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생존본능의 부재

D-1 생각 없는 남편

by 우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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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직후, 나는 무슨 고집이었는지 분에 넘치는 신형 SM5를 36개월 할부로 들여놓았다.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할부금은 우리 생활을 비스킷처럼 퍽퍽하게 만들었고 얇아진 지갑 두께만큼이나 부부의 인내심도 얇아져 사소한 일로 자주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런 쪼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눈치 없이 그 차를 애지중지했다.


첫째 딸 우주가 세상에 나오겠다고 신호를 보낸 건 아직은 추운 겨울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나는 수 없이 시뮬에이션 했던 상황에 매뉴얼대로 짐을 챙겨 진통 중인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부르릉~~~


새 차 특유의 정숙한 엔진음이 주차장을 채웠다.

핸들을 잡고 가만히 앞을 응시하던 내게, 고통을 참던 아내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오빠... 왜 출발 안 해?"


그 순간, 내 입에서는 뇌를 거치지 않은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 튀어 나갔다.


"어, 예열 좀 하고. 새 차잖아. 이래야 엔진이 보호된대."



정적...



차 안의 온도가 급격히 영하로 떨어졌다. 아내의 눈에서 출산의 고통을 뛰어넘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의 출생신고보다 남편의 사망신고가 더 빠를 수도 있다는 명확한 경고였다.

나는 나갔던 정신을 찾고 액셀을 밟았다. 우주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나는 그날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자동차 엔진보다 먼저 예열해야 하는 것은 남편의 생존 본능이라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36개월 할부금보다 훨씬 비싼 대가였다.(지금도 와이프는 임산부를 만나면 산모수첩의 주의사항을 안내하듯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있다.)


덧)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걸고 예열까지 챙기며 애지중지했던 그 차는 나의 헌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배신을 때렸다. 녀석은 마치 대시보드 위의 경고등이란 경고등은 모조리 수집하려는 열정적인 컬렉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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