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거책'의 무죄를 입증하기까지
모든 사건은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되었고, 이를 위하여 내용 중에 허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최근 제가 변호했던 한 젊은 외국인 유학생의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며 막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그를 ‘범죄조직의 일원’이라 말했지만, 제 눈에 비친 그는 K-POP을 사랑해 한국을 찾았다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억울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의 꿈이 어떻게 악몽으로 변해갔는지, 그리고 법정에서 ‘나는 몰랐다’는 그 한마디를 증명하는 싸움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과정이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루카스(가명)’는 독일에서 온 평범한 음대생이었습니다. K-POP에 매료되어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서툰 한국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구인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죠. 그가 취업한 곳은 K-POP 굿즈(기획상품)를 해외에 판매한다는 ‘K-웨이브’라는 회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습니다. 번듯한 홈페이지, 외국인 우대를 강조하는 채용 공고, 메신저를 통한 친절한 면접까지.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해외 팬들에게 희귀 앨범이나 포토카드를 판매하고, 간혹 ‘국내의 큰 손 리셀러’들에게 현금으로 대금을 받아 물류팀에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리셀러들이 세금 문제 때문에 현금 거래를 선호한다’는 회사의 설명은 그럴싸하게 들렸습니다. 루카스는 자신의 독일어 실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가 경찰에 긴급 체포된 것은 어느 카페에서 ‘리셀러’에게 돈 봉투를 건네받은 직후였습니다. 루카스는 영문도 모른 채 수갑을 찼고, 그제야 자신이 거대한 보이스피싱 사기의 ‘현금 수거책’으로 이용당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명확했습니다. 루카스가 자신의 일이 범죄라는 것을 ‘알았는가’.
형사소송법상 증명의 책임은 검사에게 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조직의 윗선은 잡히지 않았고, 피해자의 돈을 직접 만진 사람은 루카스뿐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상황만 보면 그는 영락없는 범인이었죠. 저희는 사실상 ‘루카스의 무고함’을, 그의 마음속에 ‘범죄의 의도가 없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몰랐다’는 소극적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과 같이 막막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재판에서 검찰이 회심의 카드로 내민 것은 루카스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인터넷 검색 기록(“고수익 알바 현금”)이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루카스가 자신의 일을 의심했으니 범죄임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두 개의 단단한 기둥을 세워 의뢰인의 무죄를 변론했습니다.
첫 번째 기둥: 위법한 증거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저희는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가 애초에 법정에 설 자격조차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휴대폰을 압수·분석할 때는, 어떤 파일을 증거로 삼을지 상세한 목록을 반드시 피의자와 변호인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절차입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 절차를 건너뛰었고, 저희는 이것이 명백한 위법수집증거임을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 기둥: 설령 증거가 인정되어도, ‘고의’는 없었다.
저희의 변론은 단순히 절차적 흠결에만 기대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재판 내내 ‘설령 그 검색 기록이 증거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범죄의 고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점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외국인 청년이 ‘고수익 현금 알바’를 검색해 본 것이, 자신의 일이 노인들의 돈을 훔치는 범죄라는 사실까지 인식하고 용인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비약입니다. 의심과 확신은 다릅니다.”
저희는 루카스가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 없이 자신의 명의로 된 카드로 KTX를 타고 이동한 점, 사치 없이 평범한 기숙사에서 생활한 점, 경찰의 연락에 성실히 협조하며 자신이 회사와 나눈 모든 대화 내용을 스스로 제출한 점 등 그의 결백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정황 사실을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교활한 범죄자가 아닌,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하게 기만당한 한 청년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저희의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먼저, 결정적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되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판결문에서 “설령 증거능력을 인정하더라도, 이로써 피고인이 범죄를 인식하고 절취행위까지 나아갔다고 인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하며, 저희의 실체적 주장에 대해서도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는 절차적 승리를 넘어, 루카스의 ‘선의’가 법정에서 입증된 순간이었습니다.
2년이 넘는 기나긴 법정 다툼 끝에, 루카스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젊은 날에 새겨진 마음의 상처는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저희 의뢰인은 2년이 넘는 재판 끝에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공포와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평범한 청년 누구나, 선한 의도와 무지함만으로도 끔찍한 범죄에 연루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당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법률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회초년생과 외국인들의 바로 그 순수함을 노립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 당신이 제2의 루카스가 되지 않도록 현실적인 방어 수칙(꿀팁)을 알려드립니다.
100% 비대면 채용은 위험 신호입니다.
이력서를 이메일로 받고,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만 면접을 진행하는 곳을 경계해야 합니다. 정식 회사가 직원을 뽑으면서 얼굴 한 번 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돈을 다루는 업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회사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세요.
채용 공고에 나온 회사 주소를 지도 앱에서 검색해 보세요. 실제 사무실이 있는 곳입니까, 아니면 엉뚱한 주택가나 텅 빈 건물입니까? 저희 의뢰인의 경우, 회사는 제주시에 있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방문하거나 직원을 대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직무 내용이 불분명하다면 거절해야 합니다.
‘고객 관리’, ‘대금 수납’, ‘물류 전달’ 등 포괄적이고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며 구체적인 업무 방식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의심해야 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알려주겠다’는 말은 전형적인 사기 수법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대더라도, 다음의 업무는 100% 범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금’을 직접 만지는 일
‘고객이 현금 결제를 원한다’, ‘회사의 경비 처리 규정이다’라는 말에 속지 마세요. 현대 사회에서 정상적인 기업은 계좌이체를 통해 거래합니다. 당신에게 현금을 만지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금의 출처를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비밀스러운 전달’
지하철 물품 보관함, 공중화장실, 공원 벤치 등에서 돈이나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는 범죄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 아닙니다. 당신이 바로 그 범죄 영화의 하수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수고비’를 현금에서 직접 빼라는 지시
월급이나 수고비를 계좌로 송금하지 않고, 전달할 현금에서 직접 빼서 가지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이는 당신을 범죄의 공범으로 묶어두고, 나중에 ‘당신도 돈을 받지 않았느냐’며 발뺌하지 못하게 하려는 덫입니다.
당신의 직감이 경고 신호를 보낼 때,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팀장’이나 ‘매니저’에게 질문하지 마세요.
그들은 이미 모든 예상 질문에 대한 거짓말 시나리오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저희 의뢰인이 피해자에게 발각되어 당황했을 때, 조직원은 ‘외국인 직원인 걸 몰라서 그러니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키고 결국 돈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의심을 잠재우는 전문가입니다.
제3자에게 객관적인 조언을 구하세요.
당신이 하는 일을 친구, 가족, 학교 선생님 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세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상한 점이 훨씬 잘 보입니다.
신고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즉시 일을 그만두고 경찰서(112)나 외국인 지원센터 등에 상담을 요청하세요. ‘혹시 내가 오해한 거면 어떡하지?’라는 망설임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한 청년의 억울함을 풀었지만, 이것이 수많은 증거와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얻어낸 ‘운 좋은’ 결과였음을 압니다. 부디 이 글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당신이 범죄의 그림자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