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샤워
12월 31일 자정의 카운트다운처럼 비장할 필요는 없었지만, 시계의 액정 위에서 숫자가 하나씩 바뀌는 순간의 긴장감은 언제나 묵직했다. 나는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려 작은 사각 프레임 속에서 무심하게 깜빡이는 검은 숫자를 응시했다. 55, 56, 57... 그리고 59에서 00으로 넘어가는 찰나.
오전 8시 30분.
나는 거대한 자전거용 자물쇠를 손에 쥐고 마음속으로 짧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제발, 아무도 나타나지 말기를. 이 문이 닫히는 순간, 저 평가장 밖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면접 평가장 문 닫겠습니다."
나의 건조한 선언과 함께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철컥' 하는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러나 나의 주문은 효력이 없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잠긴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행요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밖에서 누가 서있는데요. 나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한숨을 삼키며 닫힌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
예상대로였다.
앳된 얼굴의 수험생 한 명이 마치 길 잃은 고양이처럼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나는 자물쇠를 풀고 그 건너의 영역으로 넘어가 최대한 사무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실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규정은 규정이라서요."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다.
나는 이 아이에게서 희망이라는 잔인한 불씨를 최대한 철저하게 지워내야 했다.
그게 덜 잔인한 방식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 중년 남성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먼저 내려주고 주차를 하고 오느라 늦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문을 걸어 잠그는 거요!"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의 항변 속에서 '지체된 시간'의 길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차가 막혀서 좀 늦을 수도 있지"라고 시작된 말이, 감정이 격해지자 "고작 2분 늦은 걸 가지고"로 바뀌었고, 이내 "1분 늦은 게 무슨 대수냐"로, 급기야는 "문 닫히는 거 보고 뛰어왔으니 불과 몇 초 차이 아니냐"는 절박한 외침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부정해서라도 어떻게든 닫힌 문을 열어보고 싶은, 아버지의 안타까운 억지이자 처절한 호소였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언어들 또한 분노의 상승 곡선을 따라 점차 과격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걸쭉한 사투리로 시작된 단순한 항의가, 흥분이 지속될수록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인 욕설로 진화해 나갔다.
그 어휘의 다양성과 파괴력은 실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인간의 생식기와 조상의 안부를 그렇게 다채로운 은유와 직유로 엮어내는 문장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썩을 놈의 학교가, 사람이 왔으면 문을 열어줘야지, 니들이 자식이어도 그럴 거냐! 확 부악! 부악! @$@#$^&~"
평가장이 떠나가라 울려 퍼지는 그 고함은 11월의 차가운 공기를 뜨겁게 갈랐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타인의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정면으로 받아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그 욕의 폭포수 아래서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 내 얼굴에 쏟아지는 이 뜨거운 분노의 화살은, 사실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그였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것도 그였다.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기회를 자신의 실수로 날려버렸다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죄책감. 그는 지금 그 무거운 감정을 '분노'라는 가연성 연료로 바꾸어 내게 태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를 철도 피도 없는 냉혈한 악당으로 만들어야만, 그는 스스로를 할퀴는 자책의 목소리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 걸쭉한 욕설들은 아이에게 차마 "미안하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슬픈 비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진짜로 불편하게 만든 건, 얼굴이 터질 듯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옆에서,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커질수록,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자신의 지각 때문에 아버지가 저런 수모를 겪고 있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제 정말로 대학 합격의 기회가 날아갔다는 무기력함이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닫힌 문과 폭주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투명 인간처럼 희미해져 갔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매몰차져야 했다. 여지를 주면 아버지는 희망을 가질 것이고, 그 희망은 아이에게 더 긴 고통의 시간을 줄 뿐이다.
"아버님, 여기서 이러셔도 소용없습니다. 규정상 절대 입실 불가입니다.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나는 목소리의 온도를 더 낮추어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와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헛된 희망이 제멋대로 부풀어 오르기 전에, 그 싹을 서둘러 잘라내야만 했다.
그때, 줄곧 그림자처럼 침묵하던 아이가 조용히 손을 뻗어 아버지의 옷깃을 잡았다.
"가게."
아이는 짧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아버지는 그 한마디에 봇물이 터지듯 마지막으로 얼굴을 붉히며, 허공에 대고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았을 법한 창의적인 욕설 한 문장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거칠게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은 11월의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다시 정적이 찾아온 평가장 앞. 나는 자물쇠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굳게 닫힌 문
그 '몇 초' 혹은 '3분'이라는 시간의 틈새가,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장면들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채와 모양으로 바꿔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부디,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은 늦지 말아 주시길.
당신의 빛나는 인생을 위해서도,
그리고 내 고막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도 말이다.
창의적인 욕설은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