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 기증
2009년부터 시작했으니, 대학 입학 업무와 관련된 일도 어느새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쯤 더 변할 시간이다. 어제는 면접 진행을 위한 관리 요원으로 복도를 분주히 오갔고, 오늘 오후는 평가위원으로 장장 6시간 동안 면접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 이틀간의 강행군은 확실히 몸에 무리를 주었다.
예전에는 평가장을 미친 듯이 돌아다녀도 끄떡없던 체력이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열아홉 살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얼굴과 노트북에 담긴 생활기록부의 작은 활자들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오후 무렵에는 눈앞이 침침해지고 초점이 흐려진다. 인공눈물을 넣어도 해소되지 않는 뻑뻑함. 그것은 단순한 피로라기보다는, 내 몸의 어떤 기능이 서서히 닳아가고 있다는 서글픈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학 입학처의 입장에서는(물론 그것이 곧 나의 직업적 입장이기도 하지만) 면접 결시율이 '0'에 수렴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결시자 보고를 하는 진행요원의 결시자 면접번호가 많이 호명되기를 은밀히 바라고 있었다.
오후 6시 무렵,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시자는 적었고 어둑해지고 나서야 나는 평가실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뻐근한 뒷목을 문지르며 스마트폰을 켰다. 화면 위로 아내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짧은 동영상 파일 하나.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오늘 머리를 자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마치 건조하고 고단한 오후에 불현듯 도착한 소식이었다.
아직은 어수선한 평가장 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영상을 재생했다. 침침했던 눈을 비비며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미용실 의자에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앉아 있었다. 등 뒤로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은 마치 거대한 검은 강물처럼 보였다.
사건의 발단은 수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딸의 반 친구가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모발을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다. 14살 소녀에게 '기증'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른스럽고, 약간은 낭만적인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딸은 그때부터 꽤 성실하게 머리를 길러왔다. 머리카락이라는 건 가만히 두면 자라는 것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기르는 머리카락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다. 딸은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뎠고, 나는 그 결실을 고된 면접 일정의 틈새에서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영상 속 미용실 이모는 익숙하지 않은 듯 약간 주저하는듯하며 아이의 뒷목 부근을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가위가 들어갔다. 서걱, 서걱.
평가장이라 소리를 키울 수 없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영상이었지만, 나는 그 금속성 마찰음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 묶음이나 되는 두꺼운 머리카락은 한 번의 가위질로 잘려 나가지 않았다. 미용실 이모는 톱질하듯 여러 번 가위를 움직여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케라틴 단백질 덩어리를 자르는 행위가 아니라, 아이가 보낸 지난 1년 남짓한 시간을 툭, 하고 끊어내는 의식처럼 보였다.
마지막 가위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 뭉치가 미용사의 손에 들린 채 아래로 툭 떨어져 나갔다. 딸아이가 느꼈을 그 감각을 나는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마치 무거운 암막막 커튼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져, 무대 뒤의 텅 빈 공간이 갑자기 드러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휙, 하고 커튼이 걷혔고, 그곳에는 하얗고 가녀린 목덜미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문제는 그 '커튼'이 걷힌 후의 현실이었다.
30센티미터. 자그마치 30센티미터였다. 그 길이를 덜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찰랑거리는 단발이 아니라 소년의 커트 머리에 가까운 짧은 머리칼이었다. 거울을 본 딸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화면 속 입모양이 "이건 너무 짧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용실 이모는 당황해서 가위를 든 손을 허공에 둔 채 어쩔 줄 몰라했고, 아이는 연신 짧아진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까지 품고 있던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는 숭고한 인류애나 모발 기증의 뿌듯함 따위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함께 쓸려 나가 버린 듯했다. 그곳에는 그저 스타일을 망쳐버려 속상한,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열네 살 소녀만이 남아 있었다.
면접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눈치 없이 놀리지 마. 예쁘다고 해줘. 애 울었어."
평소 눈치 없이 농담을 던지는 남편이 혹여나 딸의 예민해진 상처를 건드릴까 봐, 아내는 미리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해 둔 것이다. 집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는 짧은 머리를 매만지며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딸이 있었다. 아내의 신신당부 덕분에 나는 입을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 딸을 보며 나는 묘한 안도감과 귀여움을 동시에 느꼈다. 대견하다가도, 결국은 외모에 목숨을 거는 어린아이구나 싶은 생각.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그 모순이 딸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었다.
나는 딸을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차 문을 닫고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나는 한동안 지켜보았다. 교문 주위는 등교하는 여중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긴 생머리, 웨이브 파마를 한 머리,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들. 그 수많은 머리카락의 물결 속에서, 딸아이의 짧은 머리는 유독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것은 마치 흑백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찍힌 단 하나의 붉은 점처럼 선명했다.
딸은 짧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목덜미를 드러낸 채, 약간은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어제 흘린 눈물과 불평은 이미 지난밤의 꿈처럼 사라진 듯했다. 짧은 머리는 아이의 걸음걸이를 더 경쾌하게 보이게 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이는 머리카락 30센티미터를 잃었지만, 그 대신 설명하기 힘든 어떤 '밀도'를 얻었다는 것을.
아이는 이제 온전히 자신의 얼굴과 목선을 드러내고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비록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 짧게 잘린 머리였을지라도, 그 결과물은 역설적으로 아이를 그 수많은 무리 속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놓아두었던 오래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황동의 질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침침했던 눈을 비비고, 전원을 켠 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다. 뷰파인더 중앙의 작은 사각형 안에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둘로 어긋나 허상처럼 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묵직하면서 부드럽게 돌아가는 렌즈의 초점링을 돌렸다. 뷰파인더 속에서 미세하게 어긋나 있던 두 개의 상이 서서히 이동하며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이중합치(二重合致). 마침내 두 개의 잔상이 빈틈없이 겹쳐져 완전한 하나가 되는 순간, 아이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단호한 실체가 되어 내 눈에 박혔다. 검은 잉크처럼 짙은 그 뒷모습이 '찰칵' 소리를 낼 준비를 마쳤다.
찰칵.
경쾌하고도 묵직한 셔터음이 차 안을 울렸다. 기증된 머리카락은 누군가에게 가발이 되어 쓰일 것이다. 그리고 방금 찍은 이 흑백 사진 속에 박제된 내 딸의 짧은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 어깨에 닿을 때까지 이 어색하고도 특별한 계절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