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전야
수시 합격자 발표일 하루 전의 공기는 마치 합격자 발표라는 순간을 위해 한계치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날카로운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오전에는 대학입학전형위원회가 열린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간사 자격으로 선발에 대한 내용을 브리핑한다. 위원분들이 모인 테이블 위로는 전형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데이터를 토해낸 80여 권이 넘는 육중한 흑철 파일들이 산맥처럼 쌓아 올려진다.
그것은 단순한 자료의 나열이 아니다. 지난 수개월간 우리 팀원들이 갈아 넣은 야근과 스트레스의 물리적 총량이다. 마치 "이만큼이나 고통받았으니 부디 알아주십시오"라고 호소하듯, 혹은 "이 압도적인 분량 앞에서 감히 딴지를 걸 생각은 마십시오"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듯 검은 파일들은 위압적인 자태로 회의실 공기를 짓누른다.
전형위원회가 마무리되면 그 다음으로는 대학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티끌 하나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두 개의 위원회는 입시 운영 전반을 검토한다는 점에서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고 혹시 모를 결점을 찾아내려는 두 명의 깐깐한 감사관을 연달아 대면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그 두 개의 거대한 산을 넘고 나면 사무실에는 진짜 고독한 작업이 남겨진다.
최종 발표 페이지 점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도 잔인한 롤플레잉 게임과도 같다.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수백, 수천 명의 가상 혹은 실제 수험생이 되어 시스템에 접속한다.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는다.(물론 팀원들과 나눠서 PC방 같은 분위기에서 작업을 한다. )
엔터키를 누르면 화면에는 운명을 가르는 문장들이 팝업창으로 떠오른다.
"OOO님은 합격하셨습니다."
"OOO님은 예비 15번입니다."
"OOO님은 불합격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환희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뼈아픈 좌절일 이 문장들을
나는 감정이 거세된 기계처럼 읽어 내려간다.
폰트가 깨지지는 않았는지, 예비 번호가 엉뚱하게 출력되지는 않는지
"설마 시스템이 틀릴 리가 있겠어?"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도 나는 강박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한다.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이다.
합격, 불합격, 예비 번호. 합격, 불합격...
그 무한한 도돌이표 속에서 나는 문득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기계적인 클릭질이 사실은 일종의 종교적 의식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일 오전 10시 서버가 다운되지 않기를. 단 하나의 오류도 발생하지 않기를.
이 거대한 시스템이 19살 아이들의 운명을 조금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기를.
나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다시 수험번호를 입력한다.
딸깍~
그것은 조용하고 필사적인 디지털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