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꼬깔콘 머리와 유보된 인사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즐거운 순간은 금방 달아나버리지만 고통의 순간은 진흙탕에 빠진 코끼리처럼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우주가 태어나던 날이 딱 그랬다. 아내의 진통은 꼬박 24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하루 동안 우리 부부는 마치 세상과 얇은 막으로 격리된 채,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독립된 대기 공간에 갇혀 있는 듯했다. 그곳은 외부의 소음이나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오직 아내의 신음과 태동 측정기의 규칙적인 비프음만이 공기를 채우는 고립된 행성이었다.
아내는 출산 전, 호흡법부터 진통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 상으로 그녀는 이미 베테랑 산모였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 사이에는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존재하는 법이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 실행의 단계에 이르자 그 완벽한 예습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문제는 아내가 가장 중요한 '힘을 주는 법'을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매뉴얼을 정독하는 나를 비웃었지만, 정작 실전에서 그녀는 복부나 골반이 아닌 얼굴 근육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아내의 얼굴에 있는 미세한 핏줄들이 모조리 터져버렸다. 마치 붉은 점묘화처럼 변해버린 얼굴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그녀는 급기야 의식의 끈을 놓으려 했다. 그때였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아내의 뺨을 찰싹 때렸다.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삶의 쪽으로 그녀를 되돌려 놓으려는 의료적 타격이었다.
결국 의사는 '흡입 분만'을 결정했다. 그는 진공청소기 같은 기구를 꺼내 들며 무심하게 경고했다.
"머리 모양이 꼬깔콘처럼 길쭉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시간 지나면 돌아옵니다."
내 딸의 머리가 과자 모양이 될 수도 있다니. 그 순간의 비현실적인 감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의사가 건네준 가위를 들고 탯줄을 자를 때 내 손은 진도 7의 지진이 난 것처럼 덜덜 떨렸다.
그것은 한 생명과 모체 사이의 물리적 결속을 끊어내고 독립된 우주를 선언하는 엄숙한 의식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그것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숫자를 셌다. 완벽했다. 압도적인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엔딩은 예상치 못한 장르로 흘러갔다. 간호사가 핏덩이 같은 아이를 깨끗이 닦아 기진맥진한 아내의 얼굴 곁으로 가져갔다. 모성애가 폭발해야 할 클라이맥스였다.
"산모님, 아이 좀 보세요. 인사하세요."
아내는 퉁퉁 붓고 핏줄이 터진 눈으로 아이를 힐끗 보더니, 건조하고 지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볼게요."
그것은 내가 살면서 들어본 가장 솔직한 거절이었다. 모성애도잠시 미뤄내버리는 압도적인 피로감.
덕분에 감격에 젖어 있던 분만실 공기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나는 그 건조한 반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감동적인 신파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피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하는 현실의 세계에서 이제 막 육아라는 긴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