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공구

낡은 공구와 아버지

by 우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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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골에서 가져온 오래된 상자 하나를 열었다.

그 안 구석진 곳에서 낡은 공구 하나가 기름때를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공구.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고 하기엔 조금 쑥스러울 정도로 사소한 물건이다.

빛바랜 은색을 덮고 있는 초록색 페인트 표면에는 잘 지워지지 않은 기름때가 옅게 배어 있고,

군데군데 흠집도 나 있다. 나는 한동안 이 공구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참 동안 묵혀두었던 기억이 그 예전 아빠 공장에서 나던 기름냄새, 쇠 냄새와 함께 떠올랐다.

이 낡은 공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손끝으로 차가운 금속의 감촉 대신 그 시절 놀이터처럼 뛰어놀았던 아빠의 공장 냄새가 먼저 나는듯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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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조금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 정도의 검은 기름 냄새, 그리고 녹슨 쇠 냄새들

그 냄새는 어김없이 나를 3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데려간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의 낡은 흰색 포터 트럭이 있던 시절로.

아버지의 차는, 솔직히 말해 '고물차'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흰색 포터 트럭. 차종은 명확했지만, 연식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차였다.

곳곳이 찌그러져 있었고, 찌그러진 차체는 어김없이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다.

시동을 걸 때마다 차체는 경련하듯 털털거렸고, 멈춰 서면 힘들게 쏟아내는 흰 연기들과 함께 바닥에 검은 기름 자국을 남기곤 했다.

차 안에는 늘 이 낡은 공구에서 나는 것과 같은, 짙은 기름 냄새와 정체 모를 부품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주차를 마친 뒤 꼭 액셀을 세게 밟아 늙은 포터가 숨이 넘어갈 듯 '부하앙!' 하고 포효하는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나 왔다!"라고 알리는 아버지의 퇴근 신호 같았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그 차로 나를 공장위치와는 정반대인 중학교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그건 아버지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네 살의 나에게 그 차는, 그리고 그 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의 근원이었다.

교문 앞에는 친구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새 차에서 내리는 친구도 있었고, 적어도 '정상적인' 차에서 내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사이로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찌그러진 흰색 포터 트럭, 그리고 차창 너머로 기름때 묻은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버지의 손은 공업사 일로 인해 늘 기름때에 찌들어 있었다. 비누로 아무리 여러 번 씻어도 손톱과 손의 주름 사이사이에 박힌 기름때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내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시절 과학자를 지나 평범하고 막연한 회사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에게 부탁인지 요구인지 모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저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저기 앞'이란, 학교 정문에서 적어도 100미터는 떨어진 곳.

친구들의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모퉁이였다.

마흔일곱이 된 지금도, 나는 그 모퉁이의 정확한 위치를, 심지어 당시 보도블록의 깨진 모양까지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그래?"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내가 가리킨 지점에 정확히 차를 세웠다.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아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100미터를 걸어가는 동안, 나는 이상한 부끄러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철없는 시간들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100미터를 걸어가는 동안,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있었는지, 아니면 곧바로 차를 돌려 떠났는지, 나는 모른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니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이제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주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내 차는 다행히 털털거리지도, 기름 냄새가 진동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 딸들도 나를 부끄러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빠의 낡은 차가 아니라, 아빠의 촌스러운 옷차림이나 유행에 뒤떨어진 농담, 혹은 그저 '아빠'라는 존재 자체를 창피하게 여기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딸이, 학교 정문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빠, 여기서 내려줘"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솔직히 말해, 나와 아버지는 그리 사이가 좋은 부자(父子)가 아니었다.

대화는 늘 짧았고, 공통의 관심사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일하고, 기름때 묻은 손으로 밥을 먹고, 볕 좋은 날에는 비어있는 상하방 마루에 앉아 글라스에 소주를 몰래 따라 마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작은 낡은 공구를 손에 쥐고 있으니,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던 그 당시에 아빠는 어떤 감정을 가지셨을지…

열네 살 아들이 낡은 흰색 포터 트럭을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왜 굳이 100미터나 떨어진 곳에 내리고 싶어 하는지.

그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들의 유치한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100미터의 거리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무라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히, 내가 원하는 그 지점에 차를 세웠을 뿐이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 하지만 그는 아들의 그 치기 어린 부끄러움의 무게를,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가 박힌 자신의 손과 찌그러진 포터 트럭에 대한 아들의 시선을, 어쩌면 나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손바닥 위의 낡은 공구가 왠지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이 작은 쇠붙이는 그 100미터의 거리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아버지의 침묵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아버지의 시간을 따라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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