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만점자는 시스템 버그
12월의 공기가 투명해질 무렵 대학 입학처는 잠시 숨을 고르던 달리기 주자가 다시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가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수시 수능 미반영 합격자 발표라는 길고 지루한 레이스를 끝내고 트랙 옆에서 잠시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가 싶었는데 예고된 '수능 성적 발표'라는 냉정한 출발 신호총소리가 타앙- 하고 공기를 가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시 근육을 조이며 다시 전력 질주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며칠 전 나는 A지역과 B지역교육청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직 두 지역 간의 미묘한 라이벌 의식이 감도는 자리였다.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골 요리가 놓여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신경전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만점자'로 흘러갔다. A지역 쪽에서는 이미 C고에서 만점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돌고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A교육청 장학관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가채점해 봐서는 몰라요. 괜히 말만 앞세우다 부정 탈라.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겁니다."
그는 짐짓 조심스러운 태도로 방어막을 쳤지만 그 단호한 부정 속에는 '확신'이 느껴졌다. 반면 B교육청 관계자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의 패배를 이미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2026학년도 수능 성적 통지일.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의 그 '부정 탈까 두려워하던' 조심성은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 소문대로 A지역 C고에서, 그리고 그날 식사 자리에 없었던 D지역에서도 만점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묘한 자신감을 숨기며 "몰라요"를 연발하던 A지역 장학관에게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축하를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뉴스에 뜬 기사 사진 한 장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만점자의 학교생활을 담은 그 사진 속에는 주인공인 학생보다 더 중앙에 더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장학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아이를 만든 건 나다"라고 웅변하는 듯한 구도였다. 나는 그 기묘한 사진을 구실 삼아 휴대폰을 들었다.
"장학관님, 조용히 속으로만 축하드리려 했는데, 기사 사진에 떡하니 만점자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장학관님이 보여 이리 축하 카톡 보냅니다."
그것은 진담 반 농담 반의 소심한 축하 인사였다. 반면 B지역 교육청은 예상대로 빈손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빈손이 결코 노력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B교육청은 화려한 만점자라는 트로피를 얻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학생들의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수능 교사 연수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더 넓고 깊은 곳을 묵묵히 다져왔었다. 과거부터 비슷한 상황을 수없이 마주해 온 터라 B교육청은 단 한 명의 난세의 영웅을 만들기보다 평범한 다수의 병사들을 강하게 키우겠다는 어찌 보면 더 단단하고 실리적인 포부를 밝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성적 데이터가 넘어오는 순간 대학 입학처는 고요한 사무실에서 '참호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돌변한다.
우리의 적은 '오류'다. 평가원 서버에서 내려받은 수만 명의 데이터는 거대한 암호문과 같다. 신청만 하고 응시하지 않은 아이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나 이름을 틀리게 마킹한 아이들까지. 우리는 탐정처럼 그 오류들을 하나하나 수정하고 검증한다. 개중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 아이들이 꼭 있는데 그럴 때 우리는 마치 헤어진 전 여자친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구질구질한 전 남자친구로 돌변한다. 그들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신호음이 그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 때까지 끈질기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비록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애절한 재회가 아니라 건조한 수능응시 여부 확인일지라도 말이다. 그 후에는 각 전형별 최저학력기준 적용, 동점자 처리, 예비 번호 부여, 부적격자 반영이 이라는 살벌한 '줄 세우기'가 이어진다. 엔터키 한 번에 누군가의 합불이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퇴근하면, 집에는 또 다른 '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거실 TV에서는 만점자인 OOO 군이 "사교육 없이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11시 30분 취침 루틴을 지켰으며, 대학에 가면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마치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완벽한 신화를 기말고사와 중요한 시험 준비로 이미 책상 앞에 붙박인 아이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저 오빠 봐라. 아이고 얼굴도 잘생겼네. 학생회장에 의장까지 하면서도 꾸준히 했다잖아. 너희들도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하면 언젠가 빛을 볼 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만 해, 알았지?"
분명 격려였지만, '학생회장', '야구', '충분한 수면'이라는 비현실적인 비교 대상이 추가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 말이 정교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한 귀로 흘려듣는 기술을 시전 했지만 아내의 '꾸준함 예찬론'은 날씨 뉴스가 나올 때까지 BGM처럼 거실을 채웠다.
나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맥주 캔을 딴다. 밖에서는 지역 간의 자존심 싸움이 회사에서는 데이터와의 전쟁이 그리고 집에서는 완벽한 엄친아를 빗댄 사랑의 잔소리가 벌어지고 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면 속 환하게 웃는 만점자를 본다. 어쩌면 수능 만점자란 우리 모두를 조금씩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의 버그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