다.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끝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6. 변호인의 시선: 목소리 뒤의 악마를 경계하라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얼마나 치밀하고 악랄하게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피해자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극도의 공포와 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김민준 씨는 다행히 수사기관의 현명한 판단과 저희의 조력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벗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의 정신적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은 절대 전화로 금전 이체나 현금 전달,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낯선 전화, 특히 수사기관을 사칭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전화는 일단 의심하고, 반드시 해당 기관의 공식적인 대표번호로 직접 전화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한순간의 의심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범죄로부터 지킬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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