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계의 차은우
그것은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의 일이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내 인생의 궤도와 우리 가족의 생활이 아주 미세하게 틀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보다 며칠 전, 시골 본가에서였다.
엄마는 며칠 후에 있을 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기름 냄새와 음식 하며 나온 수증기들이 집안을 부옇게 채우던 깊은 밤, 어머니는 건물 밖 보일러 근처에서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소리를 좇아 보일러 근처에 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밤새도록 슬프고 집요하게 이어졌다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밝은 햇살 아래서 그 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보일러실 구석, 먼지 뭉치처럼 보이는 작은 생명체였다. 생후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어미는 병약하게 태어난 이 녀석을 감당하지 못해 버리고 떠난 모양이었다. 어미에게 버려졌던 녀석은 어미의 부름이 아닌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살기 위해 앞으로 기어 나왔던 것이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떨고 있는 그 작은 고양이를, 엄마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광주로 올라오시는 길에, 그 작은 생명체를 덤처럼 안고 오셨다.
그렇게 녀석은 우리 집에 왔다.
솔직히 말해 첫인상은 최악에 가까웠다.
'고양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우아함이나 귀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털은 듬성듬성했고, 피부병으로 인해 곳곳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녀석은 시궁창에서 막 건져 올린 생쥐처럼 볼품없고 초라했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첫째 딸아이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고, 아내는 애완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임시 보호'라는,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느슨한 합의 하에 녀석을 받아들였다.
"딱 며칠만이야. 건강해지면 누나네로 보내든 하게. 하지만 애들 알레르기가 나오면 바로 보내야 해"
아내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았다.
진료대 위에 놓인, 꼬물거리는 생쥐 꼴의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표정은 복잡했다.
측은함과 난처함, 그리고 약간의 걱정이 뒤섞인 얼굴.
그때, 말 많은 수의사 선생님이 코에 아슬아슬 걸려있는 안경 너머로 녀석을 빤히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이 녀석, 나중에 아주 예뻐집니다잉."아내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 역시 그랬다. 이 쭈글쭈글하고 병든 생명체가 예뻐진다니, 그건 마치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에서 장미꽃이 피어날 거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하지만 수의사의 그 말은 기묘한 주문처럼 우리 부부의 마음에 남았다.
그 후로 한동안 우리 집은 전쟁터 같았다. 녀석의 피부병인 링웜(Ringworm)은 전염성이 강했다. 아니나 다를까, 온 가족의 피부에 붉은 반점이 피어올랐다. 한 달 동안 영어캠프를 갔다 왔던 첫째는 얼굴까지 반점이 올라왔었다. 한 달 만에 본 딸의 얼굴이 그 모양?이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피부병이 우리를 공범으로 만들었다.
혹시라도 녀석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우리는 서로의 반점을, 그리고 녀석의 존재를 묵인했다. 긁으면서도 웃었고, 약을 바르면서도 녀석의 밥을 챙겼다.
딸들은 녀석에게 '젤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찌나 촌스러운 이름들만 고르는지 변덕이 심해 젤리 전에도 여러 이름들이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수의사의 예언은 적중했다. 아니, 예상을 뛰어넘었다. 꼬질꼬질하던 생쥐는 온데간데없고, 지금 우리 집 거실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수컷(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뗀?고양이) 고양이 한 마리가 우아하게 거닐고 있다. 윤기가 흐르는 털,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젤리는 이제 우리 집의 절대적인 권력자이자, 사랑의 구심점이 되었다.
와이프는 고양이계의 차은우라고 이야기하며 가끔 쓸데없는 진지함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 보낸 게 틀림없어. 철없는 아들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선물로 보내주신 거야."
그건 농담이었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아버지 제사, 그 타이밍에 맞춰 나타난 선물 치고는 꽤나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선물이었지만 말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던 첫째도, 동물을 싫어한다던 아내도, 이제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가장 먼저 젤리를 찾는다. 녀석은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왕이었던 것처럼, 그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하지만 지나친 사랑으로 힘들어한다)
가끔 소파에 앉아 젤리가 그루밍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있다. 10월의 어느 날, 보일러 아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그 작은 생명체가, 이제는 내 무릎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고 있다. 아버지의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날의 그 우연들이 겹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평온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란 겉보기엔 초라하고 병든 것 같아도, 사랑으로 돌보면 언젠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답한다'는, 그런 뻔하지만 따뜻한 진실 같은 것들이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젤리가 리본끈을 물고 와서 바닥에 놓고 물끄러미 놀아달라고 시위하듯 나를 쳐다본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2023년 10월 21일, 그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우리 집에 도착했던 날을 조용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